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쿄효니 May 06. 2016

한 달 만에 6번 탄 비행기

18살 소녀가 혼자서 일본 땅에 정착하기까지. 일본 유학, 대학 본고사

일본 유학시험(EJU)을 치른 후, 진학을 희망하는 대학에 입학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국립대학, 그것도 경영학으로 유명한 대학으로 진학하고 싶었던 나는, 겁도 없이 A대학을 1지망, 그리고 두 곳, 동경내 유명 사립대학에 입학지원서를 제출했다.


나 나름대로는, 사립대학 두 곳이 보험이라고 생각했지만, 유학 지도를 해 주셨던 원장 선생님은, EJU시험 볼 때와 같이, 내년에 재수할 생각 아니면, 조금 더 들어가기 쉬운 대학도 지원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나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한국에서 대학을 지원할 때도 그랬다.

고3 담임 선생님 말씀대로 점수를 맞춰 갈 수 있는 대학을 보험으로 집어넣었던 것이, 단 6개월 만에 그만두겠다고 일본 유학을 준비하기 시작한 나였다.


보험이 있으면, 우리는 안주한다.

주저앉지 말고 갈 때까지 가보자.


EJU 점수로써는 지원하기에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EJU는 우리나라로 치면 대학 수학능력시험.

수능점수는 수능점수일 뿐,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는 것은 각 대학에서 치러야 하는 본고사였다.


본고사 내용은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크게 소논문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의 논술시험을 일본어로 봐야 했다.


영어, 수학시험을 따로 치르는 곳도 있었고, 면접이 수험 요강에 들어가 있는 곳도 있었지만,

내 기억에 따르면, 독해능력과 작문능력이 따라야 하는 소논문 시험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


소논문 시험은 언어능력뿐만 아니라, 얼마나 논리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지, 의사소통이 가능한지도 평가하는 시험이었기에, 일본어만 잘 한다고 해서 통과할 수 있는 시험이 아니었다.


같은 학원에 다니던 수험생들 중에는, 우리나라 수능시험을 보지 않고 고등학교 때부터 일본 대학 진학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 학생들이 있었는데, 뛰어난 일본어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본고사 준비를 어려워했다.

여기까지 오면, 일본어 실력이 아닌 국어(언어영역)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가 중요했던 것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초중고 12년간 국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었다.

독서광인 어머니 덕분에 책도 많이 읽었고, 글 쓰는 것도 좋아했다.

우리나라 대학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논술학원도 다녔기에, 대학시험에 있어서 필요한 논리 전개에 대한 기초지식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내 경우에는, 작문보다도 일본어 어휘와 한자, EJU시험보다 긴 지문 독해 때문에 애를 썼다.

짧은 시간에 무리하게 JLPT2급과 1급 공부를 했기에, 일본어를 깊이 있게 구사하는 것이 어려웠다.



유학시험을 치르고 난 다음날부터, 본고사 준비에 들어갔다.

기억에 따르면 1-2달 정도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유학시험을 치러놓고, 본고사 준비가 너무 힘겨워서 몇 번을 그만두고 싶었다.

아니, 그만두고 싶다기보다, 올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점점 사라져갔다.


올해 떨어지더라도 내년에 또 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자문자답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적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


올해 떨어지면, 내년은 없다.



일본 유학은 내가 원해서 하겠다고 벌인 일이었기에 부모님도 용서치 않았다.

만약 올해 일본 대학에 못 간다면, 다니던 대학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대학 시험 직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라는 부분' 이라고, 내게 쓴 메시지. Perpect Master가 뭐죵..ㅎ

대망의 대학 본고사


일본 대학의 본고사는, 각 대학에 가서 치러야 했다.

한국에서 유학 준비를 했기 때문에, 수험을 위해 일본에 입국해야 했다.


한 달 만에 세 곳.

18살, 편도로 6번의 비행기를 탔다.


첫 번째 본고사, 지망 대학 중에 가장 입학 레벨이 낮았던 곳이었다.

주어진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논하시오 라는 식의 논술식 시험이었다.

솔직히 어려운 시험은 아니었는데, 긴장 때문이었을까, 평소에 쓸 수 있었던 한자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히라가나로 작성해야 했다.

아.. 조금 더 잘 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두 번째 본고사, 사립대학 중에서는 가장 가고 싶었던 2지망의 대학.

필기시험에 더해 면접이 있었다.

준비를 한다고 하기는 했는데, 너무 긴장해서 면접실에 들어가기 전 복도에서 덜덜 떨었다.

학교 복도가 그렇게 춥다고 느낀 건 지금까지 처음이었다.

부들부들 떠는 내게 입시 안내관 자원봉사 오빠가 괜찮다고, 잘 할 거라고, 힘내라고 응원해주었다.

다행히도 막상 면접실 안에 들어가서는, 준비했던 지원동기와 입학 후의 학업계획,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열심히 펼치고 나올 수 있었다.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다리에 어찌나 힘이 풀리던지..


귀국 후, 첫 번째 시험을 봤던 대학의 발표가 나왔다.

불합격.


쉬운 시험이라고 생각했는데, 합격 라인을 뛰어넘을 만큼의 실력이 따르지 않았다.

이제 합격 발표까지 남은 곳은 두 곳, 남은 시험은 한 곳..


게다가 마지막 시험은, 1지망이었던 국립대학.



출국 전야, 잔인하고 선명했던 예지몽


마지막 본고사 시험을 치르기 위해, 시험날 보다 3일 빨리 일본으로 들어갔다.

시험장에 먼저 가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기 위해서였다.


홀로 타는 비행기는 익숙해질 법도 했는데.. 출국 전야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끔찍한 꿈을 꾸었다.



어딘지 알 수 없는 역의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곧 열차가 도착합니다'라는 알림 음과 함께, 역으로 달려오는 열차.

열차가 들어오기 직전, 갑자기, 내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철로로 뛰어들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들의 빨간 피가 튀어 내 몸을 흥건히 적셨다.



잠에서 깼을 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현실로 돌아오기 어려웠다.

부모님께 꿈 이야기를 하며, 불길하다고 무섭다고 했다.

비행기를 탄다는 것 자체도 두려웠다.


너무 긴장해서 그런 거라고, 지금까지 해 온 대로 차분하게 잘 치르고 오라고, 부모님은 힘을 불어넣어 주셨지만, 잔인하고 선명했던 그 꿈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시험 당일날 아침, 조금 이른 시간에 잠에서 깨어 텔레비전을 틀었을 때 내 눈앞에 나타난 영상.

맙소사, 숭례문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마음이 영 꺼림칙했다.

지난밤의 꿈도, 시험 당일의 숭례문 방화사건도..


내 인생의 중대한 날, 운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대로 나는 좌절감을 맞보았다.

뛰어넘기 어려웠던 국립대학의 장벽.

사립대학의 시험과는 레벨 차이가 컸다.


5문제를 풀기 위해 읽어야 할 지문이 A4용지 5페이지였다.

전 문제가 주관식. 모든 문제를 풀기에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아, 끝났구나.


나의 일본 유학 준비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듯 싶었다.



7268


마지막 대학 본고사가 끝난 다음 날, 시나가와에 있는 인터넷 카페를 찾았다.

음료수를 한 잔 시키면 무료로 PC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 날은, 마지막 시험을 치르는 날이기도 했지만, 2지망이었던 사립대학의 합격 발표가 있었던 날이었다.


7268, 합격자 확인 홈페이지에 접속해 수험번호를 입력했다.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별로 없었던 카페에서, 나는 크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合格(합격)

이라는 두 글자가 화면에 나타난 것이었다.


당장에 국제전화로 부모님께 보고 전화를 하고, 나는 그 길로 귀국행 비행기를 탔다.

불안했던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내 마음은 솜사탕처럼 가벼웠다.


한국으로 돌아오자, 어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지난밤에 꿨던 그 꿈은, 어쩌면 예지몽이 었을지도 모르겠구나.
피 꿈은 원래 나쁜 게 아니야.
철로로 떨어진 그들은 같은 대학에서 시험을 본 수험생이 아닐까.



내가 그들의 희생을 온몸에 받고, 합격할 것을 예언했던 게 아닐까라고.


소름 끼치게 무섭기도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 꿈이 정말 예지몽이 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믿고 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나의 일본 대학 시험 마지막 날의 밤.


그 후, 1지망이었던 국립대학은 안타깝게도 예상대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국립대학을 가겠다고 부모님께 큰소리 뻥뻥 쳤었는데, 결국 비용 부담이 커다란 사립대학에 가게 되어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었지만, 사립대학 중에는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었기에, 나는 이미 만족감으로 들떠있었다.


부모님도 국립대학이 아니면 허락 안 하겠다고 하셨던 것이, 어려운 일을 해 낸 딸이 자랑스러우셨던 것일까, 대학 합격통지서와 함께 나의 일본행이 결정되었다.


궤도 수정은 있었지만, 나는 원하던 데로 일본땅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꿈에 그리던 미래에 한 발짝 다가가게 된 것이다.





Brunch.

동경에서 대학을 졸업 후, 경영&IT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일본 유학, 일본 취업에 관한 경험담을 공유하고, 멘토링 목적의 희망 포스팅을 위주로 글을 올립니다.


Naver blog.

소통위주의 블로그.

결혼을 앞두고 있기에 요즘은 한일 커플 포스팅이 많습니다.


Instagram.

리얼타임으로 일상 사진을 제일 먼저 올리는 인스타그램.

한국어/일본어로  포스팅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사람들의 평균에 흔들리지 말아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