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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프리 Tokyofree Jun 19. 2023

한국인이 이야기하는 일본의 ‘원칙대로’ 문화


"처리했던 내용 다시 롤백해달래요. 빨리!"


그건 작년 여름, 내가 일본에서 일하고 있을 때 일어났던 일이다.


나는 일본 회사의 IT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사내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는 부서였는데 특이하게도 우리 부서는 부서장부터 막내까지 전부 한국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출근한 우리 부서원 중 한 명이 직원들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에서 오류를 발견한 것이 일의 시발점이었다. 그 부서원은 바로 부서장님께 보고 드렸고, 원인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해결 방법을 먼저 알아내어 바로 에러를 수정하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그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부서에 먼저 알리는 것이 원칙이겠으나 고객을 상대하는데 사용되는 프로그램인지라 자칫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판단하에 그렇게 진행되었다.


다행히도 우리는 점심시간까지 열심히 일해서 프로그램 수정을 마치게 되었다. 이윽고 담당 부서에 연락하여 이런 문제가 있었고 현재 원인은 파악 중에 있다고 전달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원칙상 원인의 파악이 되지 않으면 프로그램을 수정해서는 안되므로 다시 롤백해달라는 요청이 온 것이다.


당시 나는 그 의견을 전달받고 어안이 벙벙했다. 당장 직원들이 사용해야 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문제 해결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쪽 부서가 원하는 대로 다시 문제가 있는 프로그램으로 복구해 주었고, 우리는 섣부른 판단을 했다는 명목으로 지적받게 되었다. 그 후 원인을 파악하게 되는 4주 뒤까지 그 프로그램은 그 상태로 유지되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융통성 있게 하자."


한국에는 이런 문화가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내가 군대에 있을 시절에도 많이 들었던 이야기이다. 서로 융통성 있게 넘어가자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FM대로 원칙을 지키는 사람을 보면 앞뒤가 꽉 막혔다고 표현한다. 적당히 융통성을 발휘할 줄 아는 것이 올바른 사회 구성원의 면모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무조건 원칙대로 하는 것이 기본이다. 모든 것을 원칙대로. 조금만 비틀면 더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원칙을 전부 지켜가며 일을 진행해야 한다. 한국인으로서 일본에 가서 일을 할 때 제일 답답했던 원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런 문화는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서로 융통성 있게 넘어가다 보면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디까지가 이쪽 책임이고 어디까지가 저쪽 책임인지 불분명하게 된다. 그러면 서로 책임 전가를 하기 바쁜 모양새가 된다. 누구나 책임을 지는 것은 싫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대개 갑의 위치에 있거나 목소리가 큰 쪽이 이기게 된다.


반면 모든 것을 원칙대로 진행한다면 문제가 생긴 것은 대개 원칙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때 발생한다. 따라서 책임 소재가 명확하게 된다. 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굉장히 건조하게 보이지만 불필요한 과정이 생략된다. 억울한 사람이 생길 여지도 적어진다.


하지만 어떤 것이 더 좋은 문화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분명 고르지 못할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모든 것은 장단점이 존재하기에 상황에 따라 그 가치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발전해 온 나라가 지금의 한국이듯이, 무조건 원칙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발전해 온 나라가 현재의 일본이다. 그런 문화에는 그들만의 역사가 있고 결과가 존재한다. 비슷한 듯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우리가 다른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화를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나둘 지식이 늘어날 때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의 범주 또한 늘어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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