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봉역 앞에서 널 기다리는 중이야.

밤늦게 삼호선 지하철 타고 / 라디오 타임이 준 선물#4

언젠가 날씨가 조금 추웠던 어느 날, 이제는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가 일본으로 놀러를 왔다.

미국에서 한국 본가를 오랜만에 길게 가는데,

어차피 먼 길 온 김에 일본을 들러 놀고 가겠단다.

자주 연락은 하지만 얼굴을 못 본 지 몇 년이나 된 나의 친구가 일본에 온다니.

드디어 만날 수 있다니!

한창 일에 지쳐있던 나에게 그 연락은 마치 가뭄 속의 단 비 같았다.

어떤 곳에서 뭘 보고 먹으면 좋을지 계획을 몇 번이나 짜고, 수정하길 반복했다.


순식간에 친구가 오는 날이 되었고, 우리는 만났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좋은 친구.

유명하고 번쩍번쩍한 곳을 가지 않아도 되는 친구.

결국 서로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적당히 조용한 공간만 있으면 되는 친구와 보내는 시간은

야속할 만큼 빨리 지나갔다.

친구와 나는 미리 일정을 정해두고 만나기도 했지만

짧은 시간이었던 만큼 서로의 일정이 끝난 후 시간이 맞으면 저녁에 급히 만나기도 했다.

친구가 있는 며칠 동안 나는 꼭, 그토록 바라던 동네 친구가 생긴 것만 같았다.


우리는 산 건너 바다 건너 멀리서 응원하던 서로의 여러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도 젊디 젊은 나이지만 그래도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친구는 어느새 한 아이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어 있었다.

각자의 사는 모습, 사는 나라는 달라도 해외 생활을 하고 있는 처지가 같아서인지

어떤 이야기를 나눠도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는 만나면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더라면..

힘들었던 그 시절 누군가 필요했던 그 시절의 누군가가 되어 서로에게 작게나마 힘이 되어줄 수 있었을까?

일을 같이 하는 동료가 아닌, 일본어로 대화하는 대학 친구들이 아닌,

한국어로 소통하는 친한 동네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온 날, 라디오에서 이런 음악이 흘러나왔다.



밤늦게 3호선 지하철 타고

매봉역 앞에서 널 기다리는 중이야

외로워 마 우린 좋은 기억들을 나눌 수가 있잖아

그 에너지로 우린 바쁘게 또 일하다 내일을 또 기대하지

설레는 마음 잃지 마 용기 없이 앞을 겁내던 날들도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란 걸 알지

그게 머리 아닌 가슴으로 삶이란 걸 알지

흘러 흘러가 결국엔 흘러가니 두려움은 두고가

떨지 마 감지 말고 두 눈 뜨고 가 넘어져도 일어서면 돼

부끄러워 마 우린 여기까지 왔어

또 어디로 향할지

자갈길일지라도 서로 밝히며 나아가길


여태 그래온 것처럼 또 달릴 시간

시간은 참 빨라 어제와 오늘의 유행도 달라

시간이라는 화살은 얼마나 더 멀리 날아갈까

시간을 아주 잠깐만 잡아 두고파

난 오늘밤만이라도

...

...


- 3호선 매봉역(feat. Paloalto, Beenzino), 프라이머리





해외에서 지내면서 인간관계에 있어 크게 원하는 게 없었는데,

딱 하나 있다고 한다면...

마음 편히 만날 수 있는 동네 친구를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일 마치고 회사에서 나왔는데 부는 바람이 적당하게 좋을 때나

주말에 날씨가 너무 좋을 때, 망설이지 않고 불러서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했었다.

물론 때때로 회사를 마치고 난 뒤 동료와 한 잔 마시러 갈 때도 있지만,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일 이야기가 나오곤 만다.

시시껄렁한 수다로 시간을 보내며 잠시나마 일, 내일을 잊게 해주는

그런 동네 친구를 언젠가부터 원하고 있었다.

대학 친구도, 회사 동료도 아닌 동네 친구.

사실 사회인이 되고 나서 그런 친구를 만든다는 게 어려운 일이란 건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런데 친구를 만나고 느꼈다.

나는 이미 아주 좋은 친구가 곁에 있다는 걸.

동네 친구는 아니지만, 서로의 사이에 거리만 구만리이지만,

언제든 연락할 수 있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걸.


친구에게 저 노래를 보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어제와 오늘 또 내일은 다르겠지만,

모든 게 변해가도 나는 네 옆에서 친구로 남아있겠다는 마음을 담아서.

이번 만남을 통해서 친구도 나를 그렇게 느껴주었으면 좋을 텐데, 하는 마음을 담아서.

우리의 다음 3호선 매봉역이 어디가 될지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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