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겹게 두 번이나 자연분만을 했던 나지만 수술로 아이 낳는 것에서 더 참기 힘든 고통을 느꼈다. 진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뜯어말려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오지랖이 샘물처럼 솟아 절대 나처럼 고통 속에 놔두지 않겠단 생각도 했다.
남편은 가족들에게 출산소식을 알렸다. 아이도 건강하고 산모도 무사하다고. 태반이 잘 제거되고 출혈은 많이 있었지만 심각하지는 않다고 말이다.
사실이 그러니까 뭐 할 말은 없지만 모두들 안도하며 기뻐했다.
나만 빼고.
당장 죽을 것 같은데도 결국 '순산'이라는 단어로 나는 또다시 포장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산할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기분이 묘하게 섭섭한 지점이었다.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아주 가깝고 마음이 잘 통하는 몇몇에게라도 내가 너무 아파한다고 울고 있다고 기도해 주라고 전달해 주면 좋으련만 왜 다 듣기 좋은 소리, 모두 쉽게 안도할 이야기만 전달하고 '이하 생략' 해버리냐고!
이 노므 남편도 아기를 낳아보면 내 맘을 딱 알 텐데...
나 같으면 "많이 아픈지 엉엉 울고 있어! 짠해 죽겠네!"하고 생동감을 더해줄 텐데... 말이다.
항상 내가 죽는 것 같을 때 새 생명이 세상에 나왔다.
죽음과 생의 이런 아이러니를 세 번이나 겪었다. 너무 충분한 횟수다. 이런 맘을 해결할 길은 단 하나뿐이다.
남편의 수술!!
나만 당할 수는 없으니 남편이 여태껏 미룬 정관수술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내게 언제 하겠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호언장담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일이 가장 바쁠 때였던 남편은 마음이 불편해 보였다.
친정아빠는 입원하신 후로도 증세의 차도가 없어 온 가족이 걱정 속에 지내고 있었고 할머니 집에 맡겨진 채로 며칠을 지내는 두 아이들도 점점 기운이 빠져가는 게 느껴졌다.
회진 때마다 담당의사는 내게 걷고 움직여야 회복이 빠르다고 했지만 나는 아파서 옴짝달싹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정말로 죽을 것 같았으니까.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래도 하세요"라고 말했다.
'아휴. 저도 알긴 한다니까요. 근데 너무 아프다고요.'라는 대답을 삼켰다.
영화에서 흔히 주인공은 총을 맞고도 이리저리 계속 몸을 날리고 도망 다니다가 여주인공 집에 가서 총알 뺀 후 쇼파에서 쪽잠을 잔다. 그런데 다음날 몸이 회복이 되지도 않았는데 붕대만 감고서 종적을 감추는 스토리는 대체 어떤 건강한 작가라는 인간이 썼는지 모르겠더라. 최소한 한 번도 수술 안 해본 인간 임에는 틀림없겠지.(쇼파에서 잠잔 것으로도 이미 허리나가는거 아니냐고요.)
내가 겨우 움직 일 수 있을 때 남편이 잠시 집에 갔다. 카톡으로 사진이 왔다. 큰 아이가 편지를 쓴 모양인데 집 문 앞에 일부러 둔 것 같다고 했다.
엄마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겁도 많은 녀석이 아무도 없는 집에 와서 편지를 쓰고 피식 웃음이 나도록 봉투에 자기 이름을 초성만 써넣었다. (일종의 퀴즈)
그리고 엄마가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깜짝 놀라고 기쁘게 해 주려고 한참을 고민하다 현관문 앞에 살포시 둔 것이 내 눈에 선명히 그려졌다.
나는 편지를 읽고 울고 또 울었다.
아이들이 많이 보고 싶었고 당장 함께해 줄 수 없어 괜스레 미안했다.
출산 후 계속해서 내게 찾아온 생각은
'나는 왜 이렇게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하는 억울하다는 생각과 남편에 대한 섭섭함이 자꾸 몰려왔는데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이런 아이가 한 명 더 생겼구나!
하는 생각으로.
내가 있던 6인실 병실은 고위험군 산모들이 모인 곳이라 때때로 우는 소리들이 들려오곤 했었다. 각자의 사연이 있으니 그 어느 누구도 불편해하거나 싫은 내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