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광고 연구 동아리 멤버였던 우리가 처음 해낸 일
대학시절, 나는 두 가지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한 곳은, 지난 글에서 소개한 사진부, 또 한 곳은 광고 연구회였다. 사진부는 취미활동에 가까웠지만, 내게 있어서 광고 연구회에서의 활동은 꿈꿔왔던 광고업계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한 첫 번째 도전이었다.
지금도 가끔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 ※쿠리바야시 선배와는 이 곳에서 처음 만났다. 우리 학교의 광고 연구회는 수년 전까지 있다가 중간에 멤버수가 적어져서 폐지되었지만, 쿠리바야시 선배 덕분에 다시 살아났다. 나는 이곳에 제2기 멤버로 참가했다.
※그는 지금, 일본 최대의 광고대행사 하쿠호도에서 Buzz Machine이라 불리며 일본 광고업계에서 주목받는 신인이다.
본격적으로 동아리 활동이 시작된 건, 일본에서의 대학생활이 시작되고 2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이제 겨우 45분의 대학 수업을 듣는 게 익숙해졌을 무렵이었다. 매 수업 때마다, 100%의 집중력을 유지하지 않으면,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모두 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던 게 내 일본어 실력이었다. 물론, 전자사전은 내 대학생활의 필수품이었다.
우리는 앞으로 동아리로써 어떤 활동을 전개해 나갈지에 대해서, 운영방침, 활동 내용에 대해서 의논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사진부에는 조용한 성격의 학생들이 많았지만, 이곳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눈에 띄는 이들이 많았다. 트렌드에도 민감했고, 광고에 대한 열정도 남달랐다. 같은 신입생임에도 불구하고 익숙하게 팀을 이끄는 리더십 있는 멤버도 몇몇 있었다.
나는 처음 놓인 세상 앞에 우왕좌왕했다. 책상 앞에 앉아 듣기만 하면 됐던 대학 수업과는 다르게, 동아리에서는 내 의견을 주장할 수 있는 표현력이 필요했다. 물론, 각기 다른 주장을 정리해 절충안을 제시하거나, 앞으로 전개해 갈 활동 내용에 대해서 스케쥴링을 하거나, 그런 사무적 능력도 필요했다. 활동별로 팀을 나눠서 움직였기에, 팀 안에서 무언가 내 역할을 찾고 싶었지만, 생각처럼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여러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것을 다른 일본 학생들에게 정확하게,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버거웠다. 고등학생 때까지, 동아리 활동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잡일 같은 것도 능숙하지 못했다.
학교 수업 중에는 조별로 과제를 제출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공통된 목적은 단위를 따기 위한 것이었기에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들도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동아리 활동은 달랐다. 해도 안 해도 되는 활동이었기 때문에, 꼭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이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팀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하고 끊임없이 모색했다.
2008년, iPhone 3G가 일본에서 발매된 해였다. 스마트폰을 가진 학생들이 손꼽힐 정도였던 그 시절, 아직 종이매체는 커다란 정보전달 매체로서의 위엄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와세다 대학에도 게이오 대학에도 재학생을 위한 매거진이 존재했지만, 우리 학교에는 대학에서 발행하는 안내 책자 이외에 학교 생활에 도움이 되는 매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 학교에도 프리 페이퍼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누군가가 꺼낸 한마디에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그 누구도 책이나 잡지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었지만, '재학생에게 유용한 정보, 화제가 되는 이야기를 전달해 보자', 우리는 불타올랐다.
프리 페이퍼의 기획과 구성, 취재, 디자인과 편집,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필사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리고 우리 팀이 담당하게 된 것은, 요츠야(四ツ谷)역 주변의 맛집을 소개하는 기획. 우리 학교에는 교내 식당이 세 곳 있었지만, 가끔은 학식을 벗어나 모험하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은가. 와세다 대학 근처에는 학생들을 위한 식당이 많이 있지만, 우리 학교는 학생 수도 적고 원래가 회사원들이 많은 거리였기에, 학생들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음식점들이 많았다.
꼬박 일주일, 학교 주변의 레스토랑, 카페, 바 등을 찾아다니며 취재를 했다. 협력적인 가게들도 많았지만, 그중에는 학생들이 만드는 잡지에 가게를 올리고 싶지 않다는 곳도 있었다. 교섭은 거의 같은 팀 멤버들이 했지만, 수 십 곳을 돌아다니면서 협상한 경험은 처음 해 본 경험이었다.
7년 전 우리가 열심히 만든 페이지, 요츠야 맛집 지도. 요츠야 주변에는 대사관이 많아서, 여러 나라의 음식점이 있었다. 잘 찾아보기 어려운, 포르투갈 음식점, 이집트 음식점 등 재밌는 곳이 참 많았다. 지금 보면 참 허접하구나 싶은 부분이 많지만, 기획부터 취재, 편집과 디자인 이 모든 과정에 참가했던, 내게 있어서는 특별한 기억이 가득 담긴 한 장. 어릴 때부터 만져왔던 포토샵, 이때 처음으로 만져본 일러스트레이터. 프리 페이퍼 발간 활동 때 처음으로, 나는 동아리 내에서 편집 디자이너로 내 역할을 다할 수 있었다. 그들의 언어, 문화를 잘 몰랐지만 내 감성을 믿고 도전해 본 나의 첫 작품이기도 했다.
부족함이 많았지만 믿고 맡겨준 동기 멤버들, 도움을 준 선배들, 외국 학생들과 처음으로 플젝을 이뤄낸 것도 물론 처음,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추억이다. 잘하는 것보다는 열심히 했다. 우리의 가슴은 누구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뜨거웠고, 나 또한 열정만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프리 페이퍼 발간 활동 때 나를 조용히 지켜봐 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쿠리바야시 선배였다.
대학교 2학년 여름, 선배로부터 '너 이거 한번 해 보지 않을래?' 하고 교외 활동에 대해 제안을 받았다.
나의 두 번째 도전은, 바로 이 제안을 통해 시작되었다.
to be continued...
동경에서 대학을 졸업 후, 경영&IT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일본 유학, 일본 취업에 관한 경험담을 공유하고, 멘토링 목적의 희망 포스팅을 위주로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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