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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메모

김민정의 일상다반사(6)

by 김민정

-글이 뭘까? 내가 글을 써도 될까? 그런 생각이 들 때 나는 정치 잘 못하는 정치가들을 생각하며, 그냥 열심히 쓰라고 말한다. 나는 평범하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인데 그게 내 무기다. 진솔하게 쓰고 진지하게 살아야지.


-몇 살이니? 라는 질문에 세 살배기 아이에게만 어려운 게 아니라 나처럼 40대 여성에게도 어려운 거였어.


-우리는 저마다 자기 자신을 오해하고 살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베풀었을 때, 상대가 안쓰러워서 밥 한 끼 베풀고 선물을 사다 안겼을 수도 있다. 즉 내 마음이 내켜서 한 일인데, ‘내가 그렇게까지 해줬는데’라고 후회하거나 억울해하고 서러워하기도 한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후회하거나 억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빚을 지워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알 리가 없잖은가.


-내가 내 인생을 걸어야 할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나라는 걸 깨달았을 때,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혼도 결혼도 추천할 생각은 없다. 어느쪽이든 우리가 인생을 걸어야 할 대상은 언제든 나 자신이란 사실을 잊지 않으면 된다.


-아이와 기 싸움에서 이기지 않아도 부모는 충분히 강자다.


-아이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이 세상과 수월하게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있을까를 스무 살까지 같이 고민하는 게 부모로서 나의 역할이다.


-주류에 편입하지 못한 인간은 자기 인생이 부끄러워 바쁩니다. 자아도취이고 괴리감이고 복잡하고 비대한 자아의 덩어리인 거죠.


-애 셋 엄마의 삶은 정말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다른 게 하나도 없다는 게 이 시대의 호러다.


-감당 못할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현실에 충실할 수 없는 상황은 의외로 많다.


-애 셋 일본에서 키우면서, 일본육아를 한마디로 하자면 '기다림 육아'다. 아이가 태어나면 체중이 늘 때까지 기다려준다. 내 아이가 몇 %에 해당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다음으로는 알아서 길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걷기까지 기다린다. 아이가 천천히 걷는다고 심각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없고 병원에서도 부추기지 않는다. 말하기 또한 만 3세 까지 정말 천천히 기다린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하루에 한 글자씩 히라가나를 배운다. 정말로 하루 한 글자 밖에 안 가르친다. 그렇게 한 글자씩 배우다 보면 초2쯤 되어 한자도 약간 익히게 된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성장한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이 부모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선의에도 기한이 있어서 상대에게 베푸는 선의가 평생 가는 일은 없다. 베풀 때를 알고 베푸는 것을 받을 때를 잘 알면 좋지만 그게 또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연애는 기호식품’이어야 한다. 일생을 건 배필 찾기가 아니라. 술 담배 커피 같은. 뭐 사실 어떤 면에선 이미 그렇다. 그랬다면 나에겐 조금 더 많은 선택지가 있었을 것이다. 결혼해서 사는 인생을 딱히 후회하지는 않지만, 이 선택은 내가 했지만, 어떤 면에서 사회가 나에게 부여한 몇 가지 선택지 중에 하나였을 뿐이다.


-공극을 메꾸려고 발버둥칠수록 상대는 멀어지고 자신은 지치는 싸움에 돌입하게 된다. 나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나 하나뿐이거나, 때론 나조차도 나를 알지 못한다. 상대에게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드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는 가상하고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때론 참 안타깝고 서글픈 것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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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가 별 거 아니고 삶은 고독하다고 모든 소설과 영화가 말해주는 그 논리를 내가 더 빨리 알았더라면, 내가 남성과의 섹스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그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건지, 단순히 인생에서 도망치고자 하는 건지, 그저 사랑하고 싶은 건지 조금 더 생각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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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는다. 익숙해질 뿐. 마음의 근육이 단단해지는 것이다. 얄팍한 껍질이, 그 각질이 쌓이고 쌓이면 게처럼 단단해질지도.


-이 밤이 지나면 오늘도 그냥 과거일 뿐이다.


-나의 집안일에 100점을 주기 위해 울고 불고 하기보다 깔끔하게 포기한다. 모든 일에는 순위가 있고 내 인생은 아직 나를 필요로 한다. 나를 어디에 갈아 넣을까. 갈아넣지 않는 게 최선이다 되도록이면. 대충 사는 인생에도 묘미와 공헌은 분명히 존재한다.


-매일 무너져도 추스리고 살아야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삶에 희망이 있다고 나를 속이는 일이 가장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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