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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시부이 나오토의 파티 선곡

도쿄에서 음악과 함께라면

by 도쿄다반사


요즘 관심있게 찾아보고 있는 드라마가 있는데 테레비도쿄(TV TOKYO)에서 매주 목요일 심야시간에 방송하는

'디자이너 시부이 나오토의 휴일(デザイナー 渋井直人の休日)'이라는 작품입니다.



간단하게 내용을 소개하자면 휴일에 레코드 가게에 다니거나 카페에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기는 50대 중년 (아저씨) 디자이너인 시부이 나오토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웃음을 지을 수 있으며, 조금은 외로움이 느껴지는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습니다.


원래는 시부야 춋카쿠(渋谷直角)의 원작 만화를 드라마화한 작품입니다. 시부야 춋카쿠는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의 도쿄의 분위기를 만들었던 매거진하우스의 유명 잡지 relax의 필진으로 데뷔했어요. 그리고 그런 경력답게 작품 속에 등장하는 거리, 가게, 인물들이 도쿄다반사를 통해 소개해드리고 싶은 제가 즐기는 도쿄의 일상 풍경과 가장 잘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얼마전 도쿄에 갔을때 드라마를 보면서 자주 찾아가던 장소들이 드라마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디자이너 시부이 나오토의 휴일




가끔 도쿄다반사에서 오프라인 음감회를 열거나 믹스클라우드를 통해 선곡을 공개할때 ‘도쿄의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의견을 가끔 받습니다. 그럴때마다 어떤 요소가 그런 느낌을 가져다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도쿄다반사의 선곡은 대부분 제가 도쿄에서 만난 음악들을 위주로 고르고 있습니다. 유학 시절 친구도 지인도 없던 때 혼자 시부야의 중고 레코드 가게를 하루종일 돌아다니면서 들었던 음악, 그리고 그 음악을 통해 만난 도쿄의 선곡가들이 열고 있는 선곡 파티에 찾아가서 들었던 음악들이 대부분이에요.


그게 지금부터 10여년도 훨씬 이전의 일입니다. 부끄럼을 많이 타는 단지 음악만 좋아하는 한국 사람이 도쿄의 한 카페 구석에서 조용히 음악을 듣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그게 제가 도쿄에서 경험한 음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그런 한국인이 눈에 띄었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 자리에 모인 여러 사람들을 소개해주셨고요.


한국이나 일본이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고 각자가 즐겨듣는 음악도 다양하리라 생각듭니다. 그냥 한 가지 도쿄에서 경험을 통해 알게 된건 ‘도쿄’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던 뮤지션과 앨범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처음 접한 뮤지션들이 많아서 그 영향을 받아서 하나하나 음악을 알게 되고 음반을 모으게 되었고, 아마 그런 작은 차이가 선곡에서 드러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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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지금부터 올리는 음악들은 혹시 생소하게 느끼실지도 모르겠지만 도쿄다반사를 알고 계신 일본 지인들은 ‘아, 이런 선곡 음반을 들었구나’, ‘이런 이벤트에 자주 갔나보네’, ‘혹시 레코드 가이드북은 이걸 봤으려나’ 하는 추측이 어느정도 가능하실 것 같고요, 그만큼 도쿄에서는 어느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뮤지션과 앨범들입니다.





'디자이너 시부이 나오토의 휴일'의 원작 만화에 있는 Make It Sweet 라는 챕터의 첫 부분 입니다.

앞서 적어드린대로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도쿄에서 일상적으로 열리는 ‘카페에서 열리는 선곡 DJ 이벤트’에 시부이 나오토가 DJ로 참여하는 내용의 에피소드에요.


여기에는 시부이 나오토를 포함한 DJ들이 선곡하는 과정과 실제 음반이 자세히 나와있는데요 바로 여기에서 앞서 제가 말씀드린 도쿄에서 만난 앨범들이 연이어 등장합니다. 그 음악들을 같이 들어보도록 할께요.


사진에 보이는 첫 부분 이후에 바로 등장하는 시부이 나오토가 틀고 있는 레코드는 코우 히로미(郷ひろみ)의 1979년 작품인 Super Drive 라는 앨범입니다. 미국의 퓨전 재즈 밴드인 24th Street Band 가 세션으로 참여한 이 시기에 많이 등장했던 '시티팝' 계열의 음악을 들려줍니다. 요코오 타다노리(横尾忠則) 특유의 감각이 느껴지는 커버 아트웍도 인상적이에요.


코우 히로미(郷ひろみ) / 해안가에서(入江にて) (1979)


시부이 나오토의 순서가 끝나고 카페 Mas Que Nada의 오너와 교대를 하면서 트는 곡은 우리에게는 Loving You로 잘 알려진 Minnie Riperton의 데뷔작에 수록된 Memory Band 에요. 보사노바 스타일의 비트와 소울풀한 목소리가 잘 어우러지는 곡입니다.


Minnie Riperton / Memory Band (1970)


파티에 참가한 귀여운 여성이 시부이 나오토에게 디제이 때에 틀었던 음악을 물어보는 장면에서 나오는 레게 스타일의 넘버는 락스테디의 선구적인 스타일로 잘 알려진 Carlton And The Shoes 의 곡이에요. Fishmans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익숙한 멜로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장면에서 여성은 시부이 나오토에게 자신은 아이돌 그룹인 노기자카46(乃木坂46)을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해요. 원작 만화의 초반부에서 시부이 나오토가 빠지게 된 아이돌이 속한 그룹 역시 노기자카46 이라서 둘 사이의 친밀도가 급격히 높아집니다. 그리고 여성을 위해 노기자카46을 어떻게든 틀어주려고 하는 장면이 나와요.


Carlton And The Shoes / Give Me Little More (1982)


Mas Que Nada의 오너가 시부이 나오토와 교대를 하기 위해 틀었던 곡은 재즈 보컬리스트 Nina Simone의 발라드였습니다. 정확한 곡명을 지칭하지는 않아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으로 담아봐요.


Nina Simone / I Get Along Without You Very Well (Except Sometimes) (1969)


다시 시부이 나오토가 디제이로 등장하고 노기자카46을 틀기 위한 선곡 전개를 위해 몇 가지 앨범을 고르게 됩니다. 싱어송라이터 계열과 브라질, 소울 음악의 순서로 선곡을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요.


그리고 등장하는 레코드는 싱어송라이터인 Laura Nyro의 모타운과 필리 소울 계열의 감성이 풍부하게 들어간 앨범인 Gonna Take A Miracle 이에요.


Laura Nyro / Gonna Take A Miracle (1971)


이렇게 노기자카46을 틀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파티의 다른 참가자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음악에 신경을 쓰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시부이 나오토는 여성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려주기 위해 조금은 긴 곡을 틀어놓고 여성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카운터 바 쪽으로 가서 맥주를 주문하게 됩니다. 그 때 등장하는 앨범은 Donald Byrd의 하드밥 시절의 명반인 Slow Drag에요.


Donald Byrd / The Loner (1967)


하지만 그런 존재감을 나타내려는 행동에도 이야기에 정신이 팔린 여성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합니다. 아무튼 모타운 스타일의 느낌이 난다는 노기자카46의 곡을 틀기 위한 선곡에 열중한 시부이 나오토는 드디어 노기자카46의 곡을 틀 수 있는 분위기의 곡으로 연결합니다. 그 때 등장하는 곡은 Diana Ross가 멤버였던 모타운의 대표적인 보컬 그룹인 The Supremes 입니다.


The Supremes / You Can't Hurry Love (1966)


그리고 대망의 노기자카46의 CD를 틀게 됩니다. 하지만 여성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다음 순서인 디제이에게 '뭐 이런 곡을 다 틀어요?' 라는 눈치만 받게 됩니다. 그리고 노기자카46의 음악은 바로 도중에 끊기고 다음 곡으로 넘어가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이렇게 실패로 우스꽝스럽게 끝나거나 창피함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마쳐지게 되요.


노기자카46 (乃木坂46) / 13일의 금요일 (13日の金曜日) (2013)


일본에서 본 드라마와 실제 원작을 비교했을때 거의 원작을 그대로 보여주는 구성이었는데 혹시라도 이 Make It Sweet 편이 나온다면 음악만으로 충분히 도쿄의 풍경을 전해줄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한정된 용돈에 하루종일 시부야의 레코드 가게에 있었던, 그리고 아무말도 안하고 밤새도록 세련된 사람들로 가득한 카페 구석에서 조용히 음악을 들으면서 지냈던 보람이 조금이라도 있는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해야할때 말주변이 없어서 잘 설명을 못 해드렸는데 드라마화가 된다면 그걸 말씀드리면 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감각을 지닌 50대가 되면 좋겠다는 목표 비슷한 것도 정해봤어요.


조금은 시부이 나오토에 대한 연민의 정이 느껴지면서 드라마를 다 보게 되면 엔딩 크레딧과 함께 마음이 상쾌해지는 음악이 흐르게 됩니다.


바로 드라마의 엔딩 테마로 쓰이고 있는 Nulbarich의 Sweet and Sour 입니다. Suchmos 나 cero 와 같은 스타일을 좋아하는 음악팬들에게 추천되어지고 있다는 밴드에요.


Nulbarich / Sweet and Sour (2019)


이 드라마도 우리나라에서 케이블로 방송을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도쿄다반사의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기회가 된다면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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