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일상다반사(28)
<찰리 세즈>
도대체 왜 이렇게 재미난 영화가 주목을 받지 못했을까, 싶은 작품들이 있다. 2018년 미국에서 제작되고 2019년에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찰리 세즈>가 그렇다. 일본에서도 개봉이 되었지만 한달 가량 영화관에 머무르다 비디오영화(요즘말로는 다운로드영화인가)로 전락했고, 검색해본 결과 한국에서는 개봉도 되지 않은 것 같다. 감독은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 <아메리칸 사이코> 등 센세이셔널하고 패셔너블한 영화로 주목 받은 메리 해론이다. 그녀가 세기의 살인자 찰리 맨슨과 그 추종자들을 소재로 그려낸 영화가 바로 <찰리 세즈>(찰리 가라사대)다. 폴란스키 감독의 아내이자 배우인 샤론 테이트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도 기발하지만, <찰리 세즈>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
<찰리 세즈>는 찰리 맨슨이 아닌 그 추종자로 실제로 살인을 저지른 여성들이 세뇌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을 그려냈다.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일단 찰리 맨슨과 그 패밀리에 관해 얘기해 두자.
20세기 최악의 살인마라고 불리는 찰리 맨슨은 1934년에 태어나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으며 어릴 때부터 자잘한 범죄를 저질러 소년원을 다녀왔고 그 후에도 형무소를 오간다. 여기까지는 흔히 듣는 스토리이다. 물론 이런 과정을 겪고도 누군가는 평범한 인생을 살기도 하며 더 큰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찰리는 후자다.
그것도 아주 괴상한 방법으로 말이다. 강도 강간 등으로 10년 이상을 감옥에 수감되어 보낸 찰리는 1967년 감옥에서 나와 기타 하나만 들고 샌프란시스코로 향한다. 거의 평생을 감옥에서 보낸 그에게 샌프란시스코는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였다. 1967년,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는 계속되고 있었고 젊은이들은 히피 문화에 심취한다. 모든 히피 문화가 마약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 연구서에 따르면 히피 문화와 마약을 연결시켜서 반전운동을 저지하려 했다고 한다. 여하튼 그러나 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던 시절, 찰리는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자신을 격상시켰고, 값싼 마약을 구입해 여성들과 동거를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새 불어난 그와 그의 여자들은 LA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고 본격적인 집단생활(코뮨)이 시작된다.
찰리의 집단에서 찰리는 독재자다. 그리고 그곳은 아주 작은 독재국가이다. 식사를 할 때도 남자가 먼저 숟가락을 들어야 하고, 여자들은 찰리가 허락한 남자와만 잠자리를 함께 할 수 있다. 찰리 가라사대 “에고를 버려라”, 즉 저 자신임을 버리는 것이 자유라는 것이다. 찰리 가라사대 “선도 악도 없다”, 즉 찰리의 말에 따르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이다. 찰리 가라사대 “부모와 연락을 하지 말라. 부모는 너를 어리광쟁이로 키웠다” 즉 세상과 단절하라는 의미다. 찰리 가라사대 “생각을 하지 말라” 즉 시키는대로 뭐든 하라는 것이다.
아니 도대체 왜 이런 말들을 곧이곧대로 듣는 것일까? 도저히 알 수 없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러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그다지 성과를 올리지 못했고 젊은이들을 혹여 전쟁에 동원될까 두려워하거나 이미 전쟁에 다녀온 후유증을 앓고 있었고 68년으로 넘어가는 혁명의 시기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히피 문화는 최고조로 치닫고 있었고, 누구나가 더 자유를 원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찰리의 집단에게 자유란 찰리가 마련한 농장 내에만 존재하는 것이며, 성적인 면에서만 적극적으로 허용되었다. 허용되었다기보다 찰리에 의해 제물처럼 이용되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찰리는 비치 보이스 멤버인 데니스 윌슨에게 여자들을 제공했으며 자신의 음반을 내기 위해 당대의 인기 프로듀서 테리 멜처에게 접근할 때도 여자들을 미끼로 이용하려고 했다. 적어도 찰리는 자신의 코뮨 유지를 위해 코뮨의 남자들에게도 여자과의 잠자리를 이용했다. 도대체 왜 이 여성들은 그를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그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찰리는 최악의 인종차별주의자이기도 했는데, 그는 세상에는 신이 다섯이 있는데 그중 넷은 비틀즈의 멤버며 다섯번째는 자신이라고 주장했고, 곧 세상 밖에서는 흑인들이 들고 일어나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1)찰리 집단이 백인들을 죽이고 흑인들이 죽인 것처럼 한다-2)흑인과 백인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3)흑인이 승리하지만 흑인들에겐 통치를 할 능력이 없다-4)우리 집단 멤버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지하에서 지내다가 전쟁이 끝나면 나가서 흑인들 대신 통치를 한다,는 것이다. 아아 속이 터진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느냔 말이다.
여하튼 그래서 이 찰리 집단의 사람들은 1을 실행해 옮기기 위해 연쇄살인을 저지른다. 그것도 실행에 옮기기 전에 여러번 연습을 거친다. 여하튼 1967년 7월에 마약매매상이자 음악교사였던 게일리 힌맨을 죽이고, 8월에는 그 유명한 폴란스키 감독의 아내이자 배우에다 임신중이었던 샤론 테이트와 그 자리에 있던 그녀의 전 약혼자 등등을 살해하고 그 후엔 수퍼마켓 체인점 주인 부부를 살해하는 등 총 9건의 살인을 저질렀다.
영화는 샤론 테이트를 직접 살해한 3명의 여성이 감옥에 수감된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각 독방에 수감된 세 여성은 여전히 세뇌상태에 있다. 그녀들은 세상에 곧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자신들이 그 후에 이 세상을 통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언젠가 자신들은 요정이 될 것이라고도 아주 진지하게 말한다. 이 세 여자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뉘우침따위 없다. 모든 인생을 송두리째 찰리에게 받쳤기 때문이다. 이 세 여자를 만나러 온 컬린 페이스는 감옥에 수감된 여성들이 사회에 나가 생활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것들을 가르치는 교사다. 컬린은 세 여성들을 만나, 그녀들이 얼마나 깊게 세뇌되어 있는지를 살핀다. 컬린은 절대 화를 내거나 큰소리를 치며 반성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녀들 스스로가 세뇌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죄를 짊어지고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그녀의 임무다.
“우리는 요정이 될 거예요.”라고 세 여인들이 말한다. “그걸 진짜 믿어요?” 컬린이 되묻는다.
“찰리가 그랬어요.” “아, 찰리요. 찰리 말고 당신 생각은 어때요?”
세 여인들은 눈이 동그래진다. 지금껏 아무도 그녀들에게 그녀들의 생각을 묻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 당시 정황상으로 그녀들은 집에서도 그런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라 약간의 자유를 맛보기 위해 집을 나왔을 것이고, 그러다가 찰리를 만났을 것이며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는 코뮨에서 마약을 하고 성관계를 맺으며 그것이 자유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찰리와 남자들이 먼저 식사를 해야 하고, 찰리에게 맞으면서도 “찰리가 하는 일은 다 옳다”며 웃어야 했던 여성들에게 처음으로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 날아든 것이다.
컬린은 이 세 여자들에게 인종차별주의와 관련된 서적과 여성차별에 관련된 책들을 선물한다. 세 여자들에게 컬린은 이제 아주 중요한 인물이고, 자신들을 눈뜨게 해줄 마지막 수단이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왜 살인은 저질렀는지 알지 못한다. 찰리가 하라고 했으니까. 찰리의 말이 맞으니까. 그러나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이 이어질 수록 참을 수가 없게 된다. 나는 왜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을 죽였을까? 그런 질문 앞에서 그녀들은 무너져 간다. 그 대답을 찾는 일은 찰리의 세뇌에서 벗어나 사람을 죽였다는 무거운 양심의 가책을 평생 끌어안고 산다는 의미다.
컬린의 캐릭터가 시종일관 고요하고 관대한 이미지라는 것이 찰리의 교활하고 과장된 캐릭터와 비교되면서 그럴듯하게 연출되어 있다. 영화에는 그려지지 않지만 가부장제 압박에서 벗어나 찾은 자유가 결국 살인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맺게 된 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물론 가장 큰 잘못은 찰리 맨슨에게 있다. 범죄자로 살아온 그는 이 커뮨을 오래 지속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단정할 수 없지만 그는 그 업계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그가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 커뮨이 언제든 끝이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그를 믿는다는 약발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찰리는 자신의 영향력을 꾸준히 과시하기 위해 흑인들을 적으로 삼았고, 언젠가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선동했으며 그래서 너희들은 그 전쟁을 일으키는 중요한 수단이니 어서 사람을 죽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흑인들이 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소녀들은 너무나 어리고, 금세 세뇌된다. 찰리와 한 번 잠자리를 가지는 것, 그것만으로 그녀들은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다. 도대체 사랑은 무엇인가. 그리고 찰리는 그 사랑을 미끼로 어리고 세상물정 모르는 여자들을 속이고 사람을 죽이게 만든다.
세 여인을 세뇌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했던 컬린은 2017년에 사망했다. 영화 제작에 앞서 컬린은 세 여인을 영화에 관여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간신히 세뇌에서 벗어난 여성들에게 찰리라는 과거를 보여주지 말란 의미였을 것이다. 세 여인 중 한 명인 수잔 앳킨스는 2009년에 뇌종양으로 옥중에서 사망했고, 패트리시아 크렌윈켈은 2018년 당시 복역중이었고, 레슬리 밴도 복역중이다. 찰리 맨슨은 2017년 감옥에서 사망했다.
“우리가 믿었던 모든 것들이 잘못된 것이었다. 파괴와 공포를 낳고 많은 생명을 빼앗았다. 그저 사랑받으려고 범죄를 저질렀다”고 패트리시아는 말했다.
찰리 맨슨 패밀리가 연속살해를 저지르던 그 시점, 일본의 젊은이들도 비슷한 패밀리를 만들어 산으로 들어
갔다. 그들은 거기서 자기 패밀리 일원들을 죽이게 된다. 다음호에서는 나라와 싸우려다 친구들을 죽인 젊은이들을 그린 일본 영화 <빛의 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