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정 Oct 15. 2016

도쿄망상

감기메모

이틀을 고열로 앓았다. 그리고 나흘을 장염으로 고생 중이다. 도쿄엔 국물을 파는집도 죽파는가게도 없다.


스물의 나에게 도쿄는 희망이었다. 혼자 술을 마시고 밥을 먹고 영화를 봐도 어색하지 않았다. 나는 활보했다. 혼자라 편했고 좋았다. 영화관에서 옆 친구 기분을 생각하지 않아도 됐고 레스토랑에서 역시나 일행의 입맛을 생각하지 않아도 좋았다. 내겐 그런 홀로인 일상이 익숙하면서 편했고 도쿄는 그런 나에게 그야말로 '딱'이었다.


마흔의 애 셋인 아줌마에게, 도쿄는 더이상 희망만으로 말할 수 없는 무언가다. 몸이 아픈데, 배달음식도 많지 않은데다 국물과 죽을 파는 곳이 없으니 더 서럽다. 고작 우동국물? 아니 소고기뼈가 들어간 진한 국물을 먹어야 살 것 같은데, 도쿄에서 아픈 사람이 먹기 위해 찾을 수 있는 곳이란 겨우 편의점 정도다. 도시락과 삼각김밥은 넘어가지도 않고 차가운 냉장 케이스 음식에도 손이 안 간다. 누가 끓이고 끓인 음식에 댓가를 지불하고 후루룩 하고 싶다.


곰탕. 그게 꿈이라면 톰양쿵이라도 마시고 싶다. 나는 이상하게 아플 때 중국이나 타이의 국물요리가 떠올라 군침을 삼킨다. 산라탕, 톰양쿵의 신맛과 매운맛이 조화된 시원스러운 느낌을 맛보고 싶다.


그러다가 문득 콩나물 김칫국이 생각난다. 김치야 일본 수퍼에서 사오면 그만이지만 강한 단맛에 익어있지도 않다. 콩나물은 또 누가 다듬나. 아 제발 댓가를 지불할테니 저 좀 살려주세요.


도쿄는 젊고 건강하고 돈 벌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인생을 즐기며 혼자 살기엔 최고의 도시다.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넘쳐나는 책과 영화와 공연을 만날 수 있다. 성적 호기심을 채우기에도 나쁘지 않다. 이곳은 마치 싱글들을 위한 성이다. 벌이가 적으면 적은대로 100엔숍과 편의점 도시락과 유니클로가 친구가 돼준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아이를 가지고 다시 보면 도쿄의 삭막함이 드러난다. 아플 때 댓가를 지불하고도 의지할 곳이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따끈한 국물 배달 같은 서비스는 인건비로 인해 영영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아프니까 서럽다.

매거진의 이전글 취재를 하며 언제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