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보지 못 할 너에게 보내는 편지, #2

올해 여름밤에도 어김없이 네 생각이 났어.

Dear, 나의 친구 A, 보고 싶은 A에게.



언제 이렇게 여름이 한창 짙푸르게 진행되었는지도 모른 채로 바쁘게 살다가, 퇴근길에 맡아지는 녹음의 향기에 정신이 번뜩 들었어.

언제, 언제 이렇게 여름이 깊어졌지? 장마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어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후덥지근하긴 하지만 걷기엔 딱 좋을 것 같은 습도를 한 오늘 같은 밤이면 난 너와 함께 했던 여름밤이 생각나.

아, 물론 이상한 뜻은 아니야. 단지 우리가 아무 걱정 없이-물론 그때도 나름의 걱정은 있었지만- 서로가 좋아하던 프로슈토와 화이트 와인을 찾아 하염없이 밤거리를 거닐던, 그날의 향기가 꼭 이런 습도의 밤에 떠올라서 말이야. 도통 잊을 수가 없어.


우리는 정말 우연하게 서로를 알게 되었고, 사실 친구라고 하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만을 함께 할 수 있었지.

하지만 함께 한 그 시간은 하루하루가 너무도 강렬했고 즐거웠어.

짧아서 강렬했을까, 강렬해서 짧게 느껴지는 걸까.


하필이면 장마 기간에 서로 시간이 비는 바람에, 우리가 함께 한 날들은 모두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었지.

그래도 굴하지 않고 여기저기 다녔었는데.

기억나? 큰 호수 공원을 산책하다가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큰 나무 아래에 서서 계속 호수를 바라보았던 날. 난 그 공원의 호수가 그렇게 깊은 색을 하고 있는 줄 처음 알았잖아.

조용히 말없이 빗소리와 함께 빗방울이 요동치는 호수의 표면을 바라보며 오랜 시간 우린 서 있었지.

너는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기타가 취미인 네가 기타를 쳐 주겠다고 또 다른 공원에서 만났던 날도 생각이 난다.

그때는 딱 장마가 오기 직전이었는데, 그날따라 모기가 기승을 부려 네가 도저히 가려워서 못 견디겠다고, 기타 연주는 하지도 못한 채 공원을 뒤로하고는 와인을 마시러 갔지. 그날 나는 화이트 와인의 맛에 눈을 떴던 거 같아. 초여름의 향기와 화이트 와인이 그렇게 잘 어울리는 줄 몰랐는데, 정말 잘 어울리더라.


아, 서로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따라 해 보겠다고 가방에 맥주와 초콜릿을 사서 들고는 공원에 갔던 것도 기억난다. 엄청 기대하며 갔는데 공원이 음식물 반입 금지였잖아. 어찌나 허탈하던지. 결국 우리 흉내는 못 내고 공원을 산책한 후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준비한 두 가지를 홀짝홀짝 맛봤지. 맞아, 원래 난 맥주와 함께 초콜릿을 먹을 땐 그 애니메이션을 생각하며 먹었었는데, 그날 이후론 이제는 너를 생각하며 마셔.


다른 추억들도 줄줄이 기억이 나는데 너와의 추억엔 하나같이 풀 내음이 가득해.

아, 그래서 그렇구나. 내가 여름만 되면 널 생각하는 건, 분명 그 추억들이 가진 내음이 모조리 꽉 찬 여름이라 그런가 보다.



내 친구 A야.

내가 기억하는 너는 항상 밝고, 긍정적이고, 때로 자기 자신에게 자신이 없었다가도 금세 다시 일어서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요즘엔 어떻게 지내고 있니?

그저 밝았던 너의 그 모습이 변하지 않았길 바란다고 하면, 나의 이기심일까?

정작 나는.. 나는 어떻냐면, 나는.. 그때와 비교해서 조금 많이 변한 것도 같아.

조금 지쳐 보이기도 하고, 다가올 앞 날에 대해서 조금 덜 기대하게 되었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계절에는 민감하려고 하고, 남들이 맡지 못하는 향기를 맡으려 노력하지만, 어딘가 조금 어두워진 것 같기는 해.


그런데 또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어. 변한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라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다는 건 내가 또 그만큼 하루를 살아냈다는 거니까, 그만큼 배운 게 있다는 거고 무언가 열심히 했다는 뜻이잖아. 그렇다면 변했다기 보단 성장했다는 뜻이 아닐까, 라는 그런 생각을 하게 돼. 이렇게 변화에 관대해졌다는 부분이 또 나의 큰 변화인 것 같아.

20대 초반의 나는 변한다는 걸 두려워했었잖아. 나의 틀 속에 나를 가둬두려 했었고, 조금만 벗어나도 나를 잃을 것 같아 걱정했었는데. 그런 나를 너는 걱정 말라며 다독여줬었지.

이런 말을 하면 너는 나를 조용히 바라보며 어떤 말을 하겠지만, 걱정 마.

모든 일에 냉소적으로 변하지 않도록, 하루하루의 행복에 눈 돌리지 않도록만 변해 갈게.


내가 이렇게 변했듯 너도 변했겠지? 왜인지 너만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일 것 같은 생각도 들어.

물론 어떤 모습이어도 나는 상관없어. 네가 변했다면 변한 대로, 변하지 않았다면 않은 대로 그동안의 이야기들이 참 궁금하다.


내 친구 A, 하고 싶었던 일은 찾았니? 워낙 능력이 많아 여러 길을 두고 선택하던 너였는데, 꼭 마음에 드는 일을 찾았길 바래.

그때 우린 서로의 고민, 서로의 꿈, 서로의 좋아하는 것들이 잘 맞아서 한번 수다를 떨기 시작하면 몇 시간이 지나도록 깔깔 웃었었는데,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어떤 이야기라도 나는 너와 다시 나눌 수 있다면 정말 정말 행복할 것 같아.


A야, 이 세계 어딘가에 네가 존재하듯 나 역시 존재하며 살아갈게.

어김없이 또 여름이 오고, 습도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여름의 밤이 오면 널 떠올릴게.

그때 그 시절의 너와 내가 보낸 시간을, 너와 내가 나눈 대화를, 너와 내가 나눈 시절을 꼭 기억하며 지낼게.

아무리 나 자신이 변해도 잊지 않도록 꼭 기억할게.


너에게 있어서도 나와 보낸 그 시간들이, 기억할 만한 한 시절의 기록으로서 남아 주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보내지 못하는 편지로서 널 기록하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 너에게 연락을 할게.

그땐 꼭 못 나눈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길 기도해.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보냈길 바라며, 이만 줄일게.





From. 너를 아끼는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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