붐비는 퇴근길. 매일 같이 지친 몸을 이끌고 야마노테선을 타고 사택이 있는 이케부쿠로에 내렸었다. 일본에서 회사를 다니는 내내 나의 퇴근길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오늘 저녁 뭐 먹지?'였다.
회사 근처에서 먹기에는 회식하러 나오는 회사 사람들을 마주칠까 두렵고, 중간에 먹을 곳을 찾아다니자니 다음 날도 출근할 생각에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보통 퇴근길인 이케부쿠로역과 집 사이에서 끼니를 해결하고는 하였다.
오늘 이야기할 곳은 내가 항상 끼니를 해결했던 곳들 중에서 가장 가성비 있고 포만감을 채워주었던 고기덮밥집, '니쿠게키죠'다. 니쿠게키죠는 일본어로 '肉劇場'라고 쓰며 한국어로 해석하면 '고기극장'이라는 의미이다. 도쿄 내에는 이케부쿠로에만 있으며 듣자 하니 오사카 난바에도 한 지점이 있다고 들었다. 일본 전토 통틀어서 딱 2군데에만 있는 가게인 셈이다. 이걸 프랜차이즈라고 해도 될지 의문스러운 수준이다.
그럼 맛이 없어서 가게가 별로 없는 걸까? 천만의 말씀. 내가 일본에서 먹은 고기 요리집 중에 손에 꼽는다. 물론 직장인이 한 끼 식사로 생각할법한 예산 안에서 고른 것이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여러 사람들을 이 집에 데려왔었지만 만족도 100%를 받은 맛집 중의 맛집이다.
이건 매장 입구에 붙어 있는 메뉴판인데,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고기가 그득히 올라가 있는 덮밥집이다. 자세하게는 밥 위에 채 썬 양배추를 올리고 그 위에 부엌에서 직화로 구운 고기가 올라간 후 소스로 마무리된다.
고기의 종류도 다양하다. 돼지고기, 닭고기에 소고기까지 있는 데다 심지어 고기 부위도 여러 종류이다. 거기에 더해 한 종류의 고기만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2종류에서 4종류까지도 가능하다. 돈을 더 내서 고기를 추가하면 밥을 다 먹어도 남아있는 고기를 볼 수 있다.
매장에 들어가면 바로 좌측에 식권을 뽑는 기계가 있고 그 바로 앞에 부엌이 길게 늘어져 있다. 그 반대 편에는 1명씩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카운터 석이 있고, 가장 안쪽에는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가파른 철제 계단이 우뚝 솟아있다.
넘어지면 위험하지 않을까 싶은 계단을 꼬박 올라가면 많아야 4명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4개 정도 있고, 마찬가지로 혼자 먹을 수 있는 카운터석이 있다. 미리 고백하자면 이 집은 많은 인원이 한 번에 가서 먹기에는 좌석이 적어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최대 4명 정도가 적당하고 가장 추천하는 것은 혼밥이다.
입구 좌측에 있는 기계를 통해 밥 양, 고기 종류 등을 결정하고 나면 안에서 대기하고 계신 직원분께 식권을 전달하면 된다. 그때 일본어로 '소스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하고 물어보시는데, 당황하지 않고 가리키고 계신 소스판을 통해 원하는 맛을 골라주면 된다. (위의 사진)
14가지나 되는 소스들이 있어 고른 고기에 맞춰 다양한 소스로 덮밥을 먹을 수 있다. 꿀팁을 2개 주자면 한국인의 입맛에는 'にんにく'라고 적힌 'Garlic (마늘)'이 들어간 소스를 고르는 것을 추천한다. 위에 비슷한 글자가 있는 소스들에 비해 마늘맛이 들어가 나 같은 한국인의 입맛에는 더 맞는 소스들이다.
또 하나의 꿀팁은 꼭 하나의 소스만 고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한 번에 2~3가지 소스를 고르는 것도 가능하다. 단지 그렇게 되면 직원분이 '섞어서 드릴까요?' 하며 되물으시는 질문에 한번 더 답변해야 한다는 작은 불편함(?)이 생길 뿐이다. 원하는 대로 답하자.
주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으면 이런 소스통들이 당신을 반겨준다. 아래에 보이는 3개의 소스통은 가루 파우더형 소스통인데 원하는 맛이 있다면 뿌려먹어 봐도 좋다. 1층의 경우 테이블에 물통이 있어 바로 마시면 되고, 2층의 경우 올라온 계단 바로 앞에 얼음과 물이 나오는 정수기가 있으니 직접 떠다 마시면 된다.
5~10분 정도 기다리면 음식이 나온다. 덮밥이야 말할 것도 없이 맛있다. 솔직히 한국인이라면 밥 위에 고기가 듬뿍 올라가 있는 데다 맛있고 진한 소스까지 뿌려져 있는 덮밥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이 가게의 장점이 한 가지 더 있는데, 바로 같이 나오는 계란국과 숙주나물이다. 일본에서 내가 느꼈던 불편한 점 중 하나가 바로 한국에서 먹던 반찬을 먹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 집에서 나오는 계란국과 숙주나물은 한국에서 먹던 맛이 난다. 계란국은 어머니가 김치볶음밥을 해줄 때 같이 끓여주시던 파와 계란이 들어간 계란국 맛이 나고, 숙주나물도 소금으로 간을 한 아삭한 나물이다. 심지어 숙주나물은 무료로 리필도 가능하니 마음껏 와구와구 먹어도 된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은 이 집에서는 생맥주를 팔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맛있는 고기덮밥을 두고 생맥주를 마시지 못한다니 통탄할 노릇이다. 아쉬움을 달래고자 맥주를 시키면 캔맥주와 함께 컵이 나온다. 시원하고 맛있는 생맥주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같이 마셔줄 만하다.
마지막으로 참고사항 몇 가지만 말하고 글을 마쳐보려 한다.
1. 가게에서는 현금결제가 제일 편하다. 다른 방법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일본에 살고 있던 나마저도 다른 방법을 찾다가 포기하고 현금으로만 사 먹었다. IC카드도 안 되는 것 같다.
2. 개인적인 추천 메뉴는 3종류의 고기를 올려 먹는 덮밥과 '부타바라'라고 불리는 대패삼겹살이 올라간 덮밥이다. 전자는 여러 가지 고기들을 맛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후자는 가성비 있게 맛있는 고기 덮밥으로 배를 채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특히 부타바라는 고기가 얇은 편이라 소스의 맛이 더 잘 느껴져 덮밥으로 안성맞춤이다. 고기의 양도 적지 않다.
3. 만일 2번 이상 방문할 생각이 있다면 첫 번째는 포장으로 먹고 2번째는 가게에서 먹는 것도 추천한다. 그 이유는 포장으로 주문할 시 가게에서 사용가능한 ‘무료 고기 추가’ 쿠폰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이건 다음에 포장할 때 사용해도 되고, 가게에서 먹을 때 사용해도 된다. 단, 부타바라와 같은 특정 메뉴의 경우 해당 쿠폰을 사용할 수 없으니 그 점은 조심하여 사용해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쿠폰에 적혀있으니 참고하시라. 나의 경우 자주 먹던 집이어서 계속 포장해 먹는 방법으로 계속해서 무료로 고기 추가를 해 먹었다.
내가 일본에 있는 동안 정말로 사랑했고, 여행으로 도쿄에 갈 때마다 생각나면 들리는 애정하는 고기덮밥 맛집을 소개해보았다. 만일 당신이 도쿄여행 계획 중에 이케부쿠로 근처 일정이 있다면 한번 가보시라. 분명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