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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라 꿈동산과 인형극 전성시대

너와나의 소녀시대(7)

by 김민정

그건 좀 색달랐다.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사람의 탈을 쓴 사람이 연기를 한다고?


퍼펫(꼭두각시 인형)을 움직여서 스토리를 펼치는 인형극은 이미 방영된 바 있지만, 사람이 자기 얼굴의 족히 세 배는 되는 얼굴의 탈을 쓰고 나와 연기를 하는 인형극은, 내가 알기론 처음이었다. <롯데월드>도 없던 시절이어서 캐릭터 탈을 본 적도 거의 없었으며, 당시 우리가 아는 캐릭터 탈이란 미키 마우스처럼 동물형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사람 역을 사람이 사람의 탈을 쓰고 연기한다? 표정은 일절 바뀌지 않았고, 대사는 성우가 읊었다. 어색하고 허술했지만 한편으로는 참신했다. 1982년 MBC 방송 개편으로 시작된 <모여라 꿈동산>은 탈 인형극을 주로 선보인 어린이 방송이었다(간혹 퍼펫도 사용했지만, 모두를 놀라게 한 건 탈 인형이었다). 1982년 당시에는 저녁 5:30, 즉 애국가가 나온 직후, MBC는 <모여라 꿈동산>을 오후 첫 방송으로 편성해 어린이 시청자를 끌어 모았다.


어린이를 위한 방송이 전무한 시절이었다. <미키 마우스> <톰과 제리> <딱다구리> <뽀빠이> 등이 미국을 대표하는 만화영화, <무밍> <플란다스의 개> <엄마 찾아 삼만리> <미래소년 코난> 등 일본 만화영화가 TV 어린이 프로그램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1977년 ‘동아일보’는 “어린이들은 만화를 좋아하고, 좋은 만화영화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지혜를 심어주”지만‘꿈과 용기와 지혜를 심어줄 국산만화영화가 없다’), “월트 디즈니사의 좋은 만화영화들이 세계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일본에서도 TV용 만화가 연간 70-80편 제작되고 있지만, 월트 디즈니사가 1초당 24컷을 사용하는데 비해 한국의 만화영화엔 그 절반인 12컷 밖에 사용되지 않으며, 그 이유는 제작비가 엄청나기 때문이다”라고 보도했다(1977년 7월 23일).


제작비 탓이었을까? 70년대 TV에선 인형극이 판을 쳤다. 1976년 KBS은 인형극 <동명성왕>을 방영했고. TBC는 <콩쥐팥쥐>를 방영했으며, 1976년에는 KBS가 <명장 김유신>을, TBC가 <호동왕자>를 방영했다. 이런 인형극들은 드라마처럼 연속극으로 매주 방영되면서 꼬마 시청자들을 텔레비전 앞에 꼭 붙들어 앉혔다. 인형극 붐은 80대 초중반에 정점을 이뤘고, 각 방송사가 앞다투어 인형극 프로그램을 방영했으며 그 결과 탈을 쓰고 나와 연기를 하는 <모여라 꿈동산>이 탄생한 것이다.


머리엔 탈을 썼지만, 몸은 평범한 사람이며, 목소리는 성우가 대신하는 삼위일체의 인형들은 딱딱하고 부자연스러웠지만, 아이들은 금세 적응이 되어 <모여라 꿈동산>이 시작하기만을 기다렸다. 우리는 마당극의 DNA를 물려받은 후손이 아닌가! 표정이 변하지 않아도 더 많은 감정들을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듯, 다양한 작품들을 쏟아냈다. <콩쥐팥쥐> <말괄량이 삐삐> <소년탐정 학다리> <수정성의 왕칭칭> <작은 아씨들> <쌍동이 자매> <괴도 루팡> <엄마 찾아 삼만리> 등이 모두 <모여라 꿈동산>에서 방영된 작품들이다. 일본은 이런 작품들을 대부분 만화영화로 만들었고, 덕분에 우리는 같은 작품을 만화영화와 인형극으로 보면서 컸다. 얼굴이 워낙 커서, <모여라 꿈동산> 히트 후 얼굴이 좀 크다 싶은 사람을 <모여라 꿈동산>이라 부르기도 했을 정도로 <모여라 꿈동산>은 전국민이 인지하는 단어로 급부상했다. 당시 얼마나 많은 중고교 교사들이 짓궂은 학생들로부터 또는 뒷전에서 <모여라 꿈동산>이라 불렸을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모여라 꿈동산>의 인기는 인형극에 수많은 어린이 관객을 불러 모았다. “어린이에게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펼쳐주는 인형극에 대한 관심이 어린이와 부모는 물론 유치원 교사와 연극인들 사이에서까지 부쩍 높아져가고 있다. 인형극을 공연하고 있는 극장 좌석의 100-250석이 공연시간마다 어린이와 어머니, 유치원 교사들로 붐비고 있다.”(동아일보 1986년 2월 24일 ‘인형극 붐-어린이 관객 만원’). 2월 기사니 겨울방학 기간이었을 것이고, 그해 겨울방학 인형극으로는 <빨간모자 아가씨> <햇님 달님> <두꺼비 왕자> <바람이 전해준 선물> <고인돌> <아기돼지 삼형제> <보물섬> <이상한 신발장수> 등 셀 수 없이 많은 인형극이 서울 시내에서 무대 위에 올랐다.


인형극을 공연하는 극장만 해도 공간사랑, 파랑새 극장, 실험극장, 크리스탈 문화센터, 현대예술극장 등 한 둘이 아니다. 게다가 인형극 잔치라는 인형극 페스티벌까지 벌어져 수많은 극단들이 인형을 가지고 다양한 작품을 보여줬다. 방학이라지만 아이들이 볼만한 영화가 많았던 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유투브나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등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다양한 세계 문학, 한국 전래동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직접 책을 읽는 것, 가끔 해주는 만화영화나 인형극을 보는 것이었다.


<모여라 꿈동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돈키호테>다. 돈키호테 탈을 쓴 배우가 로시난테에 올라타 풍차를 향해 달려간다. 무대가 작다 보니 달린다기보다는 달리는 흉내에 가깝다. 풍차에선 바람이 몰아친다. 돈키호테는 그 풍차를 향해 달리는 듯 걸어가 칼을 휘두른다. 판토마임처럼도 보이고, 훌륭한 모노드라마 같기도 하다. 어린이를 대상으로한 인형극이라기보다 만인을 대상으로 한 철학정신으로 무장한 무대예술 같다. 어느새 인형극이라는 틀을 벗어나 예술의 경지에 든 탈 인형극은 <모여라 꿈동산> 이후론 조금씩 TV에서 사라져 이제는 캐릭터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탈 인형극을 만들던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졌고, 탈 인형극이란 독특한 장르는 왜 그 맥을 잇지 못했을까. 탈 인형극은 한국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있다. 놀이농산의 깜짝쇼나 퍼레이드의 캐릭터를 벗어나 스토리의 주역이었다. 인형극이 지속되었다면 지금쯤 K-인형극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지는 않았을까, 라는 망상을 덧붙인다.


<모여라 꿈동산>은 문화인형극회라는 인형을 제작하는 회사와 꼭두극단 나무와 종이가 연기를 담당했던 걸로 보인다. 주철환 피디는 당시 조연출에다 오프닝곡까지 맡아 작사 작곡까지 했다. 가사를 써보라는 선배에게 “외람되지만 곡도 쓰면 안 되겠느냐?”고 물은 후 한 시간만에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숲길을 돌고 돌아 구름을 타고 꿈동산에 왔어요.

새들은 날아 꽃들은 피어 노래하는 꿈동산

하늘 아래 땅 위에 모두가 친구죠

아무라도 좋아요

꿈동산엔 담장이 없으니까요.


꿈동산이란 단어도 오랜만에 들으니 가슴이 찡하다. 담장 없는 꿈동산에서 오늘 하루만큼은 모두가 친구이기를 기원해본다. <모여라 꿈동산> 친구들은 안녕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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