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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Jul 24. 2016

뭐라고요? 패트릭 스웨이지가 죽었다고요?

서울여자 도쿄여자 #26

서울여자 김경희 작가님


뭐라고요? 패트릭 스웨이지가 고인이라고요? 아니 대체 언제 왜요? 검색을 해봅니다. 그는 2009년에 췌장암으로 58세로 사망했다고 나옵니다. 패트릭 스웨이지 하면 '더티 댄싱'이죠. 그는 저에게 남자도 춤을 춘다는 걸 일깨워줬습니다. 제가 어릴 때 남성 그룹 중에 소방차가 있었어요. 그들은 율동이었죠. 그나마 박남정이 나와주어서, 남자도 춤을 추고 기교를 부린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패트릭 스웨이지. 그는 로보트 춤과 같은 스트리트 댄스가 아니라 클래식 하면서도 요염하고,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인, 제가 몰랐던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마음에 남는 작품은 '사랑과 영혼'이지요. 그 때 우리가 중학생 때 아니었다요? 저는 아직도 '언 체인드 멜로디'의 가사를 기억합니다. 워낙 많이 듣고 연습도 했으니까요.


패트릭 스웨이지가 고인이 되었습니다. 장국영도 고인이 되었고, 작가님이 좋아하는 신해철도, 제가 좋아하는 김광석도, 그리고 마이클 잭슨도 이제는 이 세상에 살아 숨쉬지 않습니다. 저는 저 세상도, 연옥도, 지옥도, 천국도 믿지 않아요. 일본 극작가 데라야마 슈지는 "삶이 끝나는 동시에 죽음도 끝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1983년 만 47세로, 간경화가 악화되어 사망했습니다. 일본 작가들 중에서 제가 사랑하는 작가가 데라야마 슈지입니다. 새엄마를 사랑하게 된 아들을 그린 연극 <신도쿠마루>, 어느날 갑자기 벽이 사라져버린 아파트에 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레밍> 등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어차피 죽을 거 왜 태어나느냐?

제가 여섯 살 때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친할머니와 증조할머니가 잇달아 돌아가시고, 삼촌이 사망하고 얼마 되지 않아 제가 한 질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어차피 죽을 거 왜 태어났는지를 물으며 살고 있습니다. 저처럼 소시민 같은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난 이유가 뭘까요? 이유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을 것 같습니다. 생물학적 측면에서 보면요. 그래도 이유를 부여하고, 가치를 부여하면서 사는 게 인생이겠지요.


아빠는 제가 열 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아빠가 돌아가신 후, 제가 숨쉬고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했어요. 다음날 살아있다는 사실에. 오늘도 눈떴다는 사실에. 죽이 됐든 밥이 됐는 제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저는 아빠의 죽음을 독서로 간신히 극복(?)했습니다. '부활'을 읽으며 그 주인공이 되어,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도 아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던 저를 용서하게 되었고, '파우스트'를 읽으며, 인생엔 모든 지혜로도 살 수 없는 값어치가 젊음과 건강에 있다는 걸, 어렴풋이 파악했고, '제인 에어'를 읽으면서 현명한 여자가 되고 싶었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으면서 화려하지만 고독했을 스칼렛을 동경했습니다.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와 '등신불'도 여러번 읽었습니다. 죽음이란 대체 무엇인지. 왜 어떤 이들은 사상을 위해 죽음을 택할 수 있는지. 왜 타인을 위해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지. 그리고 왜 세상은 양심 선언을 한 사람에게 가장 가혹한지에 대해서도요.


일본에 온 후로도 열심히 책을 읽었습니다. 네, 저는 책을 정말 좋아했어요. 일본에서 가장 노벨 문학상에 가까웠지만, 곧 타계해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한 작가 아베 고보. 일본의 카프카로도 불리는 아베 고보의 기상천외한 단편 소설에 푹 빠져 지냈고, 데라야마 슈지가 쓴 낭만적인 시들을 모은 '소녀 시집'을 늘 가방에 넣고 다녔습니다.


저도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소설이 아니라도 좋아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저는 작은 출판사에서 한국에 관련된 기사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 후론 재외동포 문학상에 소설을 응모해, 우수상을 받았고, 일본에서도 작은 문학상에 응모해 입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주로 기사로 밥을 먹고 살았어요. 소설로 돈을 벌겠다는 야무지고 오만한 꿈은 있었지요. 그렇지만, 그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요즘은 틈틈히 소설을 써보고 있어요. 제가 셋째를 임신 출산하면서 강사 자리를 남에게 내어줬기 때문에, 앞으로 또 강사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삶이 팍팍하네요. 그래서 글쓸 시간을 많이 가지지 못할 것 같기도 합니다. 먹고 살려면 저도 취업전선에 나서야 하니까요. 내년엔 아마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해 봅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더라도, 저는 쓰는 일을 멈출 생각은 없어요. 더 부지런히 써야겠지요. 저는 누군가를 위로하는 글을 쓰고 싶어요. 알량하고 얄팍한 글 밖에 쓰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고 싶습니다. 저처럼 10대 시절 아빠를 여의고 살았을 외로운 누군가가 제 글을 읽고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지길 바라면서, 조금 가난한 누군가가 제 글을 읽고 단 1분이라도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공부를 못해 주눅든 학생이 제 글을 읽고 단 1초만이라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를 그렇게 바라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세상과 작별을 하게 될 날이 오겠죠. 그 전에 더 많이 더 열심히 쓰다가 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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