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관계는 마치 늦여름의 크레이프처럼
Dear, 언제나 바쁘게 지내던 나의 오랜 친구 H에게
친구야, 어떻게 지내고 있니?
나는 오늘도 이어지는 잔업을 어떻게 겨우 끝내고 집에 가는 길이야.
한눈에 봐도 힘든 싸움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다 싶은 다른 승객들은,
다들 어딘가 지친 표정으로 앉아 스마트 폰을, 허공을 바라보고 있거나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그중에 좀 신나 보이는 얼굴을 한 사람들은, 뭔가 즐거운 약속이라도 있는 걸까?
혹은 즐거운 만남을 끝내고 집에 가는 길 그 여운을 곱씹고 있는 걸까?
나처럼 다가올 주말이 그저 반가운 사람들도 있겠지?
나 역시 방금까지는 많이 지쳐서 멍한 표정이었다가, 다가올 주말에 살짝 즐거웠다가,
문득 네 생각이 나서 이렇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
지금 마스크 너머로 보일 내 표정은 분명, 어딘가 설레 보이는 사람의 표정일 거야.
예전에는 편지를 쓰려면 종이와 펜이 꼭 필요해서 이렇게 공공장소에서는 쓰고 싶어도 못썼던 적이 많았는데, 이제는 이 작은 사각형 하나로 음악을 들으면서 편지를 쓰고 있다니.
심지어 버튼 몇 개만 누르면 산 넘고 강 너머 있는 너에게 바로 보낼 수도 있어.
예전 시절이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편리해진 지금이지만,
나는 가끔 떠올려.
언제 너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질지 몰라 항상 편지지와 그에 맞는 펜을 가지고 다니던 그 시절.
내가 항상 가던, 커피와 수제 케이크가 맛있던 그 카페에서 너에게 편지를 쓰던 그 시절.
어느 날 불쑥 우편함에 꽂혀있던 너의 편지가 어떤 하나의 보상 같았던 그 시절.
너의 존재가 참으로 고마웠던 그 시절.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는,
길가에 막 벚꽃이 피어나던 봄날, 따뜻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던 어느 4월이었지?
언어를 배우겠다고 작은 교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자기소개를 하던 그날이 생각난다.
너는 6개월 코스로 와서 있는 동안 이 나라를 무조건 다 즐기고 가겠다고 하더니
어디서 그렇게 친구들을 사귀어 오는지, 결국은 전국 방방곡곡을 구경하러 다녔었지.
옆 자리에 앉아있었다는 우연과 좋아하던 음악이 같았던 걸 계기로 우리는 금세 친해졌고,
같이 하고 싶었던 것도 참 많았는데,
6개월이라는 시간은 그런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쏜살같이 지나가버렸어.
너와 지낸 시간 동안 배운 것도, 느낀 것도 참 많았는데
무엇보다 고마웠던 건,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항상 칭찬을 해주던 너의 그 말들이었어.
아마 그건 너의 자상 함이었겠지. 어쩌면 너는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 덕분에 나라는 사람의 장점을 알 수 있었어.
때로는 단점이지만 장점으로도 바꿀 수 있다는 사실까지도 너는 알려줬어.
내 인생에 있어서, 그 나이대에, 그 시절에 너라는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는 건
정말 크나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해.
너에게, 나는 어땠을까?
도움을 주는 좋은 친구까지는 못된다고 하더라도,
함께하면 에너지가 뺏기고 마는 친구만은 아니었길 바라.
네가 모국으로 돌아가는 전전날, 우리는 항상 놀러 가던 동네의 어느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눈에 들어온 크레이프 가게에서 바나나가 들어간 크레이프를 하나 사서 나눠 먹었지.
그날 나는 해외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그렇듯,
사실 마음 어디선가는,
이렇게 안녕을 전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늦여름 혹은 초가을의 향기와 어우러진 바나나 향기가 썩 반갑지 않았는데,
어느새 우리는 10년을 훌쩍 넘긴 친구 사이가 되었고,
더 이상 손 편지는 아니지만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구나.
일부러 굳이 찾아가며 연락하지 않아도
한 번씩 하루의 마무리에 찾고 싶어지는, 서로의 인생에 잔잔하게 스며들어 있는 너랑 나는,
너무 달아서 질리지 않을 정도로만 녹진하고 달콤했던 향이 나던,
엄청나게 맛있진 않지만 평범한 하루의 마무리로서 기억에 남을 정도의 특별함이 있던,
우리의 마지막 날의 그 크레이프 같아.
나의 친구,
문득 나를 떠올리는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길 바라며,
너의 오늘 하루도 나쁘지 않았길 바라며,
이만 줄일게!
FROM, 언제까지나 너의 20대를 기억할 친구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