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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Jul 24. 2016

파도가 치면 서핑을!

서울 여자, 도쿄 여자 #13

도쿄 여자, 김민정 작가님!

     

이 지겨운 여름은 언제 끝나지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영사기를 돌리던 주인공이 푸념하던 장면이 떠오르네요. 네 그래요 작가님. 섬나라 도쿄의 여름 못지않게 서울도 연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어요. 이제 겨우 초복이 지났을 뿐인데 찌는 듯한 더위를 견디는 것이 쉽지 않네요. 전에도 한번 말씀드렸던 것 같아요. 저는 겨울에 태어난 사람이라 여름이라는 계절에 약한 모양입니다. 밤에도 바람 한 자락 불어오지 않고, 땀히 흘러 등을 따끔따끔하게 하는데다 머리까지 지끈거리게 하는 더위! 하지만 여름을 미워할 수만은 없습니다. 이렇게 강렬한 태양과 푹푹 찌는 여름을 버티지 않고는 오곡백과가 제대로 여물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 더워도 별 수 없습니다. 지겨운 여름이지만 도리 없이 부둥켜안고 버티는 수밖에요.

     

그런데 말이에요 작가님. 여름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여름에 꼭 한번 배워보고 싶었던 레포츠가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파도를 타는 서핑이에요. 지금은 고인이 된 패트릭스웨이즈와 키에누리브스 주연의 폭풍 속으로라는 영화를 기억하세요? 서핑 보드 하나 들고 거대한 폭풍 속으로 들어가던 주인공의 마지막 장면! 물론 그 이후로도 서핑 영화가 참참이 나오기는 했지만 폭풍 속으로만큼 강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보게 된 또 한편의 서핑 영화, 바로 라이드인데요. 일밖에 모르는 중년 여성에게 어느 날 학교를 자퇴한 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편안한 수영장에서만 수영해본 엄마는 절대 거친 자연의 파도는 타지 못할거야라고 말이죠. 이 말에 자극받은 중년 여성은 처음으로 거친 파도를 타기 위해 서핑을 배우러 바다로 갑니다. 사실 영화 속 엄마 캐릭터가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어요. 잘난 엄마의 강박에 가까운 아들에 대한 집착도 그렇고 상황 설정이나 대사가 좀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제가 이 영화를 보고 서핑을 배우고 말겠어, 라고 마음먹은 건 넘실거리는 파도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요 작가님. 저도 영화 속 그 중년의 여성처럼 약간의 오기를 가지고 서핑에 도전하고 말았답니다. 운동 신경이 썩 좋지 않은 제가 과연 파도를 탈 수 있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No입니다.

     

처음 서핑을 접한 저는 파도에 완전히 당하고 말았어요. 제가 거친 바다를 너무 우습게 본 걸까요? 아니면 뭔가에 홀렸던 걸까요? 저의 생애 첫 서핑 도전기, 아니 실패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서핑이 너무 궁금하기도 하고 호기심도 있던 터라, 저는 방송프로그램을 기획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30분가량의 서핑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시작은 더 없이 좋았죠. 일도 하고 돈도 벌고 그토록 궁금해 하던 서핑의 세계에 입문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마침 방학이기도 해서 저는 아들까지 데리고 강원도 양양으로 나섰습니다. (한국에서 서핑을 할 수 있는 곳은 제주도와 부산, 강원도 양양 등이 있어요) 서울에서 2시간 반 거리를 달려간 그곳 강원도 양양! 동해바다는 어쩐지 강원도의 힘이 느껴지는 곳이에요. 넘실거리는 세찬 파도만 봐도 그렇지 않나요?

     

일단 남들 하는 걸 그저 지켜보기만 했어요. 며칠 쭉 보는데 한번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삼십대에 접어든 동료작가와 함께 초보자 강습을 받기로 했죠. 강사 선생님은 서핑의 매력에 빠져 강원도에 정착한 남자 분이었습니다. 질끈 동여맨 장발의 머리와 구리 빛 피부에서 전형적인 서퍼의 풍모가 느껴졌고요. 우리는 한 시간 반 정도의 이론 교육을 받고 곧바로 바다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는 모든 것이 다 좋았어요. ‘폭풍 속으로’ ‘라이드등의 서핑 영화를 섭렵했다는 저에게 강사 선생님도 신뢰의 눈빛을 보내셨으니 까요. 그런데 막상 바다에 들어가니 저는 사십대가 맞았습니다. 삼십 대인 동료와 똑같은 동작을 하는데도 도통 몸이 일으켜 세워지지 않았어요. 가장 큰 문제는 무릎인 것 같더군요. 저는 출산을 해서 그런 걸 거야, 라며 자기 위로를 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시작된 생애 첫 서핑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덮쳐오는 파도를 피하지 못해 서핑 보드에 그만 목 주위를 맞는 사고를 당하고 맙니다. 물론 심각한 건 아니었고요. 다만 놀랐는지 살짝 기절할 지경에 이르기는 했어요. 이상한 일입니다. 분명 파도가 오는 것을 보았는데 말이죠. 역시 아는 것과 피하는 것은 다른 걸까요?

     

그날 저는 태어난 이후 거의 처음으로 목 놓아 펑펑 울었던 것 같아요. 동료들이 달려와서 저를 눕혀 놓고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습니다. 삼십대의 그 동료도 놀란 토끼눈이 되어 저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죠. 아무래도 상관없었습니다. 창피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무엇보다 제 몸이 이토록 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약간 원통하기도 했어요. 그래요 작가님. 어쩔 수 없이 저는 중년 여성이었던 겁니다. 왜 이래, 나 아직 죽지 않았어, 라고 자만하며 바다에 풍덩 뛰어들었는데 제 오만함을 파도가 눌러준 셈이었어요. 그리고 곧장 서울로 돌아온 저는 2주 정도 한의원을 오가며 침을 맞아야 했습니다. 한의사가 의아해 하며 묻더군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라고 말이죠.

     

벌써 1년 전 일이군요. 생애 첫 서핑에 실패한 그 사건 말이에요. 하지만 요즘처럼 뜨거운 태양과 푹푹 찌는 더위가 오니 슬금슬금 그날의 파도가 떠오릅니다. 푸른 바다, 거칠 대로 거친 자연 그대로의 파도, 그리고 파도만 있다면 아무 것도 부러울 것 없다는 듯 자유롭게 파도를 타는 서퍼들! 벌써 7월도 막바지로 가고 있어요, 작가님. 올 여름 제가 다시 서핑에 도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또 모르죠. 이 지겨운 여름이 언제 끝나지, 라는 생각에 당장 동해바다로 달려가게 될지 말입니다. ! 신기한 것은 아이들은 금세 파도에 적응한다는 점이었어요. 균형 감각이 좋은 걸까요, 아니면 겁이 없고 용기가 있기 때문일까요? 아마도 둘 다 일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용감하니까요. 역시 겁쟁이는 어른이 된 우리들입니다. !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도쿄에선 바다를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서울 여자,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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