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일상다반사(41)
모든 기억은 재구성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머릿속에서 그 재구성과 재편집은 이뤄진다. 나의 부모가 어떤 사람이었느냐. 좋은 기억과 그렇지 않은 기억이 뒤얽혀있다.
한 가지 객관적인 사실은 책을 사는 일에 진심이었던 사람들이었다. 엄마는 우리 남매를 위해 아직 글자를 읽기도 더 전에 100권짜리 세계전집을 사주었고, 초2쯤 되던 해에 24권이던가 했던 백과사전을 집에 들였다. 덕분에 나는 그 호화로운 컬러 백과사전에서 루브르 미술관 같은 페이지를 펼쳐놓고 화려한 그림들을 감상했다. 친구와 영화 100개 적어 빙고하기 같은 게임을 하면서 역시나 백과사전을 펼쳐놓고 <콰이강의 다리> <물망초> <플래툰> 같은 제목들을 100개씩 적었다.
꽃이름 곤충이름 동물이름보다 나는 영화 제목이나 각 나라의 수도, 각국의 미술관과 화가 이름과 대표작을 더 열심히 찾아보고 더 열심히 외웠다. 그런 작업들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하루 종일 백과사전만 보고 있어서 배가 고프지 않았다(거짓말을 좀 보탰다).
아빠는 만화에 진심인 사람이었는데, 내가 한글을 익히게 된 결정타는 허영만의 권투만화였다.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 한권짜리 만화였는데, 주인공은 뭐 아시다시피 예상하다시피 가난한 복서다. 그리고 그 복서를 좋아하는 푸짐한 스타일의 여자가 나온다. 복서는 그녀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녀가 그 가난한 남복서를 위해 콩나물국을 끓여주던가 뭐 그런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녀는 배시시 웃는다. 지금 보면 여성혐오적이라고 충분히 해석할 여지가 있는 권투만화였는데 여하튼 어찌나 재미가 있던지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나는 그 만화로 확실하게 한글을 익혔다.
소년중앙, 소년동아, 새소년, 보물섬 같은 책들을 매달 우리집에 들인 것도 아빠였다. 엄마도 아빠도 활자 중독자였던 듯하다. 그게 만화건 소설이건 잡지건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선을 지켰는데 우리집에는 <썬데이 서울> 같은 것은 없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나 <샘터>는 있었지만. 친구네 집에 갔을 때 그 집 서재에 있던 <썬데이 서울>을 꺼내들었다가 뒤로 자빠질 뻔했다.
우리 부모님처럼 활자라면 <썬데이 서울>만 빼고 가리지 않고 사서 주는 부모 밑에서 자란 나는 이제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힐지 고민이 많다. 내가 사오는 것보다 아이들이 학교 도서실에서 빌려오는 책들이 훨씬 많은 것도 사실이다. 큰애는 요즘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한국 소설 <아몬드>를 읽고 있고, 둘째는 <비밀 시리즈>로 나온 <발전소의 비밀> <보일러의 비밀>등을 읽으며 다양한 지식을 쌓고 있다.
도대체 어떤 책을 읽혀야 할까도 육아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건 아주 까다롭고 어려운 부류다. 아이의 성향도 중요하고 부모의 성향도 중요하며 유행도 어느정도 따라주면서 양서를 골라야 한다. 게다가 책 읽으라는 잔소리대신 아이 책상에 슬쩍 책을 올려놓는 센스와 부모가 직접 책을 읽으며 즐거워하는 연기 아닌 연기도 필요하다. 우리애가 어떻게 하면 책을 좋아하게 될까요? 그런 질문들이 육아서에도 자주 나오는데,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한다. 그런데 책을 읽어주는 대신 휴대폰을 쥐어주고 텔레비전만 틀어주면 당연히 자극이 훨씬 큰 휴대폰과 텔레비전에 푹 빠질 수 밖에 없다.
나에게 주어진 나혼자의 시간을 가장 재미있고 유익하게 쓰는 것이 인간인데, 세상에는 재미난 일이 너무나 많고, 휴대폰 안의 세계는 무궁무진해서 빠져나올 구멍이 없다. 그래서는 아니지만 여하튼 우리집에선 휴대폰은 아직 아이들에게 주지 않았고, 유튜브를 보는 시간은 1인당 20분으로 정해져있다. 그렇다면 남은 시간은 뭘로 채우느냐. 숙제를 하고 책을 읽고 몸을 움직이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그렇다면 어떤 책이면 아이들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 너무나 어려운 숙제다. 학교에선 각 학년마다 읽으면 좋은 책 목록을 나눠준다. 방학 기간엔 이 목록에 적힌 책이 도서관에 한 권도 없지만 개학을 하면 다 돌아와있는 법이다. 그래서 개학한 후에 그 책들을 빌리러 간다. 내가 아는 책보다 훨씬 다양한 책들을 만날 수 있다.
연초에 돌아가신 발레 선생님이 자기 서고를 발레학원에 기증하셨다. 그래서 요즘은 발레 학원에 가서 책을 빌려오는 경우도 있고, 아예 가지고 갈 수도 있게 해 놓은 덕분에 얼마전에 가서 몇 권 가져왔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그리고 러시아 대문호의 소설들, 내가 중학교 때 읽고 뒤통수 맞았다고 생각한 <데미안>과 <수레바퀴 밑에서>도 들고 왔다. 책을 읽지 않아도 어른이 된다. 하지만 책을 읽는 재미를 알면 인생이 조금 풍요로워지지는 않을까 싶은 게 또 부모의 생각이다. 책을 많이 읽은 것이 내 인생을 풍요롭게 했는가라고 묻는다면 돈을 벌게 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나란 인간을 비교적 정직하고 정의롭게 만들었다는 생각은 든다. 알을 깨고 나오라고 말해줄 수 있는 부모가 되었다는 건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득이 아닐까.
고교시절 나는 일본에 오자마자 고등학교에 들어가 대입을 준비했다. 일본어를 배우는 게 고역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게오르규의 <25시>를 읽고 마음을 다잡았다. 루마니아의 농부 요한 모리츠는 기구한 인생을 살게 된다. 유대인으로 몰려 수용소에 가게 되고 탈출에 성공하지만 이번에는 루마니아인이란 이유로 고문을 당하고, 나중엔 나치 친위대가 되어 강제수용소에서 일을 하고, 전쟁이 끝나자 친위대였던 이유 때문에 포로 수용소에 감금된다. 세상에서 나만 혼자라고 생각했던 일본에서의 고교시절에 <25시>를 읽고 눈이 번쩍 떴다. 나의 처지 따위 요한에 비교하면 손톱의 때만도 못하구나 싶어서, 마음을 다잡아 공부를 했다. 아이들이 인종문제, 민족차별, 공부에 대한 고민이나 인간관계로 힘들어 할 때 오래된 소설이지만 권해줄만한 목록이 내 안에 있다는 것 자체가 안심이 된다. 내 힘과 내 말로는 도저히 이해시킬 수 없는 일들도 책이나 영화들이 대신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네 꿈을 펼쳐라. 그러려면 네 꿈을 찾아라. 큰애는 발레에 푹 빠져 살고 있다. 성적은 중위권이다. 둘째는 무난하게 살고 있다. 성적은 상위권이다. 막내는 학교에 가는 것이 고역이다. 공부는 잘한다. 우리 세 아이를 어떻게 키우면 좋을지 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니까. 아이들의 꿈을 어떻게 찾아내면 좋을지도 실은 잘 모르겠다. 사는 건 대체 왜 이렇게 어려울까. 더 쉽게 더 편하게 사는 사람은 없을까. 가끔은 탈무드를 꺼내보기도 하고, 가끔은 칼릴 지브란의 글들을 읽어보기도 한다. 새로운 작가들의 글도 물론 좋지만, 오래전 읽었던 작가들을 꺼내보는 재미도 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이를 키운다. 당신이 어떻게 아이와 마주하고 있든 나는 당신을 응원할 것이다. 나에게도 응원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