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도쿄프리 Tokyofree
Jun 05. 2023
일본에서 직장인으로 살 때가 한국에서 백수로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자유로웠다.
이 이야기는 개인차가 그득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니 나 개인의 의견으로 읽어주었으면 한다.
일본에서의 직장 생활 1년 동안 모든 순간이 행복하지는 않았다. 도망친 곳에 낙원 없다고, 도망쳐서 일본에 갔던 것은 아니지만 내심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직장 생활을 한다면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던 샐러리맨이 가지는 고충은 모두 동등하다. 그러므로 일본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졌을 때는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는 것과 큰 차이를 느끼진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느 날 문득 굉장히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사람들을 제외하면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나라에서 산다는 것. 그것만으로 내가 느끼는 부담감이 훨씬 줄어들었던 것이다. 원래의 내 모습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건 내가 어떻게 살든 간에 “너 왜 그래?” 라든가 “어디 아파?”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거기에 외국에 산다는 해방감이 더해지자 자연스레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게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온 내가 느낀 것은 압박감이었다. 결코 일본이 낙원이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도 학벌, 나이에 맞춰진 에스컬레이터가 있어 그 밖을 벗어나면 낙오되는 건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들 입장에서 외국인인 나는 틀 밖의 존재였기에 그런 눈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오니 다시 한국의 ‘나이에 맞는 수준’이라는 틀이 나를 반겼다. 별로 반갑지 않은 환영이었다. 일본에서 책을 읽으며 생각했던 나의 미래에 대한 여러 계획들이 과연 올바른지 의심이 되기 시작했다. 사회의 틀에서 벗어난 이 길이 정녕 맞는 것인가. 혹시라도 실패한다면 낙오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렇다. 일본에서는 직장인으로 살고 한국에서는 백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나보다 일본에서의 내가 더 자유로웠던 것이다. 혹자는 이걸 보고 방종이라고 부를 것이고, 무계획 또는 생각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집에 혼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사회가 정해둔 틀에서 벗어나 있다는 압박감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점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한 번도 닭장을 벗어나보지 못한 닭은 푸른 초원이 주는 자유로움을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있는 닭장이 좁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없다. 나도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한쪽 단면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 경험한 후에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의 어느 자취방에서 혼자 고독의 시간을 씹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