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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버스 안내양은 어디로 갔을까

너와 나의 소녀시대(1)

by 김민정

박완서 작가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을 읽으며, ‘싱아’를 사전에서 찾아본 게 나 하나는 아닐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싱아’를 다시 검색해 본다.


세월은 금세 변하고 싱아가 사라지거나 싱아를 입에 대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싱아는 사전에서 찾아봐야만 하는 단어가 된다.


어릴 적 버스를 타면 버스 안내양이 있었는데, 독특한 소리를 내며 껌을 씹으며 토큰과 버스비를 회수하고 어느새 버스 뒷문으로 가 한 발만 툭 걸치고는 버스를 탕탕 치며 “오라이!”하고 신호를 보냈다. 비슷한 차림의 제복을 입고 일하는 그녀들은 친절과는 좀 거리가 멀었고-당연하다, 당시에도 갑질이 여간 심하지 않았을 것이다-무임승차객을 감시하는 아주 훌륭한 직원들로 내 눈에는 비쳤다. 버스 안에는 의자가 아니라 바닥에 앉아 있는 승객도 칭얼대는 아이에게 모유 수유를 하는 여성도 있었다. 버스는 아직 장터처럼 시끌벅적하던 시절이다. 누군가가 내려놓은 ‘다라이’도 ‘보자기’도 80년대 초반의 한국의 풍경이다.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버스 안내양을 검색하면, 1983년 동아일보에는 <안내양에게도 의자를>이란 타이틀로 안내용 전용의자의 필요성에 대해 적고 있다. 84년에는 <버스 안내양 구인난>이란 기사가 실렸는데 지하철 2호선 개통 후 버스 회사 경영에도 탈이 생겼고 한달에 25일이나 근무를 했다고 한다. 77년의 기사를 보면 버스 안내양의 34%가 직업병을 앓고 있는데, 동상, 무좀, 위장병의 순으로 많았다. 85년 <경향신문> 기사는 정말 황당하다. 기사를 그대로 옮기면 ‘버스 회사 측은 18-20세 사이의 안내양이 회사에 애착심도 많고 사회에 물들지 않는다는 억지 해명을 했다. 20세를 넘어서면 이른바 삥땅 등에 눈을 떠 다루기가 힘들다는 입장 때문에 서울 시내의 적지 않은 버스 회사가 사규로 20세 이하 취업을 못 박고 있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 많던 버스 안내양은 손님들의 갑질, 회사의 갑질, 20세 정년, 직업병 등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직업 중 하나였고, 88 올림픽을 앞두고 지하철 개통이 이어지고 버스에 벨이 부착되면서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김승옥 작가님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 <도시로 간 처녀>(1981)에는 버스 안내양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정윤희, 유지인, 금보라, 이영옥 배우들의 풋풋하고 아름다움 미모와 뛰어난 연기도 볼 수 있고 탄탄한 대본이 당시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부조리를 잘 그려낸 작품이다. 이영옥 배우를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어쩜 그렇게 매력적인지 모르겠다.


영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일본영화 <번개>(1952)에는 버스 안내양을 하는 넷째딸이 나온다. 50년대 당시 버스 안내양은 일본 여성들에게 꿈과 같은 직업이었다. 비행기 승무원이 가장 인기가 있던 직업이었고, 그 다음이 버스 안내양이었다. 비행기 승무원에게 고학력과 영어실력이 요구되는 것과는 달리, 버스 안내양은 조금 더 수월하게 취업할 수 있던 직장이었다. 영화 <번개>에서 넷째딸 기요코는 남자들에게 의지해 살아온 엄마와는 달리 버스 안내양으로 독립해서 생활하는 것을 꿈꾼다. 패전 후 혼자 살아갈 경제력이 없어 이 남자 저 남자를 만나 결혼을 거듭해 배다른 아이 넷을 낳은 엄마. 기요코에게 엄마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느껴진다. 기요코는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행복해?” 엄마는 말한다. “행복? 그건 너무 사치스러운 거야.” 행복이 사치라는   

엄마를 보니, 기가 차면서도 씁쓸해진다.


내가 초2때, 동생이 유치원 때 엄마는 어쩌자고 나보고 동생을 데리고 읍내까지 가서 동생은 태권도장에 보내고, 나는 혼자 피아노 학원에 가라고 했다. 그렇게 한 6개월간 어린 나는 동생을 버스에 태우고 읍내까지 30분씩 출퇴근을 했다. 동생이 유치원에서 여자아이에게 화장실로 불려가 맞았다고 하는데 엄마에겐 그게 몹시 충격이었던 것 같다.


“언니, 저 여기가 OO앞 맞죠?”라고 물으면 버스 안내양은 때로는 무뚝뚝하게 때로는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거기가 내가 내릴 버스 정류장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버스 안내양이 “맞다”고 해주면, 그게 그렇게 안심이 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조금씩 기계화 되어간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엄마는 도대체 나의 무엇을 믿고 어린 동생까지 그렇게 맡겨버린 걸까? 지금은 엄마가 이 세상에 없어서 물을 수가 없지만, 아직도 나의 궁금증의 하나다.


그 많던 버스 안내양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싱아처럼, 카우보이처럼 사라졌다. 버스 안내군은 왜 없었는지 굳이 여기 묻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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