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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 Dec 26. 2021

다시 시작하는 중입니다. #4화

누가 헛소리를 하였는가 누가 헛소리를 내었어!

* 2탄이 어딘가에 소개되었는지 한참 동안 조회수가 많아서 행복했습니다. 글을 계속 이어가라는 응원으로 받아 으쌰 으쌰 잘 써보겠습니다!



나는 입덧 약을 먹으며 일상생활이 훨씬 수월해다.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은 입덧 약을 처방해 최장기간이 4주라고 했지만 나는 그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었다. 그다음 달 4주분을 또 처방받고 그다음 달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입덧 약을 의존하는 게 심리적인 효과가 큰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쯤 되면 약 없이 괜찮겠지 싶어 약을 안 먹고 잠들었다가 그다음 날 여지없이 결코 멈추지 않는 구토 급행열차를 다시 맛보고는 했다.

(참고로 입덧 약은 12시간 후에 효과가 나타나기에 전날 취침 전 약을 먹고, 아침에 또 먹는다. 그래야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다.)


나는 다시 농담도 하고 껄껄껄 웃을 만큼 상태가 호전되었고, 간간히 토하고 위가 아프기는 했지만 임신 초기보다는 견딜 만 해졌다. 그렇게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주변도 살피며 사람답게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직장에서 눈치가 보였다. 

다른 게 아니라 아기를 갖기 위해 불임치료를 다니던 여직원이 있었는데 그녀가 자꾸 마음에 씌었다. 나는 계획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아기가 쉽게 생겨버리는 것이 괜히 미안했달까. 물론 그녀도 나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냥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랬다.


남편에게 말하니 나와 같은 생각을 했었단다. 그의 직장에도 힘들게 가진 아기를 유산해서 서럽게 울던 직원이 있어서 얼마 전 위로해주었고,  임신이 안돼서 휴직을 하는 직원에게 잘 쉬다 보면 좋은 소식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 다독여주었다고 했다.

우리는 비교적 임신 자체는 수월하게 되는 것이 감사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시급함으로 따지면 그들이 우리보다 먼저 일 텐데 하는 힘없는 이타심이겠지.

누군가가 도와주어도 쉽지않은 일.


이 와중에 그 어느 누구도 기다리지 는데 혼자서 으쌰 으쌰 하며 아빠의 몸에서 나와 길고 긴 여정을 지나 생존해 결국 하나의 생명이 되어버린 생존력 끝판왕 정자가 대단하게 느껴지긴 했다.

남편은 종종 말했다.

"어떤 놈이 나올까 너무 궁금해! 얘는 세상을 바꿀 만큼 강력한 놈일 거야!"

세상에 제 발로 찾아온 녀석에게서 우리는 당돌함과 강인함을 느꼈다. 설령 우리 만의 착각일지라도 그렇게 우리에게 와준 아기를 소중히 잘 키워내야겠다는 사명감갖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망발을 들은 적이 있어 황당하기도 했다.

"셋째? 이제 그만 낳아야지~! 너 안 힘드니?"

"너네 피임 안 했어? 우린 잘 관리하는데 어떡하냐 너."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누가 했냐고?

놀랍게도 사촌 언니와 사촌 오빠였다.

아주 친한 사이냐고? 아니올시다. 몇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전화통화 한번 안 하는 사이다.


난 그들이 왜 저런 이야기를 내게 서슴지 않았는지 여전히 이해불가다. 둘 다 아들 한 명씩 키우는 사람들이라 내가 미개해 보이기라도 한 걸까? 뭐 표면적인 의도는 나를 걱정한다는 것이지만 그게 어디 진짜 나를 위해주려는 것이겠는가? 그냥 지껄여대는 소리지.

하나마나한 소리는 삼켜야 한다는 걸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어른의 단면적인 행태라고 생각하며 그만하라고만  잘라 말했다.


더 가까운 사이였다면 난 그들에게 뭐라 말했을까?

누가 헛소리를 하였는가! 누가 헛소리를 하였어!


글을 쓰는 오늘 우리는 '비 계획성 셋째 임신'한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딱 상황이 우리와 비슷했다. 아이 엄마는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앞두고 있었다. 그녀에게 친정엄마가 또 임신이냐며 욕지거리를 했다는 추가 설명이 있었다.

집이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부부 사이도 좋아 아이가 태어나도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이는데 그 어떤 이유로 그녀는 욕을 들어야 했을까 의아했다. 딸을 너무 사랑하기에 그 딸이 고생할 것이 싫어서 분노했다고 하기엔 부적절함이 한도를 초과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과도하게.


임신을 해도, 못해도 남들을 의식하고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네 모습이 왠지 서글프다.

나 정도면 이런 소리 해도 돼지 하는 생각이 든다면... 

당장 그 입을 다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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