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홍을 닮은 레이트 블루머

"늦게 핀 꽃이 오래 가요..."

by 레이트 블루머

7월 한 여름. 온갖 봄 꽃들이 피었다 지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때. 그제야 꽃 피는 식물이 있다. 백일홍이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백일을 핀다고 해서 백일홍이란다. 화려한 벚꽃은 개화에서 낙화까지 길어야 2주라고 하는데 백일이라니. 놀랍도록 오래 핀다. 한 여름 녹색 들판. 낮은 키의 백일홍은 온 들판을 노랑, 빨강, 진분홍 원색으로 물들인다.


사람도 백일홍과 같은 사람이 있다. 남들보다 늦게 피지만 오래간다.


소리꾼 장사익 선생, '그랜마 모지스'로 알려진 화가 애나 메리 로버스트 모지스, 현대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폴 세잔, 맥도널드 프랜차이즈의 실질적 창업자 레이 크록 Ray Kroc,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극작가 버나드 쇼 Bernard Shaw.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한국 최고의 트롯가수 이미자와 공연하는 소리꾼 장사익

보험외판원, 인쇄소, 가구점 총무, 전자회사 종업원, 독서실 매니저, 카센터 직원 등 다양한 이력을 거친 가수 장사익 선생. 조선일보에 따르면, '찔레꽃', '꽃구경'으로 유명한 장사익 선생은 이미자와 콘서트를 하고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을 대표하여 애국가를 부른 가수이다. 70대 중반인 그는 45세에 어릴 때 꿈인 가수로 데뷔했다. 카센터에서 퇴직한 후에야 비로소 좋아하는 음악을 시작했다. 국악 관악기 중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태평소. 3년간 이불속에서 연습할 정도로 매진한 결과,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에서 태평소를 불었다. 그리고 이 태평소 연주가 연결의 마술로 그를 가수의 길로 이끌었다. 기자와 인터뷰에서 그는 말한다. "늦게 핀 꽃이 오래 가요... 3년만 최선을 다하면 못할 게 없어요"

그랜마 모지스의 작품. 봄과 겨울을 따뜻한 원색으로 표현하기를 즐긴다.


화가 '그랜마 모지스'. 그녀는 미국 포크 아트의 상징적 인물이다. 미국의 평범한 시골 주부로 있던 76세에 화가 활동을 시작하여 101세의 나이까지 1,600점 이상의 작품을 남겼다. 그녀는 간간이 그림을 그렸지만 노년에 수놓는 일 조차 할 수 어려워지자 소일거리로 소박한 시골 풍경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자서전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에서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될 줄 몰랐어요"라고 고백한다. 그림이 쌓이자 주변의 추천으로 잡화점에 작품을 전시하게 되었고, 우연히 뉴욕의 미술수집상의 눈에 띄면서 화가로 데뷔하였다. 93세에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였고, '미국인의 삶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맥도널드를 인수하여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로 키운 레이 크록. 그는 믹서기 판매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전에는 종이컵 판매상, 재즈연주가, 밴드 멤버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맥도널드 형제들로부터 한꺼번에 8대의 믹서기 주문을 받은 그는 호기심으로 매장을 방문한 후 30초 만에 음식이 나오는 효율적인 시스템과 최소한의 인력으로 운영되는 작업 라인에 감명받았다. 그리고 프랜차이즈점을 출점하고 이후에 사업권을 완전히 인수하였다. 이후에 부지를 매입한 후에 건물을 짓고 이를 프랜차이지에 임대하는 방식으로 맥도널드 비즈니스 모델의 기초를 만든 인물이다. 그때가 그의 나이 52세였다.

맥도널드 이미지.jpg


레이트 블루머들이 늦게 꽃피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널리스트이자 포브스 잡지 FOBES의 편집장인 리치 칼가아드 Rich Karlgaard는 그의 저서 '레이트 블루머 Late Bloomers'에서 그 답을 제시한다.


"레이트 블루머들은 지금과 같은 교육시스템에서는 노출되지 않거나, 노출되더라도 사람들의 관심 분야가 아닌 특성이나 능력을 가졌다". 이들은 기성세대가, 주류 사회가 주목하라고 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데 서툴다. 윈스톤 처칠도 아인슈타인도 이런 이유로 학창 시절에 형편없는 학생이었다. 레이트 블루머는 다른 사람들의 기준을 따르고 다른 사람들의 목표를 따르는데 서툴다. 아니 그런 것에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율성'이 강하다. 남이 정해주는 길을 가기를 주저한다. 자신의 만족감을 철저히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얼마 전에 비즈니스 네트워크 서비스 제공 기업인 리멤버 REMEMBER에 올라온 고민 글을 본 기억이 난다. 글을 올린 이는 어릴 적부터 만화가가 꿈이었다. 성인이 된 후, 어떻게든 먹고살아야 하겠기에 일단 취직하였다. 그렇게 한 것이 벌써 십수 년... 아직도 간간이 만화를 그린단다. 회사 일은 재미가 없다고 한다. 오히려 고역이란다. 그런데 매월 나오는 월급이 마약 같아서 다닌단다. 힘들게 말이다. 그래서 고민이란다. 어찌 보면 많은 이들이 겪는 흔한 고민이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석박사, 그리고 교수들의 커뮤니티 사이트인 '김박사넷'에 올라온 고민 글도 생각난다. 그 또는 그녀는 20대 중반에 교수를 꿈꾸며 석사까지 했지만 현실 때문에 취업했다. 10년이 지나고 30대 중반 나이에 그 꿈을 버리지 못하여 직장을 다니며 파트타임으로 박사 과정에 입학했다. 그런데 절대적인 학업 시간 부족으로 논문도 제대로 준비 못하고, 동료 석박사 과정생들로부터 무시당하기도 한단다. 고민 없이 남들처럼 그냥 직장 생활하면 대충 정년까지 갈 수 있는데, "왠 사서 고생이냐"라는 소리도 듣고 본인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고민이란다. 이 분의 박사과정 선택은 잘못된 것인가? 옳은 것인가?


100세 시대이다. 우리 교육 시스템은 60세 정년 시대에 맞춰진 고물 시스템이다.


20대 청년들은 이 고물 시스템 하에서 새로운 현실을 맞이하고 있다. 과거의 대학은 졸업 후 정년까지 약 30년을 먹고살기 위한 준비기관의 역할을 했다. 이 시대를 사는 청년들은 적어도 70세, 아니면 80세 까지는 일하는 시대를 살 것이다. 구닥다리 시스템이 제공하는 대학 4년 공부가 앞으로 50년 전후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가? '그렇지 않다'는 생각에 많이들 공감할 것이다. 70, 80세까지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찾거나 중간에 직업 전환 Job Transition- 유사한 일을 하면서 직장을 변경하는 이직과 다른 - 을 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50대는 어떠한가?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에서 일했어도 늦어도 60세 전후에는 더 이상 일하기 어렵다. 일부 창업자나 전문직을 제외하고는 퇴물취급을 받는다.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들은 몸도 건강하다. 헬스도 하고 몸도 열심히 만든다. 한국인의 건강 나이가 73세 라는데 마음 같아서는 한 20년은 더 일할 수 있을 거 같다. 변경된 UN 기준으로는 아직도 청년인데 말이다. 그런데 경력과 무관한 단순 직무 이외에는 더 이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준비하기에는 늦었다고 손 놓고 있거나 그냥 허송세월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 인생의 큰 선배이신 김형석 교수님이 어느 유튜브에서 말씀하신 삶의 지혜가 떠오른다. "나와 가까운 몇 친구들은 다시 출발해 가지고 제2의 인생이라고 할까요... 65세에 새로 시작하여 ---중략 -- 80세까지는 사회에서 일 좀 더 많이 하게 된 거 같아요"


저마다 자기만의 꽃을 피우고 싶어 한다. 그게 좋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피워내고 싶어 한다. 그게 좋다.

레이트 블루머는 그렇다.


늦여름. 늦게 핀 거 같지만 오래 피어나 짙은 초록의 대지 위에 유독 붉거나 샛노란 백일홍. 100세 시대를 사는 우리 인생도 그렇게 백일홍을 닮는 삶은 어떠할까?







작가의 이전글운이라는 우연, 그리고 레이트 블루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