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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력

김민정의 일상다반사(5)

by 김민정

정말 이상한 일이다. 이럴 수가! 어느날 내 앞에서 젊은 여성들과 남성들이 완벽히 사라져 버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을까.


전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나는 형광 핑크 옷들을 옷장 안으로 밀어넣었다. 20대 시절 나는 ‘컬러 파워’라고 불릴 정도로 총천연색의 옷들을 입고 다녔다. 노란색 스커트에 보라색 스웨터를 입는 일따위 아무것도 아니었다. 위아래로 핫핑크를 입고 거리를 활보해도 거리낌이 없었다. 남편 회사 송년파티 모임에는 파란색 미니 원피스를 입고 갔을 정도다. 내 옷장에는 코랄, 피치, 스트로베리, 로즈, 마젠타 등등 다양한 핑크색 옷들이 즐비했다. 그런데, 첫아이를 임신하고 나는 그 절반 이상을 처분했다. 일절 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바지도 절반 이상 처분했다. 동일한 이유에서다. 나는 이제 블랙과 화이트 이외의 색에 손대는 일이 거의 없다. 어느날 문득, 아니 첫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후, 모든 색이 내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두려웠다. 그렇잖아도 일본에 사는 외국인에다 여자인데 임신까지 했으니 영락없이 약자구나 싶었던 것 같다. 그렇다, 이건 ‘같다’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생리적인 부담감이다. 영화관에 갔다고 치자. 거기 나쁜 범죄자들이 숨어들었다고 치자. 누군가를 인질로 삼는다고 쳐보자. 가장 약자는 임신한 여자가 아닐까. 그런데 그가 눈에 확 뜨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면? 이보다 더 좋은 타깃은 없지 않을까? 그런 비슷한 생각이 왜인지 나를 완벽하게 사로잡은 것 같다. 블랙으로 치장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의 세련된 센스를 나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는 눈에 뜨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 무채색으로 단장하게 되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아이를 낳고 보니, 거리엔 온통 엄마와 아이들뿐이 아닌가! 아니 이렇게 많은 엄마와 아이들이 이 세상에 있었던 말인가? 대체 무슨 일인가! 아이를 낳으니 유달리 엄마와 아이들이 많이 가는 놀이터나 아동관(일본 지자체가 무료로 운영하는 아이들 문화센터로 내부에는 체육관, 음악실, 독서실 등이 있으며, 이곳에서 방과후교실을 운영하기도 한다)에만 가서 그럴까? 아니다, 이제는 마트에만 가도 엄마와 아이만 보인다. 간혹 아빠와 아이도 보이기도 한다. 믿을 수 없을만큼 많은 아이들이 이 세상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왜 몰랐을까?


그런데 말이다, 대체 내가 20대에 봤던 그 많은 10대, 20대 여성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하라주쿠 라포레 백화점 앞에 앉아(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엔 이곳에 앉을 곳이 있었다), 패션센스가 가장 뛰어난 10대, 20대들은 눈여겨 보고, 어떤 옷을 입을까를 고민하던 시절엔, 어디를 가도 10대 20대만 보였다. 스커트 길이가 어느 정도인지, 바지폭은 어떤지, 어떤 양말에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까지 꼼꼼히 기억하려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전철을 타도 10대 20대들이 보이질 않는다. 정말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들의 존재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그들 모습에 집중할 일이 없고, 질투를 하는 일도 없고 흉내를 내보려고 하거나, “그 옷 어디서 사셨어요?”라고 묻는 일도 없다.


10년 전 엄마가 돌아가신 날 이후 얼마간은 거리에 나가면 엄마와 같은 복장을 한 사람들만 찾게 되었다, 또는 눈에 뜨였다. 컬을 넣은 단발머리에 날씬한 체형, 딱 붙는 청바지에 체크무늬의 재킷을 걸친 50-60대 여성을 보면, 잠깐 멈춰 설 정도였다. 지금도 간혹 엄마와 비슷한 사람을 마주하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내가 너무 열심히 살아, 엄마가 잠깐 찾아와 준 게 아닐까, 하느님이 그 정도를 내게 허락하신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적을 바라지 않는 바는 아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은, 어느 순간부터 내 시야에서 수많은 남성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들이 잘생겼든 아니든, 뚱뚱하든 날씬하든, 정장을 입었든 캐주얼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어떻게 이렇게 하나도 눈에 띄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일까? 결혼이란 생활이 나를 그렇게 만든 걸까? 정녕 결혼의 역기능이란 말인가. 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살이 찌고 난 후에는 밖에 나가면 살집이 있는 여성들만 보인다. 대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두꺼운 스웨터에 누비 반코트를 걸친 나이든 여성, 인디고 컬러의 곱게 뜬 머플러로 완전 무장한 나이든 여성, 에코백 안에 사과를 가득 담고 버스에 오른 나이든 여성, 버스 운전 기사에게 버스의 목적지를 묻는 나이든 여성, 남편으로 보이는 남성과 소근거리며 웃고 있는 나이든 여성……. 요즘은 나보다 나이가 좀 든 여성들이 그렇게나 눈에 뜨인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이 궁금하고 헤어스타일이 궁금하고 무엇을 먹고 사는지가 궁금해진다. 나는 어떻게 나이를 먹을 것인가. 그것이 궁금한 까닭이리라. 가끔 밀라논나 님의 유튜브 채널을 본다. 멋있게 산다는 건 무얼까, 재미있게 산다는 건 무얼까? 여자로서 멋있게 산다는 건 무얼까, 여자로서 재미있게 산다는 건 무얼까도 동시에 생각해 본다.


“롤모델이 필요해”. 연예인이나 지나치게 성공한 여성들의 스토리도 궁금하지만 나처럼 평범한 여자들은 어

떻게 나이를 먹고 어떻게 사는지 더 많이 알고 싶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를 읽으며 한바탕 눈물을 쏟았다. 모든 여성들의 평범한 이야기가 더 많이 알려지고 더 많이 읽히기를 바란다.

우리집 세 아이가 조금 더 크면, 그러니까 곧 내 눈에는 중고생만 보일 것이다. 남의 집 중고생들은 어떻게 크는지가 몹시 궁금해질 것이다.


눈에는 시력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분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게 해주는 ‘당기는 힘’ 같은 게 있는 게 아닐까? 마치 중력처럼 말이다.


한때 세상에는 10대-20대 젊은 여자와 수많은 남자들만 존재한다고 여겼다. 내 눈에는 그들만 보였다. 어찌된 일인지 남자의 경우엔 10대부터 90대까지 대부분의 남자들이 내 눈에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명예남성이었거나 남자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더 많은 더 다양한 사람들이 더 자세히 보인다.


내가 약자가 되어보니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 엄마, 할머니가 특히 눈에 뜨이고 그들이 불편해할 만한 것들도 눈에 뜨인다. 이를테면 동네에 하나뿐인 ‘빙수집’이 노키즈 존이라는 것, 도쿄의 국립오페라 극장에 수유실이 없다는 것(오페라를 보러온 관객에게는 제공되지만 잠시 식사를 하러 온 사람에게는 별도로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 대부분의 수유실이 화장실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수유실이 없을 때는 화장실을 찾아가야 한다는 사실처럼 여성을 서글프게 만드는 것도 없다는 것을. 더불어 일부 남자 화장실에는 여자 화장실이라면 어디든 있는 기저귀 갈이대가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니 실은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화장실에 기저귀를 가는 곳이 있다거나 화장실 옆에 모유수유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마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평생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각 전철이 엘리베이터를 의무적으로 설치했다고 해도, 그게 한 대뿐이라면 결국 무용지물이란 사실도 모두 아이를 낳고 또는 아이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고, 세상이 유아차 이용자나 휄체어 이용자, 시각장애인 등등에게 얼마나 불친절하게 설계되어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한편 나이 드신 분들이 버스에 탈 때마다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버스 운전 기사에 대한 고마움도 절로 생기고, 짐이 무거워 버스에 오르지 못하는 어르신에게 조금 더 빨리 손 내밀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그 입장이 되어봐서 처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많은 남성들은 길거리에 나가면 비슷한 또래의 남성들만 보이지 않을까? 내가 요즘 거리에서 50대 60대 여성들만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말이다. 30대 40대는 사실 외모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어떤 카테고리 안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알아보기 쉬운 60대 이상 여성들이 내 안의 아이돌처럼 쑥쑥 자라고 있다. 한편으로는 힘있는 남성들에게 약자의 모습은 과연 보일까 싶기도 하다. 세상이 조금 더 약자에게 편한 곳이 되려면, 힘있는 사람들이 불편함에 눈 뜰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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