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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문득

김민정의 일상다반사(12)

by 김민정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에 나는 캐나다 빅토리아에 있었다. 빅토리아 대학에서 잠깐 어학연수를 받고 있었다. 빅토리아는 밴쿠버 섬에 위치한 작은 항구 도시인데 일년내내 따뜻하고 조용하며 평화로운 동네였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커피를 한 잔 마시고, 호스트파더가 식탁 위에 준비해 둔 런천매트 위에 식빵을 구워 올리고, 역시나 호스트파더가 준비해 둔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 잼을 발라서 먹고 학교에 갔다. 호스트파더는 젊었을 때 캐나다 해군의 요리사였다는데, 그래서 당연히 요리 전문가였고, 아침은 내가 알아서 챙겨 먹어야 했지만 그런 나를 위해 매일 밤 미리 런천매트와 포크와 나이프를 식탁 위에 준비해 주는 마음이 너무나 고맙고 반가웠다. ‘챙김’을 받는 그 근사함 말이다.


아주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린다. 내게 주어진 첫 휴식 같은 시간이었다. 일본은 그 당시도 불경기였다. 대부분의 대졸자가 취업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지금 40대가 되어 역시나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고 있다. 일본은 지금도 불경기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리 일손이 부족하다. 시니어 세대가 은퇴를 하는 중인데, 그들의 자리가 갑작스럽게 빈 탓이다. 서비스직종은 언제나 일손이 부족하다. 대우 면에서 또 손님을 상대하는 일에서 직장이 그들을 지켜주는 일이 적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들이 서비스직종의 일손을 언제든 구할 수 있다고 착각을 하며 살아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그 당시 모 잡지사에 입사를 했다가 한일월드컵으로 인해 월드컵 조직 위원회에서 일을 해야 했고, 그 직장에서 오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리하지 못했다. 캐나다로 향하게 된 데는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했다. 첫째 6년간의 연애에 실패했다. 둘째 직장에서의 인간관계에 실패했다. 셋째 영어를 잘하고 싶었다. 넷째 친구와 영국에 가서 영어를 배우자고 했는데 영국에는 가지 못했지만 영국과 비슷한 곳을 찾던 바 빅토리아를 발견했다. 다섯째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이유를 늘어놓아보니 어느 하나도 결정적인 것은 없지만, 취업해서 모아두었던 돈을 들고 인터넷으로 빅토리아 대학 어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입학 신청을 하고 수업료를 내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것뿐이었다.


모든 과거는 돌이켜보면 다행스럽게도 다 좋게만 보인다. 기억은 그렇게 조작된다. 그래서 다행일 수도 있다. 매주 월요일 아침 나는 빅토리아에서 홈스테이를 했던 시절의 아침 7시가 떠오른다. 시작이란 의미다. 어디 나라, 어느 도시에 있든 월요일 아침 7시는 시작을 의미한다. 식상한 사실이며, 안심의 소재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 아침에 식빵을 구워 먹는 일은 없지만-평생 다이어트라는 심적 부담감 때문에, 당뇨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빅토리아 시절로 돌아가 새로운 공기를 마시고 또 하루를 살아보고자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이번 주 아이들은 학교에서 하는 라디오 체조를 하러 6:50에 학교로 간다. 강제성은 없지만 아이들은 이런 행사를 여간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6시부터 일어나서 식탁에 앉아 있다. 아이들은 커서 방학이면 라디오 체조를 하러 새벽같이 학교에 가던 길이 생각날 것이다. 이런 신나는 추억이 또 있을까? 즐거운 추억이 삶의 동기부여를 가져온다. 소소하고 작지만 오래 기억에 남을 것들을 아이들 스스로 찾으며 행동으로 옮기며 살아가길 바란다.


아아, 월요일이다. 일어나니 배가 고프다. 그래도 배가 고파서 얼마나 다행인가.

눈을 뜨고 일어났으니 또 얼마나 다행인가.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빅토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커피를 마시며 바라보던 작은 언덕을 떠올린다. 나는 왜 더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지 못했나는 내가 평생 짊어지고 갈 영어에 대한 컴플렉스로 자리할 것이다. 그리하여 굿모닝 팝스로 시작하는 2022년 7월 25일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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