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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Jul 24. 2016

남편이라는 사람 1

서울여자 도쿄여자 #27

남편은 일본 사람입니다. 그는 일본어를 사용합니다. 저는 그에게 한 번도 한국어를 배우라고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어릴 적에 샌프란시스코에 살아서 영어는 곧잘 합니다. 네, 그게 문제예요. 남편은 언어를 학습시간을 통해 배워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실생활에서 몸으로 익힌 사람이어서, 한국어를 어떻게 배워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국어의 첫번째 관문은 한글이에요. 네모와 동그라미와 직선으로 이루어진 한글. 남편은 한글을 보자마자 두손 두발 다 든 사람입니다.


제가 아직 20대였고, 남편이 아닌 다른 남성과 연인관계에 있었을 때, 저는 그에게 한국어를 배우라고 종용했습니다. 다행히 그는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함께 한국영화를 보러 가거나, 한국 문화원의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다릅니다. 저는 남편이 한국어를 몰랐으면 좋겠어요. 아니, 알면 좋겠지만, 한국에 대해서 배우고 익히게 되면, 오지랖을 부리게 될 것이고, 저에게 질문을 퍼붓게 되겠지요. 저는 그런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이 왜 벌써부터 귀찮아지는 걸까요? 남편은 과묵한 사람입니다. 제가 남편과 결혼한 이유는, 첫째가 인연이겠고, 둘째가 그가 과묵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남편이 밤새 일하고 온 날에도 회사 욕을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요. 상사나 동료에 대한 나쁜 소문에 대해서도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일합니다. 저에게도 제가 요구하지 않는한 조언하지 않으며, 제가 원해도 그냥 웃을 뿐, 여간해선 조언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잘하고 잘못했는지 당신이 제일 잘 알잖아. 내가 괜히 말했다가 혼만 나려고?" 네 정답입니다. 남편은 이렇게 정답인 사람입니다. 저는 첫째고, 누군가가 저를 지적하는 걸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옷이 안 어울려 화장이 안 받아, 네가 쓴 글 유치해, 일기는 일기장에 써, 팔뚝 두껍다, 다리는 왜 그리 굵니. 이런 소리는 그게 사실이라도 안 듣고 싶어요. 남편은 절대 그런 말을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남편은 과묵하지만, 행동으로 표현합니다. 제가 슈크림이 먹고 싶다면, 밤 열한시에도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나가 슈크림을 사옵니다. 저랑 티격태격한 날에는 한국 양념 치킨을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줍니다. 저에게 아침 식사를 요구한 적도 없고 다리미질을 요구한 적도 없습니다. 다림질이며 청소며 식사 준비 모두 대학 시절부터 10년을 혼자 산 남편이 저보다 훨씬 깔끔하게 잘합니다.


일본에선 스무살이 되면 대부분의 자녀가 독립을 합니다. 요즘은 불경기가 심해서, 독립을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제가 대학생이던 20년 전만 하더라도, 부모가 도쿄에 사는데도 불구하고, 집을 나와 사는 학생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벌었고, 학비와 약간의 집세를 부모로부터 지원받기도 했습니다. 취직을 하면 거의 대부분이 집을 나옵니다. 독립하는 거지요. 남편은 대학 시절부터 혼자 살았고, 취업을 하고도 혼자 살았어요. 다림질은 저보다 100배 낫습니다. 남편이 찌개를 끓이면, 두부와 파와 감자와 당근이 신선로처럼 얌전히 줄지어 놓여있습니다. 저는 남편의 그런 정갈함을 사랑합니다. 저에게는 없는 부분이니까요.


말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내가 저 별을 따다가 너에게 줄게. 하지만, 정말 별을 따다 달라고 하면, 시간이 없다고 하거나, 우주선이 없어서 별을 못 따다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라고 변명하기도 하지요. 돈도 우주선도 시간도 없단 사실을 왜 그들은, 간과하고 그런 약속을 하는 걸까요? 전 별을 따다 줄 남자보다 작은 약속을 지키는 남자 편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편은 별을 따다 줄 생각은 일말도 없어 보입니다. 그는 그런 약속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대신 편의점에서 슈크림은 언제든 사다 줄게, 다리를 주물러줄게,와 같은 현실적인 약속을 해주는 사람입니다. 남편과 결혼해서 10년을 살았는데, 그럼에도 사이가 좋은 이유는 남편이 제 외모, 제 일에 간섭하거나 지적하지 않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지 않아서인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저는 매일매일이 새롭습니다. 그게 모두 남편이 한국어와 한국에 지나치게 관심을 두지 않는 까닭이 아닐까 싶어요. 서로 아주 조금씩 다가가고 알아가는 법이, 저희 부부의 10년의 평탄함을 책임진 요소 같습니다.


도쿄여자 김민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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