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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Jun 25. 2016

호놀룰루 마라톤을 뛴 시각장애인 가수, 우에다 와카나

理想한 사람들_일본 편

-이 기사는 레이디경향 2012년 1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ㆍ호놀룰루 마라톤 대회 최연소 주자 우에다 와카나 & 어머니

2011년 호놀룰루 마라톤 대회의 최연소 주자는 열한 살의 우에다 와카나였다. 초등학교 6학년 소녀는 시각장애의 불편까지 안고 있었지만 엄마와 함께 42.195km를 무려 14시간에 걸쳐 완주했다. 다리가 아파 눈물이 나도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즐거운 마음으로 도전하고 싶다는 모녀의 도전 인생을 소개한다.

오랜만에 신칸센을 탔다. 신칸센의 묘미는 도시락이다. 시나가와 역보다 도쿄 역의 도시락 종류가 다양하다. 그런 탓에 집에서 가까운 시나가와 역 대신 도쿄 역까지 가서 도시락을 공수했다. 고르고 골라 선택한 것이 신선한 해산물이 가득한 해물덮밥이다. 작년 호놀룰루 마라톤 대회 최연소 주자이자, 시각장애인 가수로 활약 중인 우에다 와카나를 만나러 나고야로 향했다. 역에 도착하니 와카나와 그녀의 어머니가 반겨주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와카나는 "곤니치와(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하고 바로 필자의 손부터 잡았다. 그녀가 터득한 사람을 구분하는 방법이다. 손을 잡고 체온을 느끼며 그녀는 새 사람을 맞이한다. 단순히 인사만 나누는 것보다 훨씬 친근감 있고 따뜻한 교류다.                                                                        

여름 내내 밖에서 놀았는지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와카나와 내내 미소를 짓는 어머니 마유미씨. 두 사람의 관계는 보통의 모녀 이상으로 보인다. 굵은 고리로 연결된 엄마와 딸의 12년 인생. 그 일부만이라도 들어보려고 그곳까지 갔다.


시각장애인 딸과 싱글 맘의 호놀룰루 마라톤 도전기

2011년 12월 11일 열린 호놀룰루 마라톤 대회의 최연소 주자로 화제를 모은 와카나. 소녀는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나이도 어렸고, 시각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가 과연 42km가 넘는 마라톤 풀코스를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지 걱정 어린 시선이 몰렸다. 그러나 소녀는 달렸다. 장장 14시간 10분 37초의 기록.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소녀 옆에는 어머니가 함께했다. 와카나의 완주는 소녀 혼자만의 몫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힘,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의 목소리가 소녀의 발을 멈추지 않게 만들었다.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대회로 손꼽히는 호놀룰루 마라톤 대회는 매년 12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리며, 일본의 유명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도 여러 차례 언급될 정도로 잘 알려진 대회다. 지난해 대회에는 전 세계에서 2만2천여 명이 참가해 1만9천여 명이 결승선을 통과했다. 와카나의 감동적인 완주 소식은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메일을 비롯해 미국, 중국 등 각국의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레이디경향(이하 LADY) 마라톤을 하게 된 계기는?

우에다 마유미(이하 어머니) 인연이었나 봐요. 와카나가 한 자선 단체의 합창에 참여했을 때 암 환자와 장애인 마라톤 팀 '메신저'의 창립자인 스기우라 다카유키씨를 만났어요. 스물여덟 살 때 암이 발병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암환자 지원을 위해 '메신저'를 설립하신 분이에요. 이후 호놀룰루 마라톤 대회에 단체 참가를 하고 계신데, 그분에게서 마라톤 대회에 나가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받았죠.

우에다 와카나(이하 와카나) 바로 나가고 싶었는데 그럴 수는 없어서 1년 동안 연습했어요.                                                                        

                                                                      어린 시절의 와카나.

LADY 어떤 연습을 했나요? 앞이 보이지 않는데 넘어지지는 않았나요?

와카나 한 번도 안 넘어졌어요. 일단은 주변을 산책하고,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어머니 저희 집에서 친정까지 15km쯤 되거든요. 그 길을 걸어 다니면서 오래 걷고 뛰는 법을 익혔고, 마라톤 교실 등을 통해서 스트레칭부터 뛰는 법 등을 배웠어요.

LADY 호놀룰루 마라톤 대회의 풀코스 완주라니, 정말 대단해요. 달리는 동안 해프닝이나 문제점은 없었나요?어머니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와카나가 발이 아파서 도중에 울었죠.

와카나 발이 아프다고 하니 엄마가 주물러주셨어요. 그런데도 전혀 낫지 않아서 많이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정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응원해주시는 분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죠.

어머니 궁하면 통한다고, 호놀룰루 마라톤 대회는 기적과도 같았어요. 와카나가 발이 아파서 쉬고 있을 때, 마침 마사지 자격증이 있는 '메신저' 멤버가 저희 앞을 지나가셨던 거예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와카나의 발을 마사지해주셔서 통증이 완화됐죠. 그뿐만이 아니에요. 10시간 이상 달리다 보니 무척이나 배가 고픈 거예요. 허기 때문에 더 이상 못 뛸 것 같은 시점이었는데, 지인께서 삼각김밥을 만들어 갖고 오신 거예요. 굿 타이밍이었죠.


10km 지점. 와카나의 발이 다시 아파왔다. 마유미씨는 '포기'란 단어를 머릿속에서 되뇌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계속 뛸지 그만둘지, 그 선택은 아이에게 맡기고 싶었다. 호놀룰루 마라톤 대회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은 와카나였다. 와카나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따를 작정이었다. 너무 아프다고 하면 포기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였다. 이미 결승선을 통과한 지인이 와카나를 응원하러 되돌아왔다. 그는 아내를 암으로 잃은 스물일곱 살 청년이었다. 이 청년의 응원에 와카나는 발의 고통도 잊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와카나는 "계속 눈물이 나더라고요. 발이 아픈 건 금세 잊게 됐고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응원해주는데 계속 뛰어야지' 하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어요. 매우 고마웠어요"라고 당시의 심경을 전했다.

마지막 10km는 와카나를 응원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뛰었다. 마유미씨는 그들의 응원을 기적이라고 표현한다. 때마침 마사지 자격증을 가진 지인을 만난 것도, 적당한 타이밍에 도착한 삼각김밥도, 결승점을 거슬러 와서 와카나를 응원해준 사람들이 있었단 사실도….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인연이 맺어준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시각장애인 딸의 엄마로서

LADY 와카나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언제 아셨나요?

어머니 와카나는 자연분만으로 아주 건강하게 태어났어요. 그런데 두 달째 되던 날, 와카나 앞에 장난감을 가져가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거예요. 바로 의사를 찾아갔죠. 시신경은 살아 있으니 우선은 재활치료를 받으라기에 1년을 받았어요. 그런데 가망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죠.

LADY 상심이 크셨겠어요.

어머니 처음엔 왜 우리 아이의 눈이 이렇게 된 건지 자책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눈이 안 보이는 우리 딸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그 방법을 가르치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이 아이가 어른이 됐을 때 인생을 즐기면서 살도록 가르쳐주고 싶었고요.

LADY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인생의 즐거움을 알려줄 수 있나요?

어머니 제 스스로 인생을 즐기고 있고, 무슨 일을 해도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전 와카나가 아기였을 때부터 일을 했어요. 그러면서 육아와 가사를 병행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즐겁게 하고 있어요. 즐겁지 않을 때는 일부러라도 "우와, 정말 재밌다" 이런 식으로 계속 얘기하다 보면 정말로 즐거워지고요. 제가 만사를 즐거워하면 아이도 마음으로 배우게 되지요.                                                                        

1 믿음과 사랑으로 똘똘 뭉친 마유미씨와 와카나 모녀. 2 네 살 때부터 귀로 악보를 익혀 피아노를 배운 와카나는 요즘 한창 작곡에 재미를 붙였다. 3 트로트를 부르는 세 살 무렵의 와카나.


LADY 와카나가 살아가기 위해선 자립이 필요한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준비하고 계세요?

어머니 아주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있어요. 와카나는 이제 대부분의 일을 혼자 할 수 있어요. 지난여름엔 캠프도 다녀왔어요. 2박 3일간 비장애 어린이들과 함께 지내다 왔어요. 머지않아 자립할 수 있을 거예요. 무엇보다 강인하고 긍정적인 아이로 크고 있어요. 저는 와카나가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키우고 싶어요. 호놀룰루 마라톤 대회에 나가겠다고 한 것도 와카나였지요. 와카나가 하겠다고 의지를 굳히면 서포트하는 게 엄마로서의 일이에요. 실제로 마라톤 대회에 나갔을 때 와카나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제가 나서서 포기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전 절대 제 맘대로 결정하지 않아요. 와카나의 의사를 물어보지요. 와카나가 뛰겠다면 응원하고, 포기하겠다면 그 결정을 받아들여요.

LADY 어떻게 하면 포기하지 않는 긍정적인 사람으로 키울 수 있을까요?

어머니 글쎄요, 전 그냥 평범한 엄마예요. 와카나가 어릴 때부터 일을 했고, 와카나 아빠와는 몇 년 전 이혼했어요. 아마 와카나는 많이 고독했을 거예요. 저도 알아요. 그래서 전 늘 "귀엽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아요. 자주 안고 뽀뽀도 하고요. 엄마들은 자기가 바쁘면 아이들이 얘기를 하고 싶어도 "바쁘니까 나중에 해"라고 하는데, 아이는 엄마한테 상의를 하고 싶은 거거든요. 그 기회를 놓치면 아이가 다시는 얘기를 해주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저는 와카나가 얘기를 하고 싶다면 우선은 들어줘요. 청소나 빨래보다 아이 얘기는 듣는 걸 우선순위로 두지요. 그리고 와카나가 잘못을 저질렀을 땐 "네가 싫어서 혼내는 게 아니라 예뻐서 혼낸다"라고 꼭 말하고요.


어머니의 노력은 단단한 결실을 맺고 있다. 와카나가 올바르게 자라준 것이 그 결실이다.

"엄마는 오리털 이불 같아요. 부드럽고 따뜻하고, 저를 폭 감싸 안아줘요."와카나에게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가장 부드럽고 가장 커다란 행복을 주는 사람이다.


시각장애 소녀의 꿈은 메시지를 전하는 가수                                                                        

와카나가 직접 들려준 아카펠라송.


중학교 1학년생 와카나는 매우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평일엔 학교 수업을 받고, 주말엔 아마추어 가수로 무대에 선다. 각 지역의 노래자랑 대회와 라이브 무대에서 게스트로 활약 중이다. 때로는 초등학교로 강연을 나가기도 한다. 또 지역 방송인 FM도요타에도 출연 중이다(와카나의 닛코리 타임 팟캐스트http://www.loveat.co.jp/?p=9523). 시각장애인으로서 살아온 생활과 마라톤 감동을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LADY 노래는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와카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노래방을 좋아하셔서 어릴 때부터 저를 데리고 다니셨어요. 세 살 때부터 할아버지가 부르시는 트로트(엔카)를 주로 불렀죠.

어머니어릴 때부터 유명했어요. 트로트를 잘 부르는 세 살짜리 여자아이로 인기가 많았죠.

LADY 악기도 배우나요?

와카나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고, 지금은 기타도 배워요.

어머니악보 없이 귀로 익히며 배우고 있어요. 최근에는 첫 자작곡도 만들었어요. '아리가토(감사합니다)'란 노래예요.

LADY 와카나의 꿈은 뭐예요?

와카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수가 되는 거예요. 노래를 통해서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요. 또 노래를 잘하는 가수로 남고 싶고요.

LADY 마라톤 도전은 또 안 하나요?

와카나 3년 후에 나갈 거예요. 그때까지는 우선 노래에 중점을 두려고요.


열두 살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와카나는 어른스럽고 당당했다. 그리고 밝았다. 자신의 의사를 낭랑한 목소리로 피력했다. 어머니가 얘기를 하실 때는 조용히 필자의 손만 만지작거렸다. 예의 바르고 현명한 아이였다.

인터뷰 중 자작곡 '아리카토'를 불러주기도 했다. 사람은 혼자가 아니고, 당신과 내가 연결돼 있다는 내용의 노래다. 그녀의 목소리 앞에는 '천상의 소리'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청아하지만 깊이 있는 목소리다. 소녀의 음성이지만 가늘지 않고 굵은 톤이 매력적이다.

"사람들은 말이죠, 눈에 보이지 않는 고리를 하나씩 갖고 있어요. 마음을 열면 자신의 고리가 다른 사람의 고리에 연결되죠.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의 고리가 연결이 되면, 지구 모두가 가족이 되는 거고요."

와카나의 눈에 비친 세상은 사람과 사람이 하나가 된 세상이다. 언젠가 그런 자신만의 이상이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3년 후 호놀룰루 마라톤 대회에서 함께 뛰자는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필자로 말할 것 같으면 초등학교 성적은 모두 '수'인 반면, 담임으로부터 '공부는 잘하는데 지구력이 없다'라는 따끔한 충고가 적힌 성적표를 받은 사람이다. 오래 달리기, 오래 매달리기 등은 필자와는 별개의 세계였다. 그런데 마라톤이라고? 마유미씨는 "마라톤의 감동은 뛰어본 사람만 알아요. TV로 보는 감동이 돌멩이만 하다면, 직접 뛰면서 느끼는 감동의 크기는 지구만 해요. 돌멩이와 지구의 차이죠. 꼭 한 번 뛰어보세요"라고 슬쩍 부추겼다. 3년 후 와카나와의 약속을 지키려면 열심히 뛰는 연습을 해두어야겠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와카나의 온기가 필자의 손 가득 남아 있었다.


<■글 & 사진 / 김민정(「레이디경향」 일본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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