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보지 못 할 너에게 보내는 편지, #1

너와 함께 한 추억의 색깔은 짙은 남색이야

Dear, 언제나 자상한 나의 친구 Fe


나의 오랜 친구 Fe, 정말 오랜만에 편지를 쓴다. 잘 지내고 있지?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일본의 도쿄는 초여름의 선선하고 기분 좋은 날씨가 제법 오래 지속되고 있었는데,

드디어 무더운 한여름으로 가려는지 오늘부터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기 시작했어.

네가 살고 있는 곳은 어떠니?


갑자기 너무 뜬금없이 너에게 편지를 써서 놀라지 않았을까 싶은데,

특별히 이유는 없고 그냥, 정말 그냥 네 생각이 나서.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해두고 싶어서, 그래서 써.


우리가 처음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던 건..

아마도 서로 다른 고등학교를 가게 되면서부터, 였지?

중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로 만나긴 했지만 서로 그렇게 대화를 많이 하던 사이는 아니었는데,

서로 다른 고등학교를 가게 되면서 한 통 두 통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때 주고받았던 편지는 모두 다 소중히 지금도 간직하면서

가끔 힘이 들 때마다 들춰봐.

참 웃기지, 편지 내용이 변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몇십 번을 읽었던 것들인데도

읽을 때마다 새롭고, 힘을 얻어.


그렇게 편지에 남은 네가 해 준 이야기들은 나에게 힘을 주는데,

내가 너에게 어떤 이야기들로 편지지를 채워 보냈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에피소드, 말투들로 가득하겠지?

혹 가끔 들춰본다면 그래도 귀엽게 봐주길 바래.

네 편지가 나에게 그랬듯, 나의 편지도 너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나도 고등학교를 좀 많이 떨어진 곳으로 갔지만,

너는 더욱더 먼 지역으로 갔었잖아. 아마 우리 중학교에서 혼자서 갔지?

그래서 내심 외로울까 봐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편지를 통해 보고 듣는 너의 이야기들에는 친한 친구들 이야기도 많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즐기는 거 같아서, 그거 하나는 안심했었던 기억이 난다.


왜 그땐 스마트 폰도 메신저도 없었잖아.

물론 핸드폰은 있어서 연락하려면 전화를 할 수도 있었고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글자 수 제한은 있었지만 문자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었는데

우린 왜 굳이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았던 걸까?

만나려면 만날 수도 있었는데 한 번을 따로 만나지 않았었지.

지금 생각하면 그게 조금 아쉬워. 지금보다도 그때가 훨씬 더 가까웠는데.


서로 얼굴 까먹겠다고 사진 주고받았을 때,

내가 한창 앞머리를 기르고 있다며 이마를 드러낸 사진을 보냈던 거, 기억나니?

네가 그 사진에 대한 답장을 보내줬을 때가 지금처럼 막 더워지기 시작하던 여름날이었어.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늦은 저녁 발견한, 우편함에 들어 있던 낯익은 너의 글씨가

그날따라 어찌나 반갑던지.


그때가 무슨 커다란 경기 같은 걸 하던 때라서 한 일주일 정도 나라 전체가 시끌벅적하던 여름이었는데,

우리가 고2였던가, 그랬을 거야.

수험생이었고, 난 실기 연습생이기도 해서 하나도 못 즐기고 주말에도 하루 종일 학원에 가 연습만 했었거든.

저녁을 사 먹으러 나간 골목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신나는 목소리에 괜스레 기운이 빠지고,

그래서 연습이 또 잘 안되고.

처진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탔던 버스 안에서는 승객도 라디오도 어찌나 다들 신나 보이던지.

그렇게 집에 도착했는데 우편함에 네 편지가 있었던 거야.


편지 속 너의 이야기들은 언제나 우리가 주고받던,

어찌 보면 특별할 것도 색다를 것도 없는 일상의 이야기들이었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라.

오늘 하루 나를 둘러쌌던 평소와는 다른 하루 속에서 찾은 나의 일상, 같은 느낌이었어.

이마를 드러낸 사진을 보낼 줄은 몰랐다며 놀랐다고 네가 적었던 말귀까지도 모두 다 뭐랄까, 고마웠어.

편지를 받고 고개를 들어 밖을 봤는데 짙은 남색으로 하늘이 물들어 있었어.

그냥 그 순간이 너무 고마워서, 무작정 그 남색 하늘을 바라보며 한동안 기분을 추슬렀었는데,

왜인지 그날의 기억이 너무도 깊게 남아있어.

그래서인지 너를 생각하면 항상 떠오르는 색이 짙은 남색이야.

아, 오늘 하늘이 유난히 남색이었는데, 그래서 네 생각이 났나 보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던 내 친구 Fe.

어른이 다 되고 겨우 만났을 때에도 하나 변한 것 없이 항상 자상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던 내 친구 Fe.


내가 일본에 오게 되면서도 계속되던 편지였는데, 뒤돌아보니 서로 보내지 못한 지도 꽤 되는구나.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고등학생도 아니고,

다시 편지를 시작하기엔 신경 써야 하는 주변 상황이 조금 많은,

그때처럼 친한 친구라도 하기에도 어쩐지 벽이 생겨버린 눈치 빠른 어른이 되었지만,

오늘처럼 여름을 느끼는 짙은 남색의 밤이 오면 나는 앞으로도 고등학생 너를 떠올릴 것 같아.


힘들고 지치는 일들도 많았지만 서로의 목표를 위해 시간과 정성과 열과 성의를 쏟아부어 결국,

원하던 결과를 손에 쥐었던 우리잖아.

앞으로도 우리는 힘들고 지치는 일이 있더라도 또 원하던 좋은 결과를 손에 쥘 거야.

그러니 지금 혹시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툭툭 털어내길 바래.

지금 누구보다 기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 시간이 누구보다도 오래가길 내가 기도할게.

그리고 언젠가 평소보다 이상하게 더 지치고 힘이 드는 날이 오면, 그땐 언제든 가벼운 마음으로 연락해.

내가 그때의 너처럼, 너의 일상을, 하루를 찾을 수 있게 도와줄게.



새삼스럽고 또 너무 늦은 인사지만, 그때 나와 편지 친구를 해 줘서 정말 고마워.

오늘은 이렇게 너는 보지 못 할 플랫폼에 편지를 쓰지만,

그 언젠가 실제로 펜을 들어 편지를 쓰게 되면 연락할게.

다시 만날 수 있는 날까지 항상 건강하고, 또 행복하게 지내길 바래.



p.s. 내가 여름을 힘들어한다는 건 너도 잘 알 테니, 더워지는 날씨 이야기에 아마 내 걱정을 하겠지만

이제는 나도 여름에만 즐길 수 있는 정취를 온몸으로 즐길 줄 아는 나이가 되었어!

너 역시 올해 여름, 더위에 지치지 않고 즐겁게 보낼 수 있길 바래.


From, 너의 오랜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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