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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겔라와 초능력

너와나의 소녀시대(6)

by 김민정

1984년, 그해에는 중요한 인물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먼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다. 천주교 전래 200주년 기념으로 한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서울에서 대대적인 미사를 올리고, 광주를 방문하고, 소록도를 찾아가 한센병 환자들을 만났다. 당시 신문들은 역사적 방문이라며 이 소식을 1면에 실었다. 그해 봄은 그렇게 갔다. 한국이 더 성장하고 더 바뀔 수도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가을, 그가 찾아왔다. 혜성 같은 등장이었다. 위대한 쇼맨 또는 웃기는 사기꾼 유리 겔라는 숟가락을 들고 한국에 왔다.


1984년 서른 여덟로 일본에 거주하던 유리 겔라는 9월 22일 KBS의 특집 방송에 모습을 드러냈다. 키가 크고 곱슬머리가 특징적인 남자는 <세계의 경이! 초능력 유리겔라 쇼>에서 숟가락을 구부리고 씨앗을 싹트게 했으며, 나침반의 바늘을 움직였다. 이미 방송사에선 한국 전국을 연결해 시청자들에게 숟가락을 들고 있도록 준비해 놓았다.


“모두 숟가락을 들고 가는 부분을 부드럽게 마사지하듯 비비세요.

쇠가 녹는 것을 보여드릴게요. 점점 숟가락이 부드러워집니다.”

서울에서 대구에서 부산에서 광주에서 서귀포에서 대전에서 모두가 숟가락을 들고 유리 겔라가 시키는 대로 비벼댔다. 그는 시간을 들여, 자신이 이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극적으로 “드디어 부러졌습니다”의 말과 동시에 숟가락 머리 부분이 톡 떨어진다. 어디 숟가락만인가, 포크도 구부러지고 반동강이 난다.


다음은 나침반 바늘 움직이기다. 나침반을 쏘아보던 유리 겔라는 “시간을 좀 달라”더니 “여러분이 힘이 필요하니 좀 도와달라”며 애절하게 호소한다. 한국어로 숫자 세는 법을 묻더니 “다같이 일, 이, 삼!”을 외치라고 한다. 능청스러운 연기력이다. 방송국이 미리 대기시켜둔 아이들 너댓도 나와 같이 힘을 주기 시작하고, 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스튜디오에서 환호성이 터진다.


다음날부터 학교에선 점심시간이 되면 도시락 뚜껑을 열자마자 아이들은 숟가락 구부리기에 돌입했다. 어디 학교에서만 그랬을까. 집에서 식당에서 다들 숟가락 구부리기에 열중했다. 대체 숟가락을 구부려서 뭘 어쩌겠단 말인가? 세계 평화를 가져오겠단 말인가? 아무렴 어떠랴. 숟가락 구부리기는 초능력을 얻기 위한 최저최소한도의 능력처럼 여기저기로 번지고, 실제로 숟가락을 구부리게 되었다는 증언들이 폭주하게 된다. 너도 나도 초능력자가 되고 싶어했다. 경이로움과 동경의 대상이던 유리 겔라, 그러나 그의 초능력, 수퍼파워는 실제로 존재했을까?


유리 겔라는 80년대에 한국에 알려졌지만 1970년 초반에 유럽과 미국에서 명성을 떨쳤다. 그는 숟가락을 구부리는 묘기로 미국과 유럽을 발칵 뒤집어 놓았지만, 그의 꼬리는 금세 잡혔다. 1972년 초능력 사냥꾼이라고 불리며, 초능력자들의 초능력의 실체를 밝혀온 제임스 랜디(1928-2020)와 함께 방송에 출연했지만, 초능력의 존재를 밝히지 못한 것이다. 자신의 초능력이 탄로가 날 위기에 처하자, 유리 겔라는 아시아에서 경제력이 급부상 중이던 일본으로 무대를 바꾼다. 1974년 일본으로 건너온 유리 겔라는 다양한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초능력을 선보여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1980년 이후에도 일본 방송에 등장하며 FBI와 CIA의 수사를 도왔다는 등의 믿을 수 없는 얘기들을 늘어놓게 된다. 일본에서도 점점 입지가 좁아진 그는 1984년 한국을 방문해, 숟가락 구부리기 열풍의 주인공이 된다.


초능력자이자 사기꾼, 위대한 쇼맨인 유리 겔라는 현재 트위터도 하고 인스타그램도 하면서 여전히 주목을 받으며 살고 있다.

제임스 랜디는 “세상엔 마술의 트릭을 이용하는 사람만 있을 뿐 초능력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리 겔라의 트레이드 마크인 숟가락 구부리기는 형성기억합금을 이용해 만든 숟가락을 사용하거나 처음부터 부러진 숟가락을 사용했으며 뒤돌아 서서 눈가리고 상대가 그린 그림을 맞추는 투시 능력은, 뒤돌아 서서 눈을 가릴 때 몰래 숨겨온 거울로 상대방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지켜본 것이라 폭로했다. 유리 겔라는 제임스 랜디를 명예 훼손으로 고발했지만, 법정에서 자신의 초능력을 증명하지 못해 패소했다.

유리 겔라가 한국에 오기 10년, 한국의 한 신문은 이런 기사를 실었다.


“초능력 천리안은 가짜”

초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유리 게라의 비밀을 폭로하는 기사가 소개되어 또 한차례 과학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인 유리 게라 씨는 이른바 현대에 있어서의 가장 불가사의한 존재-그는 정신력으로 스푼을 꾸부러뜨리고 멀리 떨어져있는 방에서 딴사람이 그리고 있는 그림을 알아맞히는 등 도저히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척척 해내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중략) 잡지 네이처는 스탠포드 연구소가 어느정도 초능력을 인정하고자 한 천리안과 텔레파시에 관해서도 게라를 이스라엘서 발견, 미국에 소개한 앤드리서 프하리크 박사가 의료용 전자장치의 전문가로서 이빨 정도에도 장치할 수 있는 보청기 등 미국특허를 56건이나 보유하고 있음을 지적, 프하리크 박사의 고안에 따른 소형무선 장치를 이용하고 있다는 의심이 짙다고 말했다.(1974년 10월 20일 조선일보)


즉, 유리 겔라의 행각은 그가 혜성처럼 등장한 1972년 직후, 즉 1974년에는 이미 그가 가짜 초능력자란 사실이 밝혀졌으며, 그러자 그는 일본 등으로 발을 넓혔고 1984년에는 한국까지 와서 자신만의 엄청난 쇼를 선보이고 간 것이다. 우리에게 숟가락 구부리기라는 미션을 남기고.


일본에서는 유리 겔라의 행각을 지켜본 한 젊은이가 ‘핸드 파워’를 외치며 등장한 다. 마술사 미스터 마릭이다. 유리 겔라를 이어 일본 마술계를 평정한 미스터 마릭은 1992년 한국을 방문해 <초마술의 세계-미스터 마릭>을 선보였다. 염력으로 컵 깨뜨리기, 담배로 동전 뚫기, 물론 숟가락 구부리기를 선보였는데, 유리 겔라에서 10년이 지난 후, 마술의 세계는 더 화려하게 변해있어서, 미스터 마릭의 쇼를 본 사람들은 스튜디오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미스터 마릭이 사람들의 마음을 궤뚫어보는 것 같아, 그의 그 ‘핸드 파워’가 무섭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나마 숟가락 구부리기는 몹시 개인적이고 소극적인 마술이었고 유리 겔라는 마술을 대중적인 영역으로 불어온 일인자가 되었다. 한편, 90년대를 평정한 데이빗 카퍼필드는 만리장성을 통과하고 자유의 여신상을 사라지게 하는 등 마술을 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쇼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수많은 스태프와 엄청난 비용이 들었을 이런 마술, 또는 트릭은 당시 사람들을 매우 즐겁게 했다. 아직은 마술이, 초능력이 긍정적이었던 시절인지도 모른다.


당신이 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떤 능력을 원하시는가? 숟가락 구부리기? 독심술? 텔레파시? 축지법? 공중부양?


초능력이 반드시 행운을 가져오는 것만은 아니다. 그걸 보여준 영화는 <링>이다. 사다코의 엄마 지즈코는 투시능력을 가진 여자라는 설정인데, 그 투시능력 때문에 불행을 맞이하게 된다. 특별한 능력 때문에 <링>의 모녀는 비참한 삶을 살았다.


지즈코의 모델로 알려진 실제인물 미후네 지즈코(1886-1911)는 특별한 능력 때문에 우여곡절을 겼었다. 22살 때 육군중사와 결혼했으나 50엔을 훔쳐간 범인으로 몰렸을 때, 시어머니가 가져갔다는 사실을 밝혀 이혼당한 후 친정으로 돌아왔다. 형부이자 체육교사였던 기요하라 다케오가 그녀에게 “투시를 할 수 있다”는 최면을 걸었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최면술 서적이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후 지즈코는 병든 사람들을 치유했고, 교토제국대학 총장 기노시타를 치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녀의 치유능력이 입소문을 탔다. 미쓰이 그룹이 미쓰이케 탄광 장소도 지즈코의 천리안이 찾아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2만엔을 받았는데 현재 화폐로 환산하면 2억원에 가까운 돈이다. 즉, 그녀는 ‘돈이 되는’ 인물이었다.


그녀의 소문은 ‘변태심리학’(범죄자, 꿈, 최면 등을 연구)을 연구하던 동경제국대학 문과대 심리학 후쿠라이 도모키치의 귀에 들어갔고, 형부 기요하라와 후쿠라이 교수는 지즈코를 데리고 전국을 돌며, 그녀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실험을 계속한다. 후쿠라이 교수에겐 ‘천리안’ 능력이 존재한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그녀의 투시능력은 때로는 맞고 때로는 틀렸다. 하지만 대중들에겐 숟가락 구부리기처럼 유행으로 번졌다.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나는 천리안이로소이다>로 변경한 천리안 고양이 이야기를 담은 소설도 불티나게 팔렸다. 처음엔 ‘천리안 부인’이다 떠들던 언론들이 금세 ‘눈속임’이라고 태세를 변경하면서 지즈코는 빗발치는 비난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지즈코의 천리안 실험은 아마 1984년 유리 겔라의 초능력쇼처럼, 흥미위주의 오락으로 소비되는 면인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게 최면술을 건 형부도, 그녀를 데리고 전국을 떠돌며 실험을 하던 당대 최고의 지성들도 모두 남성이었고, 그녀는 이 실험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으며, 가짜 진짜 공방이 신문을 통해 매일처럼 오갔다.


나의 개인적인 소견으로 1900년대 초반에 이혼한 여성이 먹고 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귀가 좀 불편했으며 남들보다 감각적이었다. 남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능력은 실재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치유한다며 생활비를 벌었고 그 입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당대 지성들이 실험을 하겠다고 찾아오자, 발뺌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링>(1998)을 비롯해 2000년대 이후의 드라마 영화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어렵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드라마 <프린지>에서는 평행세계와의 전쟁을 위해 어릴 때 약물을 투여받아 초능력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현실세계에서 받는 고통(능력자는 고독하고, 그 능력은 영원하지 않으며, 자신은 물론 타인도 불행하게 만든다)이 그려지고, 마블의 히어로들도 능력이 있어서 모두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능력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코믹하게 보여준 <핸콕> 같은 영화도 있다. 영생을 얻게 된 돌변변이 인간들을 그린 드라마 <헬릭스>도 자신들만 특별한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탐욕을 그리고 있다.


어떻게 살든 인간은 고뇌하며 살아간다. 능력과는 별개다. 초능력과도 별개다.

조금 다를 수도 있다. 그게 때론 힘겨울 때도 있지만, 그래서 다행일 때도 있다.

어릴 적 초능력자나 명탐정을 꿈꾸지 않은 이들은 없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가끔 숟가락을 보면 구부리고 싶어진다. 유리 겔라의 밑천이 드러났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우리집 숟가락은 40년째 멀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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