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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Oct 16. 2016

애증의 시간

주부라는 삶, 엄마라는 삶, 나라는 삶

문득, 내 삶이 애처로운 순간이 있다. 엄마라는 역할도 주부라는 이름도 다 벗어던지고픈, 나의 하루가 너무나 서글프고 안쓰러운 그런 날이 있다. 바로 오늘처럼. 딱히 무슨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깔끔하게 청소를 했고, 할 일을 정리했다. 하늘은 맑았고, 가을향이 물씬했다. 그저 그런 평범한 일요일이었는데 저녁이 되니, 내가 너무나 한심해졌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야무지단 소리를 듣고 컸다. 실제로 그랬다. 어른들의 분위기에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대응했고, 성적은 무슨 과목이든 반에서 가장 좋았다. 중학교에서도 성적은 좋은 편이었고, 전국 등수에서도 100위권 이내에 정착해 있었다.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 편이었다. 초중고 딱히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다. 고교 시절 일본에 온 후에도 성적도 좋았고 나름 연극부 부장도 했고, 쉽게 일본의 6대 대학 중 하나에 들어갔으며, 대학에서도 연극 써클에 등록해 연극을 했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정말 단 한번도 문제를 일으켜 본 적이 없었고 비교적 순탄하게 살아왔다. 회사에 들어간 후에도 일을 빨리 잘하는 편이었고, 상사들과도 잘 지내는 편이었다.


그런데 마흔, 애 셋, 나의 과거의 영광(?)들은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는다. 나는 어딜 가든 이제 그냥 애 셋인 아줌마일 뿐이다. 내가 얼마나 성실한지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보다, 애가 셋인 여자를 사원으로 쓰면 얼마나 불편할지가 더 중요한 사안이다. 


지난 봄, 지인의 소개로 면접을 본 회사는 애가 셋이라고 말하자 "그럼 지금처럼 프리랜서로 사는 게 현실적이지 않냐?"고 물었다. 즉 면접에 떨어졌다는 얘기다. 그후에도 몇군데 면접을 봤는데, 아이가 있다,에서 아이가 셋이다로 넘어오는 순간쯤 면접관들의 얼굴에 이미 답이 쓰여있었다. 


지난 수요일 39도의 고열 하에 한 한국계열 회사의 면접을 봤다. 그들은 나의 이력을 반가워했다. 나는 한국과 일본의 신문, 티비, 잡지를 오가며 취재를 했고, 많은 인터뷰를 해왔으며 다양한 기획기사를 써왔고, 지금도 KBS 통신원으로 일하고 있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나는 내가 원하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그럭저럭 괜찮은 경력을 쌓아왔다. 하지만, 역시나 그 한국계열 회사는 나에게 아이가 셋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단축 근무는 허가할 수가 없다고 전했다.


내가 가진 능력, 경험. 그걸 펼칠 수 없는 순간이 있구나. 나는 두 사람 몫을 해낼 능력도 자신도 있다. 청소든 판매든 경리든 사무직이든 영업이든 임원이든 반짝반짝하게 잘 해놓을 자신이 있다. 그런데, 나는 애 셋이라 부리기 힘든, 때론 학력이 너무 높아 부담스러운, 마흔의 여자일 뿐이다. 그래서, 정말이지, 너무나 화가 나는데, 그 화를 어디 부딪히면 좋을지도 모르겠다. 


여자라서 차별을 받았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는데, 아이가 셋이 되니, 여간해선 써주는 곳도 없고, 이런 차별을 감수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여전히 내 안에선 용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내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믿어보겠다는 곳이 없다는 게, 가장 마음이 무겁다.


그런 현실에 한숨만 나오고, 그냥 내 자신이 너무나 한심해서 견딜 수 없다가도, 이런 사회 자체를 어떻게든 바꾸는 게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또는 해야할 일이 아닌가 싶어진다.


나에게는 글을 쓸 수 있는 최소한의 기술이 있고, 되도록이면 그걸 잘 사용하고 싶다.


너무나 우울한 저녁이었는데, 우울해하고 의기소침하고 끝내기엔, 내가 가진 게 너무 안타깝다. 어떻게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뭐라도 해야겠다 싶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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