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음과 따뜻함

- 성숙한 사람은 어떤 것을 선택하는가? -

by 레이트 블루머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멋져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멋지게 산다는 게 뭘까?’ 하고 잠시 생각한 적이 있다.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들어온 설교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게 말하는 듯했다.
“멋지게 나이 든 사람은 남의 실수를 모른 체 넘어가는 사람이다. 아량과 관용이 큰 사람이다.”
그 짧은 문장이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도 옳음에 집착하며 산다. 누가 틀렸는지, 어디서 실수했는지를 지적해야만 마음이 시원해진다. 동료의 말 한마디, 가족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곧바로 반응하며 ‘그건 아니지 않아?’라며 내 입장에서, 내 관점에서만 본다. 그것이 정의이자 책임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 순간, 관계는 조금씩 말라간다.
그 사이에는 틈이 생기고, 말 한마디가 벽이 된다. 공동체는 금이 간다. 나 역시 그런 교만함의 함정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불편해했고, 미숙한 행동을 보면 못 본 체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편견과 오만함의 잣대가 결국 나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한 미숙함이었다.


가정에서도, 조직에서도 아량이 없으면 평안은 없다. 자녀의 실수를 모른 체하고 오히려 덮어줄 수 있는 부모, 팀원의 부족함을 덮고 격려할 수 있는 리더. 그들이 바로 성숙한 사람이다. 아량이란 틀린 것을 옳다고 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이 관계가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마음의 깊이다.


세종대왕은 그런 마음을 가진 왕이었다. 세종실록에 있는 이야기이다. 장영실이 만든 왕의 가마가 부서졌을 때, 신하들은 그를 법대로 처벌하자고 했다. 왕의 안위를 해친 일, 명백한 중죄였다. 그러나 세종은 달랐다.

그는 법보다 사람을 먼저 보았다. 오랜 세월 함께해 온 장영실의 공로와 성실을 기억하며 형을 낮추고 관용을 베풀었다. 그의 결정은 단지 온정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였다. 그에게 관용은 정의의 포기가 아니라, 정의의 완성이었다.


세종은 감옥의 온도까지 걱정하던 왕이었다. “감옥은 사람을 징계하는 곳이지, 죽이는 곳이 아니다.”(세종실록, 1430년 4월 27일). “옥사가 매우 좁아서 동절기와 하절기에 병이 발생한다. 각 고을의 감옥에 남녀를 따로 수용하고, 죄의 경중에 따라 감방을 구별하라.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서늘하게 해서 흠휼지인(欽恤之仁)을 넓혀라.”(세종실록, 1432년 7월 11일). 그의 말에는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이런 마음이야말로 아량이며, 성숙함의 다른 이름이다. 살다 보면, 옳은 말을 해야 할 때도 있고, 싸워야 할 순간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옳음이 선은 아니다. 옳음이 관계를 무너뜨리고, 마음을 차갑게 만든다면 그건 이미 선이 아니다. 성숙한 인간은 옳음을 말하기 전에 따뜻함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그는 안다. 아량과 관용이야말로 세상을 부드럽게 돌리는 윤활유이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마지막 힘이라는 것을.



[위 제목의 사진은 pexels.com(작가 Pavan Prasad)에서 무료 다운로드 지원받은 사진입니다. 사진 제목은 '안개 낀 풍경 위로 솟아오르는 고요한 일출'로 따뜻함을 메시지로 전하는 작품입니다]

작가의 이전글정년을 넘어 피어나는 백일홍, 지속가능성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