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일상다반사(13)
스텝바 그건 괴물이었다.
매주 한두 번 동네 스포츠센터에 간다. 거짓을 좀 보탰다. 실은 한 달에 두세 번쯤 동네 스포츠센터에 간다. 운동 자체보다 스포츠센터에 가기까지가 제일 시간이 걸린다. 옷을 챙기는 것도 단백질 파우더를 챙기고 물을 준비하고 신발을 넣기까지가 가장 동기부여가 필요한 순간이다. 그냥 가면 되는데, 그 ‘그냥 가다’가 제일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생각하고 바로 결론을 내렸다. 아, 그래!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억지로라도 스포츠센터에 가지 않을까? 요가에는 몇 번 참가해 봤다. 대낮에 스포츠센터를 이용하는 분들은 대부분이 어르신이시다. 70대 이상이 많아 보인다. 요가는 천천히 진행된다. 나보다 유연한 어르신들을 따라하는 것만으로 숨이 차다. 운동부족은 이런 것이라고 온몸이 나에게 가르친다. 요가 말고 조금 신나는 걸 해보고 싶다. 줌바? 과연 춤을 출 수 있을까? 그러다 발견했다. 바로, ‘심플 스텝’이란 프로그램을. 이름부터 심플하다. 간단할 게 분명하다. 나는 생각했고 고로 답을 찾았고 고로 존재한다. 이런 식으로 쓰라고 만든 말은 아니겠지.
여하튼 갔다, 심플 스텝을 때리러.
스텝바의 높이는 20센티 정도였다. 이 정도쯤 오르고 내릴 수 있어.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그런데, 아 이게 어쩐 일인가.
스텝바에 올랐을 때 비로소 떠올랐다. 나는 고소공포증이다. 6층 이상의 높이에선 잘 걷지도 못한다. 아파트 복도에선 몸을 벽 쪽에 딱 붙여야 간신히 걸을 수 있었다. 스텝바는 6층 높이가 아니다. 겨우 20센티 높이다. 그런데도 오르고 내리는 것이 어찌나 두려운지 모르겠다. 잘못 밟아서 사실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잘 보고 발바닥 전체로 밟으세요라고 조언했다. 아니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움직임을 봐야 하는데 어떻게 스텝바를 볼 수가 있나요? 가끔 선생이란 직업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자기를 보고 따라하라더니 스텝바를 잘 보라니. 대체 어느쪽을 봐야 정답일까.
어렵다. 나의 고소공포증은 오른쪽 발을 스텝바에 올릴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벌벌 떨려서 선생님처럼 가볍에 오르락내리락하며 때론 앞뒤로 움직이는 어려운 동작을 하나도 따라할 수 없었다. 두려움은 두뇌회전을 멈추게 한다. 아무것도 외우지 못하고 그 시간을 마쳤다. 몸치라서 좌절하고, 고소공포증으로 좌절했다. 발이 꼬이는 이유는 한국에선 왼발부터 시작이지만 일본은 오른발부터 시작이기 때문이다. 믿거나 말거나.
남들이 다 타봤다는 관람차. 나도 관람차에 로망이 있었다. 괜히 아름다지 않은가. 그러나 한 번 위에 올라간 모든 것은 내려와야 한다. 그게 8800미터의 에베레스트산이든, 90미터짜리 관람차든, 20센티의 스텝바이든. 올라가는 건 참을 수 있지만 내려 오는 그 순간이 너무나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관람차에 딱 한 번 타봤고, 그때 후회한 지라 더는 탈 용기가 없다.
‘심플 스텝’은 하나도 심플하지 않았다. 스포츠센터 강사들 중에서 가장 통통한 스텝바 선생님은 가벼운 발동작으로 스텝바 위에서 묘기를 부렸다. 나에게 스텝바는 평균대처럼 아슬아슬한 종목이었다. 제발 누군가 박수를 쳐주세요. 아니 시간아 빨리 좀 가라.
45분간의 스텝바 이후 등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식은땀인지 운동으로 인한 땀인지, 그 모든 것인지. 아마 등이 흘린 눈물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글에 교훈이 필요할까. 아 답답하게도 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메시지에 묶여 사는 어설픈 인간이다. 글을 쓸 때마다 교훈을 이끌어 내야 할 것 같은 환청에, 환각에 시달린다. 스텝바의 교훈은 앞서 말했듯 올라간 인간은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어디든. 올라가는 건 괜찮아도 내려오는 게 싫어서 등산도 안 하는 인간인데 스텝바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2022년의 여름,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스릴조차 느껴지는 등골이 서늘한 스텝바를 나는 이번 여름에 어떻게든 배워볼 생각이다. 스텝이 너무나 어려워서 집에 와서 그냥 바닥에서 해보니, 다 되는 게 아닌가. 역시나 스텝바는 괴물이다. 아니, 고소공포증은 20센티에서도 유효하다.
날씬한 몸에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싶다.
이런 고풍스러운 꿈을 꿔본다. 나는 정말 이런 여성혐오적인 행보를 실행에 옮기겠다는 것인가. 그렇다. 부정할 수가 없다. 내가 공기처럼 마셔온 여성혐오적인 연약한 여성을 평생을 살며 단 한 번 흉내라도 내보고 싶다는 생각은 내가 얼마나 여성혐오적이라는 반증인가. 이런 모순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일단 날씬한 몸을 가지지는 못하더라도 건강한 몸을 가지고 싶다. 그럼 대체 건강한 몸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백과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체중이나 콜레스테롤치, 건강검진이 말하는 척도가 건강한 몸의 기준인가? 누군가에게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마흔 해 이상을 살았는데도 나에게 딱 맞는 건강한 몸이란 어떤 상태인지 잘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 배가 고픈 것, 잠이 잘 오는 것, 어깨가 덜 뭉친 것, 다리 쥐가 별로 나지 않는 것, 혈당이 오르지 않는 것, 노안이 조금 천천히 진행되는 것. 내가 바라는 것은 그런 게 아닐까. 여하튼 월요일도 스텝바를 하러 스포츠센터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