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쿄다반사 Dec 20. 2018

연애에는 사계절이 있다

소설 "사랑은 항상 어느샌가 시작되어 어느샌가 끝난다"

도쿄에서 가장 떠들썩한 시부야역 교차로에서 조금 떨어진 조용한 골목에 보사노바가 흐르는 작은 bar 가 있습니다. 20여 년간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마스터 하야시 신지 씨는 보사노바를 비롯한 음악 관련 선곡과 라이너 노트 집필로도 유명하지만, 사실은 대학 시절에 일본 문학을 전공하려고 했었을 정도로 소설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꿈이 얼마 전 소설 '사랑은 항상 어느샌가 시작되어 어느샌가 끝난다'라는 장편으로 실현되었습니다.

책은 가상의 바 마스터가 다양한 손님들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주는 단편들을 모아둔 내용입니다. 각 이야기의 BGM으로 흐르는 음악도 하야시 씨 소설만의 매력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추천사는 시부야계 뮤지션으로 유명한 피지카토 화이브(Pizzicato 5)의 리더였던 코니시 야스하루 씨(小西康陽)의 글이 담겼습니다. 그의 추천사를 통해 소설의 소개를 대신하려 합니다. 

'가능하다면 영원히 후속편을 읽고 싶은 기분과 조금은 부족한 듯한 이런 감각이야말로 호화로운 것이라는 기분이 교차한다. 연애를 인생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한 권'
코니시 야스하루 (음악가)


소설 『사랑은 항상 어느샌가 시작되어 어느샌가 끝난다』

① 연애에는 사계절이 있다



사람들은 왜 바텐더에게 사랑 이야기를 하는 걸까. 바텐더는 이해관계의 바깥에 있기 때문에, 아니면 수많은 연애를 봐왔기 때문에 적절한 조언을 해주기를 기대한다고 자주 듣는다.


그런데 사실 특별한 이유는 없는 듯 한 기분이다. 사람들은 카운터에 앉아서 술이 담긴 잔을 손에 쥐면 무슨 이유인지 눈 앞에 있는 술을 다루고 있는 남자에게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게 된다.


당신은 사랑을 한 적이 있는가? 누군가를 너무 좋아해서 한밤중에 쓸쓸해진 적이 있는가? 그런 마음이 상대방에게 전해지고 상대방도 당신을 생각하고 있어서 마음으로 서로 부둥켜안은 적이 있는가?


하지만 모든 사랑은 언젠가 사라진다.


그 사랑은 분명 어딘가에 있었을 텐데, 그 시절 누군가를 강하게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기분이 분명히 존재했을 텐데, 언젠가는 사라져 버린다.


나는 그런 이 세상에 존재했을 사랑 이야기를 적어서 이 세상에 남겨두려고 한다.




도쿄, 시부야에, 시원한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한 9월의 어느 저녁, 이런 날은 ‘Early Autumn’을 커버한 곡이 BGM으로 딱 알맞다는 생각으로 애니타 오데이(Anita O'Day)의 레코드를 꺼냈다.


‘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가을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을.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죠? 너무나도 빠르다고요’


허스키 보이스에 약간은 연애 선수 같은 느낌의 애니타 오데이가 당당하게 노래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eO_sS6SbCE


가게 안에서 가을이 찾아오는 것을 느끼고 있을 무렵, 문이 열리고 30대 초반 정도의 여성이 들어왔다. 하늘색 꽃무늬 원피스의 가슴 부분은 크게 파여있어서 그 사이로 보이는 하얀 살결이 눈부시다. 길게 찢어진 눈매와 날렵하게 서있는 콧날에는 예전 중국 영화에서 나오는 배우와 같은 내면에 숨겨진 화려함을 지니고 있다. 


“혼자 왔는데요.” 라며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며 약간의 미소를 지었다.


“들어오세요, 좋아하는 자리에 앉으세요.”라고 말하니 입구에 가장 가까운 카운터 자리에 앉았다.


“어떤 걸로 드릴까요?”


“제가 지금 기분이 가라앉아있어서요. 마음을 두근거리게 해주는 술을 마시고 싶은데요 그런 게 있을까요?”


“그럼 최고의 만남이라는 뜻을 지닌 ‘키르’는 어떨까요? 여름이 끝나가는 무렵에 딱 알맞은 기분이 들어요.”


“키르는 화이트 와인에 카시스잖아요. 왜 최고의 만남이라는 뜻이 있는 거예요?”


“오래전 프랑스의 어느 도시의 시장이 그 지역의 알리고떼라는 품종의 화이트 와인을 어떻게든 만들어서 사람들이 마실 수 있게끔 하려고 생각하다가 카시스 리큐르를 섞어서 제공하는 것을 고안했어요. 이 알리고떼의 화이트 와인 산미와 미네랄 향과 카시스의 만남이 너무나도 굉장했기 때문에 키르는 최고의 만남이라는 뜻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그렇군요. 그럼 키르로 주세요”


나는 가늘고 긴 와인 잔에 알리고떼 품종의 화이트 와인을 따르고, 냉장고에 차갑게 해 둔 카시스 리큐르를 더했다.


키르를 내었더니 그는 빛깔을 보고, 향기를 맡은 후 가만히 유리잔을 입에 옮겼다.


“맛있어요! 확실히 최고의 만남이네요. 다시금 유래와 의미에 대해 설명을 들으니 화이트 와인과 카시스 조합의 대단함을 잘 알 것 같아요. 그렇구나, 나도 처음에는 분명 이렇게 좋은 만남이었을텐데”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마스터, 제 얘기를 들어주시겠어요?”


“물론이죠”


“연애에 계절이 있다는 사실을 아세요?”


“연애에 계절이 있다고요?”


“그래요. 그럼 봄부터 설명을 드릴께요. 연애는 봄부터 시작이 됩니다.


사실 연애란 것은 봄이 가장 즐거워요.


서로가 좋아하는지 어떤지를 그 사람이 보내준 문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고서 ‘역시 날 여자로서 마음에 두고 있는구나’라고 확신하거나, ‘전해줄 게 있어서’라는 이유를 들어 일부러 어딘가에서 만나거나, 아무렇지 않은 듯 ‘그럼, 답례의 의미로 식사라도 같이 하실래요?’와 같은 문자를 보내거나 하죠.


조금씩 거리가 줄어들고 ‘분명 날 좋아할 거야’라는 확신이 서고요, 하지만 어떨까 하는 마음도 있어서 조금은 불안해지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그 사람이 이상하게 가까이 있다는 생각이 든 순간 손을 잡아줘서 깜짝 놀라거나. 그런 분위기가 꽤 즐겁지 않나요? 가장 괴롭기도 하고 가장 즐겁기도 하잖아요. 


봄의 끝은 키스에요. 두근거리는 마음이 가장 고조될 때에 그 사람이 키스를 해주면 그걸로 연애의 봄은 끝나고 여름이 시작됩니다.


둘 만의 밤을 경험하고 본격적으로 연애의 여름이 시작되죠. 마스터, 서로 사랑하는 사이의 연인들은 하루의 80퍼센트 정도의 시간을 서로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아시나요? 정말 그렇게 되어버리잖아요. 정말 직장에서도 친구와 차를 마시고 있을 때도 계속 그 사람에 대한 것만을 생각하게 되고, 아마도 그 사람도 저에 대한 것만을 생각해줄 거에요. 그런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거에요.


한밤중에 갑자기 그 사람과 만나고 싶어지는 기분이 드는 것도 여름만의 특징입니다. 문자로 ‘보고 싶어’라고 보내고 그 사람도 ‘나도 보고 싶어’라고 보내주고, 그 사람이 우리 집까지 택시로 와주거나 하잖아요. 뭔가 엄청난 기세로 문 앞에서 서로 껴안고 그대로 관계를 가지게 되고, 그러고 나서는 ‘배고프다’ 같은 이야기를 하며 한밤중에 근처 편의점까지 손을 잡고 같이 가고요. 즐거운 시간이네요. 정말 병에 가까워요. 그 사람과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고 할까, 그 사람도 저를 안고 있는 것으로 기분이 전해지니깐요 정말 행복해요.”


“알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 갑자기 가을바람이 불었어요. 마스터, LINE 글은 받을 때에 휴대폰 화면에 한 줄만 표시되는 거 알고 계세요?’ 


“알람이 오죠.”


“맞아요. 그 알람을 보고 급한 용건이 아니면 LINE을 열지 않고 그대로 놔두게 돼요. 그러면 ‘읽음’으로 표시되지 않으니깐요 상대방에게도 ‘아, 지금 바빠서 휴대폰을 볼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되기 때문에 조금 귀찮은 상대에게서 온 메시지라면 그대로 방치해서 ‘읽음’으로 되지 않게 하는 일이 자주 있어요.” 


“그렇군요.”


“요즘 그 사람, 그런 게 가끔 있어요. 전에는 전혀 없었는데. 아무리 바빠도 제 메시지는 바로 보고 답장을 줬어요. 그랬던 것이 얼마 전부터 확연하게 읽지 않은 채로 방치해두고 있구나 하는 걸 느끼는 때가 있어요.”


“정말 바빠서 휴대폰을 볼 수 없는 것뿐인지도 몰라요.”


“아니에요. 그런 건 알 수 있어요. 이상하죠. 실제로 확인하지 않더라도 ‘아, 읽지만 않은 거지 그 사람에게 메시지는 전해졌구나’라는 건 뭔지 모르지만 알 수 있어요.”


“그런가요?”


“얼마 전에 이미 ‘읽음’ 표시가 되어 있는데도 답장이 오지 않은 적이 있었어요. 그 날, 저는 ‘아, 가을이 시작되었구나’라고 느끼게 되었어요”


“답장이 안 오는 게 그렇게 엄청난 사건인가요?”


“그래요. 평범한 건 아니에요. 뭐랄까 연애의 봄 즈음에는 ‘빨리 답장을 보내야지’라던가 억누르려는 마음이 있긴 하지만 확실히 어떤 일이 있어도 답장을 보내줘요. 


연애의 여름이 찾아온 때에는 아무튼 계속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연락만 주고받아요. ‘좋아해’, ‘뭐하고 있어?’, ‘보고 싶어’, ‘이거 먹고 있어’와 같은 그런 이야기들만 보내게 돼요.  

 

답장이 없다는 건 이미 이상한 거예요. 스티커라도 ‘(웃음)’이라도 뭐라도, 하고 싶은 말이 없어도 답장은 보내요. 보내고 싶어 해요. 그래서 ‘이미 가을이구나’라고 알아차리게 됩니다. 


아마도 앞으로는 조금씩 대화가 적어지고 만나는 것도 적어져서 겨울이 올 거예요.


마스터, 연애에 계절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계절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겠네요. 가을에서 여름과 여름에서 봄으로는 절대로 돌아갈 수 없겠네요. 마찬가지로 연애의 계절도 역행하지는 못 할 것 같네요.”


“그럼 계절이 지나가는 속도를 천천히 시키는 것은 가능할 것 같으세요?”


“그건 가능할 것 같네요. 계속 마음을 고백하지 않고 마음이 뜨거운 상태로 멈추게 둬서 봄인 채로 있다던가, 여름이 되어도 그렇게 너무 많이 만나지는 않는 것 같은 건 가능할 것 같아요. 


너무 많이 만나서 서로에 대해 너무 많이 알게 되어 비밀이 없어지게 되면 계절은 빨리 지나가버릴 듯 한 기분이 들어요. 


하지만 가을이 되면 겨울은 순식간에 눈 앞에 다가올 듯하네요.”


“마스터, 연애의 가을도 즐기는 편이 좋겠죠.”


“맞아요.”


“가을도 즐기지 않으면 제 연애가 불쌍할 것 같아요. 그렇게 봄과 여름을 끌어안았으니, 가을도 겨울도 꽉 안고 있을래요.”


“’언젠가는 사라질거야’, ‘이제 곧 끝날 거야’라고 알고 있는 사랑이라도 마지막 빛을 지켜보는 것이 그 사랑을 아름답게 만들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아, 그렇게 생각해보니 사랑의 가을과 겨울이라는 계절도 쓸쓸해서 좋은 것이겠네요.”


그렇게 말한 후, 최고의 만남이라는 뜻의 키르에 입을 대었다. 배경에는 애니타 오데이가 ‘가을이 오는 게 너무나도 빨라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죠? 너무나도 빠르다고요’라고 노래하고 있었다.




하야시 신지 (林伸次)
1969년 도쿠시마현 출생. 와세다(早稲田) 대학교 제2문학부를 중퇴 후 RECOfan(중고 레코드점), Bacana & Sabbath Tokyo(브라질리언 레스토랑), FAIRGROUND(Bar)에서의 근무. 1997년 시부야에 bar bossa를 오픈했고, 2001년에는 온라인에 BOSSA RECORDS를 오픈. 선곡 CD, CD 라이너 노트 집필 다수. 일본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 cakes에서 연재 중인 에세이 '와인글라스의 건너편(ワイングラスのむこう側)'의 큰 인기로 바 마스터와 작가를 겸업. 첫 소설 '사랑은 항상 어느샌가 시작되어 어느샌가 끝난다.(恋はいつもなにげなく始まってなにげなく終わる。)'가 화제 중.


'사랑은 항상 어느샌가 시작되어 어느샌가 끝난다.(恋はいつもなにげなく始まってなにげなく終わる。)'

https://www.amazon.co.jp/dp/434403318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