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사랑은 항상 어느샌가 시작되어 어느샌가 끝난다"
1편 보러 가기
우리 바에는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커플이 자주 온다.
시부야에서 영화와 라이브를 보고 돌아가는 길에 가볍게 한 잔 마시려고 하는 커플과 휴일에 쇼핑을 하고 남자 친구 집에 가기 전에 2~3잔 정도 마시려고 하는 커플이다.
그런 손님들이 어느 날 “저희 이번에 결혼해요”라고 바텐더인 나에게 알린다. 바텐더로서는 가장 기쁜 순간이다. 무슨 이유인지 나도 그들의 사랑 이야기에 조연이 된 듯 한 기분이 들어서 행복한 결말에 다가서면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건배를 하고 싶어 진다.
그 후, 그 커플들은 얼마 동안은 우리 바를 찾지 않는다. 젊은 두 사람의 신혼 생활을 상상해주시길 바란다.
둘이서 도심의 어두운 바에서 술을 마신다는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 년 후인 어느 날 “오랜만이에요. 오늘은 애들을 본가에 맡기고 와서요” 라면서 가게를 찾아주는 일도 있다.
가을이 깊어지기 시작한 10월의 어느 날, 오랜만에 찾아준 남성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레코드 회사에 근무하는 후지와라 씨는 쌍꺼풀에 커다란 눈동자가 인상적인 남자다운 성격으로 나이는 35세다. 조금은 긴 편인 머리는 가운데 가르마를 타고 있고, 회색 폴로셔츠에 감색 셔츠를 걸쳤으며, 흰 청바지를 맞춰 입었다.
“이렇게 카운터에 앉아서 마시는 건 정말 오랜만이에요. 마스터, 오늘 저녁은 초승달이 꽤 아름다우니깐 뭔가 달과 관련된 칵테일을 주시겠어요?”라는 후지와라 씨의 주문이 있었다.
“그럼,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칵테일이지만 문라이트 같은 건 어떨까요?”
“유명하지는 않네요. 달에 대한 칵테일은 별로 없나요?”
“맞아요. 좀 더 있어도 좋을텐데 저는 이것밖에 몰라요. 아폴로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아폴로 때문인가요?”
“1969년에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도착하고 나서는 달에 대한 꿈이 사라진 건지 달과 관련된 명곡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칵테일 이름에 달을 붙이는 것도 동시에 유행하지 않게 되었다는 상상을 해요.”
“재미있네요. 그럼, 문라이트로 주시겠어요?”
나는 냉동고에서 믹싱 글라스를 꺼내서 얼음을 넣고 헤네시와 친자노 로쏘를 따른 후, 앙고스투라 비터스와 시럽을 더해 스터 방식으로 섞었다.
큼지막한 칵테일 글라스에 따르고 후지와라 씨 앞으로 내고 나서 턴테이블의 레코드를 아스트러드 지우베르투(Asturd Gilberto)의 ‘Fly Me To The Moon’이 들어간 레코드로 바꿨다.
후지와라 씨는 문라이트를 마시고 이렇게 말했다.
“이게 달빛의 맛이네요. 알코올은 강한 듯싶지만요.”
“예전 스타일의 좋은 칵테일이에요.”
“마스터, 지금 나오고 있는 게 ‘Fly Me To The Moon’이죠?”
“잘 아시네요.”
“이 아스트러드 지우베르투의 레코드, 저희 장인어른이 주신 12장의 레코드 중 하나인데 이걸 틀어서 조금은 멋진 일이 일어났어요.”
“12장의 레코드를 받으셨나요? 그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전에 자주 함께 왔던 제 아내, 기억하시나요?”
“술을 좋아하시고 음악과 영화에 대한 조예도 깊은 상당히 멋진 분이시죠.”
“감사합니다. 아내의 아버지께서 상당한 컬렉터예요. 처가에는 장인어른 전용 오디오룸이 있어서 한쪽 벽면에 1만여 장 정도의 레코드가 놓여있어요.”
“1만 장이라니 대단하네요. 처가에는 자주 가셨나요?”
“네. 결혼 전에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처가에서 식사 초대를 받았어요. 아내 쪽 가족은 모두 요리하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장인어른과 장모님, 아내, 처제 이렇게 넷이서 떠들썩하게 저녁 준비를 해요.
요리는 매번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라는 테마가 정해져 있었어요. 여름에는 여름 채소를 듬뿍 넣은 음식, 겨울에는 지비에로 한정하는 것과 같이 프렌치와 이탈리안 요리를 중심으로 중화요리, 태국 요리의 어레인지도 더해서 아무튼 어느 레스토랑보다도 자유롭고 맛있는 요리가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식사를 할 때에는 아무튼 다들 엄청 마십니다. 맥주로 시작해서 화이트 와인, 레드 와인, 장인어른도 장모님도 아내도 처제도 많이 마시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즐거워 보이네요.”
“식사를 끝내면 저도 거들어서 다들 정리를 했어요. 마스터, 약간 취한 상태로 가족 모두가 설거지를 하는 것이 꽤 즐거워요. 조금 전까지 기름과 소스로 더럽혀진 그릇이 깨끗해져서 정리되는 것은 좋은 일이에요. 그다음은 장인어른의 오디오룸에 모입니다. 모두들 자기 취향의 커피와 수제 케이크, 소중히 보관해 둔 싱글몰트 위스키와 유명한 가게의 초콜릿과 같은 식후의 즐거움을 각자 가지고 모여서 좋아하는 자리에 앉았어요.
장인어른이 트는 레코드에는 매번 테마가 있어서 ‘오늘 밤은 프랭크 시나트라의 인생을 돌아보며 레코드를 들어보자’라던가 ‘오늘 밤은 1969년에 발표된 레코드만을 잔뜩 들으면서 비교해보자’와 같은 식이에요.”
“그거 저도 참가해보고 싶네요. 사이가 좋아 보이는 가족이네요.”
“그렇게 생각이 들잖아요. 저도 아내에게 한 번은 ‘정말 사이가 좋은 멋진 가족이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아내에게는 ‘당신이 집에 오는 두 달에 한 번 뿐인 일이야. 다른 날은 다들 바빠서 전혀 얼굴을 보거나 하지는 않아. 당신의 존재가 모두를 이어주는거라고’ 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걸까요? 나중에 두 분은 결혼을 하시잖아요.”
“네. 아내와의 결혼식 날에 장인어른이 저에게 레코드 12장을 주셨어요. 아마도, 다들 발매 당시에 샀던 것일텐데요 장인어른이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깨끗한 레코드로요.
내용은 비틀즈와 글렌 밀러,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사운드트랙과 이 아스트러드 지우베르투의 앨범도 있었고요, 완전히 제각기 달랐고, 감사 인사를 드린 후의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해져서요.”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장인어른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 앨범 모두에는 반드시 한 곡은 <달의 노래>가 수록되어 있어. 부탁이 있네.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이 레코드 중에서 아무거나 괜찮으니 한 장을 우리 딸과 함께 들어줄 수 있겠나?’
그 이야기를 듣고서 레코드를 천천히 봐보니 정말로 어느 앨범에나 <달의 노래>가 수록되어 있었어요.”
“아, 그랬나요?”
“제가 그 레코드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장인어른께서 이렇게 설명해주셨습니다.
‘결혼하면 서로 다투는 일도 있겠고 안 좋은 일도 있을 것이네. 하지만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레코드를 틀고 <달의 노래>를 듣는 것으로 정한다면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일세. 뭐 장인의 처음이자 마지막 고집이네만 들어주게나’
저는 장인어른께 ‘감사합니다. 물론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꼭 아버님의 레코드를 틀고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듣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멋진 장인어른이시네요. 아내분과는 지금도 보름달이 뜨는 밤에 장인어른의 레코드를 듣고 계세요?”
“물론이에요. 얼마 전 세 살 된 딸을 데리고 보름달이 뜨는 날에 맞춰서 캠프를 갔어요.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장인어른에게 받은 아스트러드 지우베르투의 ‘Fly Me To The Moon’을 틀었더니 딸이 거기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딸바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달빛 아래에서 춤추는 딸의 모습이 너무 환상적이라서요. 저도 모르게 아내 손을 잡고 저희들도 뒤뚱거리면서 함께 춤을 춰버렸어요”
“멋진 이야기네요. 아스트러드 지우베르투, 다시 한번 들어볼까요?”
“부탁드립니다.”
우리 바에는 아스트러드 지우베르투가 계속 ‘나를 달에 데려가 주세요’라고 노래하고 있었다.
하야시 신지 (林伸次)
1969년 도쿠시마현 출생. 와세다(早稲田) 대학교 제2문학부를 중퇴 후 RECOfan(중고 레코드점), Bacana & Sabbath Tokyo(브라질리언 레스토랑), FAIRGROUND(Bar)에서의 근무. 1997년 시부야에 bar bossa를 오픈했고, 2001년에는 온라인에 BOSSA RECORDS를 오픈. 선곡 CD, CD 라이너 노트 집필 다수. 일본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 cakes에서 연재 중인 에세이 '와인글라스의 건너편(ワイングラスのむこう側)'의 큰 인기로 바 마스터와 작가를 겸업. 첫 소설 '사랑은 항상 어느샌가 시작되어 어느샌가 끝난다.(恋はいつもなにげなく始まってなにげなく終わる。)'가 화제 중.
'사랑은 항상 어느샌가 시작되어 어느샌가 끝난다.(恋はいつもなにげなく始まってなにげなく終わ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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