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넘어 피어나는 백일홍, 지속가능성의 시대

일 선택의 새로운 기준, 지속가능성

by 레이트 블루머

일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미국 로욜라 대학교의 철학교수인 알 지니 Al Gini는 그의 'My Job, My Life'라는 책에서 그 제목과 같이 일과 사람을 동일시한다. "우리가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는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 규정된다"라고 그는 말한다. 또 다른 철학자 봅 블랙은 "당신은 당신이 하는 일로서 규정된다"라고 했다. 일은 우리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박사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대학교수들은 어떤 질문에 대해 직접적으로 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논의 중인 주제나 질문에 대하여 온갖 자료를 인용하고 문서자료를 첨부하려는 습성이 있어서다. 이는 직업적 특성이 개인의 특성에 그대로 반영되는 한 예이다. 이처럼 직업적 성향은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어떤 일을 선택하느냐는 단순한 생계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향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은 개인이 외부에 자신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명함이다. 그리고 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이다. 어떤 학자는 일은 그 사람의 자화상이라 했고, 또 어떤 이는 일은 그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라 했다.

일은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다. (사진 출처 Pexels.com)

학생들과 진로 멘토링을 하다 보면, 일의 '가치'에 대해 숙고할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눈앞의 취업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Hofstede의 문화 차원 이론에 의하면, 한국인은 세계 어느 국민 보다도 장기적 관점이 강하다.(Hofstede 장기 지향 관련 데이터 : 한국 100, 영국 51, 미국 26)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앞에서는 청년들이 일을 선택할 때, 그러한 장기적 가치를 고려하기 쉽지 않다.


기성세대가 일을 선택할 때 주로 고려한 요소는 '안정성'과 '성장성'이었다. 안정된 직장, 그리고 미래에도 성장하여 기회가 많은 일 자리를 선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1990년대 후반 IMF 체제 이후에는 직업적 안정성이 중시되었고, 2010년대 초반까지 공무원과 교사 등 직업안정성이 뛰어난 직업군의 인기가 치솟았다. 이후 2008년 금융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을 되찾은 이후에는 한동안 스타트업이 주목받기도 했다. 그때에는 '성장성'이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었다.


이제는 안정성과 성장성 이외에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기준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바로 지속가능성이다. 앞선 글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이제는 백세시대이다. 많은 이들이 60세 정년을 넘어 70대에도 일하고 싶어 한다. 실제로 건강나이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0년에 평균 66세였던 건강 나이가 2019년에는 73세로 높아졌고, 지금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렇게 70대에도 건강한데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정체성의 위기도 함께 온다. 그 결과 우울증과 대인기피증 등 다양한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일의 선택에 있어, 건강한 생애 주기 동안에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가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출처 : 중앙일보)

인기 TV 프로그램 '유퀴즈온더블록'에 1세대 조경가 정연선 님이 출연한 적이 있다. 그녀는 1960년대에 농학을 전공했다. 당시에는 먹고살기 위해 농대가 인기였고, 육묘와 종묘 같은 농업생산성을 높이는 분야에 관심이 높았다. 서양에서 들어온 조경에는 아무도 관심 두지 않던 시절이었다. 건축 분야에서도 조경은 항상 뒷전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조경을 한국 토양에 맞게 접목하려는 비전을 품고 꾸준히 그녀의 길을 걸었다. 대학원에서 조경학 학위를 받고 국가개기술사도 취득하며 연구와 실무를 병행하였다. 예술의 전당,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 선유도 공원, 에버랜드, 성수 디올 등 굵직하고 특별한 사업들이 그녀의 손을 거쳐갔다. 그녀는 누가 보아도 한국적 조경의 선구자이다. 세계 조경계의 최고 영예인 제프리 젤리코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80대를 훌쩍 넘긴 지금도 현역 조경 사업가로 일하고 있다. 조경을 넘어 국토 균형개발과 환경 보전 전문가이자 학자로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지속가능한 일'을 선택했다. 시대의 유행이나 타인과의 비교, 누군가의 강요에 따르지 않고 그녀만의 길을 걸었다. 우리의 사회가 조경에 관심을 가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녀는 마치 한여름 백일홍처럼 피어났다.


작가의 이전글백세 시대의 마라토너, 레이트 블루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