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일본 직장 생활의 추억_ 일본도 똑같다.

직장에서는 '직장인 000'이 되어야 한다

직장에서는 '직장인 000'이 되어야 한다

나의 첫 직장엔 같은 날 함께 들어간 동기가 있었다.

우리는 초반에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처음 사회에 나온 새내기들이 그러하듯 내가 아는 것과 동기가 아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동기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비슷했다.

성과도 고만 고만했다.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모든 좋지 않은 화살은 나에게로 쏠리고,

모든 좋은 화살이 동기를 향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알아차리지도 못한 사이에 '일 못하는 신입'으로,

동기는 '일 잘하는 신입'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직장 내 크고 작은 곳에서 영향을 미쳐 나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고

맡게 되는 업무에도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주변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건 아닌데..


차라리 동기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을 잘했다면 억울하지나 않지,

살펴보고 따져봐도 내가 그렇게 못하는 것도, 동기가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잘하려 해 봤지만,


내가 못한 것 => 내가 못한 것(이건 당연한 결과이지만)

내가 잘한 것 => 동기가 잘한 것(?)

동기가 못한 것 => 내가 못한 것 (??)


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미 굳혀진 첫인상은 하루아침에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현재 진행형으로 의문이 계속되고 있을 때,

윗 상사의 무차별적 폭언과 무시가 시작되었고 (パワハラ/파와하라, 직장 내 괴롭힘)

버티지 못한 나는 결국 직장을 바꿨다.



다시 새로운 직장에 들어갔을 때는, 자신감을 -120% 잃은 상태에서 시작했었는데,

어느샌가 '열심히 하는 신입'으로 이름표를 달게 되었다.

덕분에 감사하게도 딱히 큰 트러블도 없이 금세 적응하게 되었고,

종종 칭찬을 받는 일도 생기게 되었을 때, 나의 의문은 과거형으로 바뀌었다.


도대체 이유가 뭐였을까? 나는 딱히 바뀐 게 없는데?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첫 직장에서는 인간 000으로,

두 번째 직장에서는 (나도 모르게) 직장인 000으로 행동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동기는 첫 직장에서부터 이미 직장인 000으로 행동했었다는 것을.

행동이 달랐기에 첫인상이 달랐고, 결과가 달라졌던 것이다.


직장에서의 나는, '인간 000'이 아닌, '직장인 000'이 되어야 했다.

정말 당연한 것인데, 첫 직장을 다니던 그 시절엔 그걸 몰랐었다.




취업이 결정된 후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넌 워낙 성격이 좋아서 잘해 낼 거야'

'어딜 가나 문제없을 거야'

'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좋아서 괜찮을 거야'였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나는,

첫 직장에서도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사람들을 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일반적인 사회 초년생이 가지고 있는 '긴장감', '눈치'없이,

사람들을 대하고 일을 처리했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드러냈고 잘하면 잘한다고 겸손했다.

그게 있는 그대로의 나니까,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직장인이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 는 기준이 없었다.



'직장인 000'이라는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사적인 일들, 사적인 생각, 그 외 사적인 모든 것들은 직장에서는 아웃시키기.

오롯이 '직장인 000' 로서 맞는 생각과 행동을 하며(보통 매뉴얼이라고도 한다),

윗사람에게는 적당히 도움도 요청하면서,

잘하는 건 정말 잘하는 것처럼, 못하는 것도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것처럼 행동하고,

좋은 일에도 웃고 싫은 일에도 웃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억지스럽지 않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해 내는 것.


두 번째 직장에서의 나는,

전 직장과 같은 일을 두 번 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긴장'했고

뭐든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눈치'가 빨라지면서 나도 모르게 '직장인'답게 행동하게 되었던 게

결과적으로 좋은 변화를 불렀던 것 같다.


'윗사람한테 잘 보여야 해'

'첫인상이 제일 중요하다'

'어느 정도는 너 자신을 속여야 해'

등의 현실적인 조언을 첫 직장에서부터 들을 수 있었더라면,

아니 혼자서 깨우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는 아주 잘 안다.

직장에 속한 순간, 나는 '나'도 아니고 '외국인'도 아닌, '직장인 000'이 되어야 한다는 것.

직장에서 퇴근하는 바로 그 순간 다시 '인간 000'으로 돌아오면 된다는 것.





그리고 지금, 생각한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우리 팀에 들어온 신입에게서 느껴지는,

그 언젠가 내가 첫 직장에서 했을 법한 '인간 000'의 행동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나처럼 되지 않도록, 내가 지나고 느낀 것들을 전해 줄 수 있을까, 하고.


아마 정답은 없겠지만, 제일 좋은 방법은

우리 신입이 그때의 나처럼 부딪히고 몸으로 느껴봐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왜 그때 그 시절 나에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건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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