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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프리 Tokyofree May 22. 2023

일본 전철 노약자석에 당당히 앉는 젊은 사람들

‘일본 사람들은 노인 공경이라는 개념이 없나?’


항상 젊은이들로 가득 차 있는 일본 전철 노약자석을 보며 들었던 생각이다. 여행 때는 별로 의식하지 않았지만, 매일 출근길에 만원 전철을 타야 하는 직장인 입장에서는 눈에 거슬렸다. 나는 규칙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앉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마 한국인이라면 같은 생각이지 않았을까?


그러던 어느 날, 호기심이 들어 구글에 ‘일본 노약자석’을 검색해 보았다. 아뿔싸, 알고 보니 나의 착각이었다.


한국의 노약자석은 노인, 장애인 등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자리이다. 이건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한국과는 달리 일본의 노약자석은 평소에 누구나 앉을 수 있다. 앞에 노인분들이 다가오면 자리를 양보하는 방식이었다.


이 사실이 내게는 굉장히 의아했다. 일본에 실제로 살아보면서 일본이 얼마나 융통성 없는 나라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유를 하자면 딱 봐도 직선일 것 같은 길을 메뉴얼에 없다는 이유로 곡선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형국이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일본의 융통성 없는 문화에 혀를 내둘렀던 적이 있다. 집을 비우기 전에 사용하던 인터넷을 해지하여야 했다. 2년 약정이었기에, 해지반환금과 함께 마지막달 요금을 함께 지불해야 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지불하려고 했는데, 업체 측에 선불을 받아줄 수 없다고 답했다.


비행기 날짜가 바로 코앞이어서 돈을 주겠다는데도 받지 않겠다니,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근처 대리점에 가서라도 지불하겠다고도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아무리 사정을 해도 로봇처럼 선불은 안된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결국 일본에서 출국할 때 일본 계좌가 바로 정지당하지 않기를 기도하며 사용하던 통장에 돈을 넣고 돌아왔었다. 다행히도 정지되지 않아 돈은 무사히 빠져나갔지만 정말 융통성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라에서 이렇게 융통성 있는 모습을 발견하다니.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메뉴얼을 고집하는 일본 문화의 뒷면에는 이렇게 남을 배려할 수 있는 융통성이 숨어있는지도 모르겠다. 출근 시간, 일본의 서로 다른 묘한 간극을 느끼며 사람으로 가득 찬 일본 야마노테선 안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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