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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프리 Tokyofree May 29. 2023

한국인에겐 생소한 일본 출근길 전철 풍경

“현재 야마노테선은 시부야역 부근의 사고로 인해 열차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반복합니다…”


일본에서 출근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늦잠이라던가, 전날의 늦은 술자리라던가, 아니면 아침에 급작스레 건강에 이상이 생기던가 등의 일들이다. 그중에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열차 지연’을 꼽을 것이다.


‘에이, 한국에서도 가끔 있어. 시위 같은 거 하고 그러면 열차 멈추고 하잖아. 나도 저번에 출근 때 그래서 얼마나 애먹었다고.’


그래, 맞다. 한국에서도 가끔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그 빈도가 심상치 않다. 오죽 많이 일어나면 예전에는 열차가 지연되면 역사에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더란다. ‘열차 지연 증명표’를 역무원에게서 받아가 회사에 제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디지털화가 되어 인터넷을 통해 증명이 가능해졌다고 하더라.


무슨 지연이 그렇게 많이 일어나는 걸까?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만 내가 직접 봤던 원인들 중에는 ‘Human Accident’ 즉, 인적 사고가 제일 많았다. 다만 전광판에서는 ‘인적 사고가 발생하여 현재 열차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정도의 이야기만 해준다. 사람이 뛰어내렸을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그중에 내가 직접 겪은 특이한 일화가 하나 있다.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출근 시간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도록 맞춰서 집을 나섰다. 아침 시간에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출근을 하기 때문에 다른 시간대보다 줄이 긴 편이다. 하지만 그날은 유독 심했다. 줄이 전철 탑승구 주변에서 끝나지 않고 계단 아래까지 내려와 있던 것이다.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출근해야 했기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10분… 20분… 그렇게 묵묵히 30분을 기다렸을까.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는 순간이 왔다. 그래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던 찰나에 일본어로 알아듣기 힘든 안내 방송이 울렸다.


“현재 야마노테선은 시부야역 부근의 사고로 인해 열차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반복합니다…”


아뿔싸. 사고가 났구나.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는 다르다 싶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하던 나는 근처 역무원이 확성기로 소리치는 내용을 듣고서야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날 아침에 시부야역 안에서 경찰과 어느 시민들 간에 술래잡기가 있었다. 범인들은 20대의 젊은이들. 아마 술을 먹었는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열차가 지나다니는 선로로 뛰어들어간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출동한 경찰들이 그 사람들을 잡는 사이에 해당 역을 지나치는 열차들이 전부 멈췄었다.


그 사태는 회사에 보고하고 1시간이 넘게 줄을 서서 사건이 해결되기를 기다렸음에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결국 다른 역으로 걸어가 멀리 돌아가는 루트로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어렵사리 회사에 도착하자 평소 출근시간보다 2시간 정도 늦었지만 다행히도 별다른 말씀은 없으셨다.


누구보다 공중질서를 잘 지킨다는 일본에서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사실 ‘일본 사람들이 공중질서를 잘 지킨다’라는 것은 나의 선입견이었을 테다. 어쩌면 ‘일본 사람들은 모두 다 공중질서를 잘 지켜야만 해’라고 생각했던 나의 고집이 ‘모든 것이 완벽한 일본’이라는 이상향을 만든 걸지도 모른다. 그런 것은 현실에 있을 수 없는데도 말이다. 나는 야마노테선 역사 안에서 그런 생각을 하며 끝나지 않는 술래잡기가 끝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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