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정 Oct 03. 2016

아사히 신문 습격사건(1987)

일본현대사 #8

아사히신문습격사건 (1987 5 3)


 1987년 5 3 아사히신문사 한신지국에 장총을 든 모자를 쓴 사내가 나타났다. 사내는 그 자리에 있던 기자 둘을 향해 총을 쏘았다. 탕 기자는 쓰러졌고   하나가 목숨을 잃었다.

 아사히 신문사 한신(阪神)지국에 괴한이 들이닥쳐 기자를 살해한아사히신문습격사건(아사히 신문사 116호 사건)’ 올해로 시효를 맞았다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채 사건은 마무리되어야 했다. 자유로운 취재와 보도는 자유로운 시민사회를 창조하는 원동력의 하나다그런데, 취재의 전방에 있는 기자에게 총구를 들이밀었다. 이것은 분명 자유에 대한 위협이자전후 민주주의에 대한 반발이다.


<‘반일신문 아사히는 50년전으로 돌아가라’>

⦁구체적인 사건과 당시의 배경

 1987년 5 3 오후 8 15분경이었다아사히신문 한신지국 2층 편집실에 모자를  사내가 들어왔다사내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소파 근처까지 왔고, 마침 저녁식사를 마친 기자  명이 소파에서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헌법기념일이자 일요일, 휴일 기분으로 출근한 기자들은 누군가 장난을 치는  정도로 생각했다그때였다. 사내는 갑자기 장총을 발사했다. 정면에 앉아있던 이누가이헤이에이(犬飼兵衛)기자를 향해 한 발, 총성에 놀라 일어서려고 했던 고지리토모히로(小尻知博) 기자(당시29)에게   발포한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자리를 떴다.

 이누가이 기자는 손가락이 날아가고 신체 내부에 100개 이상의 탄환 조각이 박히는 심한 부상을 입었고, 고지리 기자는 구급차로 실려갔으나 다음날 숨을 거두었다.


 처음에는 고지리 기자가  기사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의혹도 있었다. 1986년 가을, 찻집을 경영하는 김성일씨가 외국인등록의 지문재취를 거부하자, 경찰서에 체포되어 강제로 지문을 체취당한 사건이 있었다이것을 인권침해라고 본 고지리 기자는 다음날 조간에서 특보로 다루었다. 


 그러나이 사건은 고지리 기자를 노린 것은 아니었다. 

 이를 전후로 아사히 신문 도쿄나고야시즈오카의 각 본사, 기숙사지국에의 습격사건이 이어졌고폭파미수사건도 있었으며, 다케시타나까소네  수상을 협박하고리쿠르트 전 회장자택에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아이치 한국인회관 방화사건으로까지 이어졌다. 범행 성명에는‘일본민족독립의용군 세끼호따이(赤報隊) 일동’이라고 적혀있었다.‘반일신문 아사히는 50년전으로 돌아가라’‘모든 아사히 사원에게 사형을 선고한다’라고 적힌 협박문을 보면 우익적 사상을 가진 범인상을 상상할  있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은 고도성장의 길에 올라 미국에 이은 두번째의 경제대국으로 자리하였다. 경제대국은 점차 정치대국, 군사대국으로의 성장을 꿈꾸게 된다 시절 이시하라 신타로는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인’을 발행하였고당시 정권의 톱이었던 나까소네는 국가주의자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내셔널리즘이 차츰 자리하기 시작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여론도 형성되어 있던 시기였다아사히 신문습격 사건이라는 테러를 배양할만한 정치적 토양이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일부에서는 아사히신문을 좌익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 중에는 단순한 비판반발을 넘어 증오의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세기호따이를 자칭하던 범인으로부터의 일련의 범행 성명은 아사히 신문사에의 극심한 증오와 전후 태세, 전후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주장으로 철저하고 있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언론 VS 폭력

 아사히신문 한신지국 습격사건은 올해로 시효를 맞이하였고우익사상을 지닌 자의 범행이라는 추측만 있었을 뿐 범인, 범행동기 무엇 하나도 제대로된 물증을 잡아내지 못했다

 최근 미국에서  소녀가 초등학교에서 총기를 휘둘러 초등학생 수명이 죽고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소녀는 이렇게 대답했다.“난 월요일이 싫어요.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어요.”아주 돌발적이면서 잔혹한 사건이었다. 


 왜 하필이면 아사히신문사에왜 하필이면 평범한 기자에게 총구를 겨누어야 했을까?

 모든 것이 미스테리에 쌓여있기에 돌발적인 사건으로 취급할 수도 없고언론의 자유를 협박한 사건이라고 단정짓기도 어렵다.


 여하튼 범행성명을 남긴세키호타이가 그 범인이라면 이것은 언론에 대한 무자비한 테러 행위다. 더우기 아사히 신문에 대한 집요한 협박 내용을 보노라면 역시 우익 사상을 지닌 자의 범행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깊어진다

 언론은 표현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폭력으로 억압하려 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를 제압하는 것이고자유로운 시민사회를 기만하는 일이다.

 미국동시다발 테러 직후 미국에서는 애국심이란 글자가 유난히도 눈에 띄였다. 정부비판조차 용서할  없다는 태도로까지 이어져미국의 아프간 보복에 반대를 표명하는 사람들은‘비애국자 손가락질을 감당해야 했다이럴  언론이 보여줄  있는 역할은 분명한 것이다애국과 비애국의 선을 긋는 것은 보복에 반대하느냐, 보복에 찬성하느냐로 구분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김성일씨가 경영하는 찻집도루멘에는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 비틀즈의  레논흑인 지도자 마틴 루터 그리고 고지리 토모히로의 사진이 걸려있다.

 인권침해에 관심이 많았던 고지리 기자는 우익 사상의 총알 앞에서 목숨을 다해야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전설 속 영웅, 역도산의 죽음(196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