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 레이트 블루머
사람은 새로운 사물이나 환경을 접하면 눈과 귀 등 감각 영역이 먼저 알아채고, 감정 영역이 작동한 후에 이성 영역이 작동한다. 감정이 이성 보다 먼저다. 최근의 연구들은 이런 과정을 증명한다. Joseph LeDoux의 연구에 따르면, 감각신호는 뇌의 중앙부에 위치한 시상으로 가고, 그다음 감성기억의 저장고인 편도체로 가며, 시상에서 나온 두 번째 신호가 생각하는 뇌인 신피질로 전달된다고 한다.
이성보다 먼저 작동하는 감정이 잘 다듬어지지 않으면, 불같은 감정은 이성이 제대로 판단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 순간만큼은 인간은 동물과 다름없다.
뇌신경학 연구에 따르면, 유전적 요인이 강한 IQ와 달리 EQ라고 하는 감성지능은 가정과 학교와 사회 활동을 통하여 계발 가능한 영역이다. 감성지능은 일반적으로 자기의 감정 상태를 인식하고, 스스로 자기감정을 조절하며,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하고 공감하는 사회적인 기술을 의미한다.
감정은 잘만 다듬어지면 보석처럼 달라진다. 친절한 사람, 인내할 줄 아는 사람, 폭풍 속에서도 평안한 사람, 화가 날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 넘어져도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나는 사람, 남이 잘할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 항상 밝은 사람들. 동물에게는 없는 사람만의 특성이다. 이들은 보석같이 다듬어진 사람들이다.
우리 주변을 보면 이러한 감성지능이 뛰어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국민 MC 유재석 님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방송계와 연예계를 아우르는 원탑이며, 가장 영향력 있는 방송인 중 한 명이다. 그는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1991년 만 열여덟 살에 데뷔하였으나, 동기인 김국진, 남희석, 박수홍 개그맨뿐만 아니라 후배인 지석진, 조혜련 개그맨들이 유명세를 타고 있을 때 그는 무명이었다. 한 번만 뜨게 해 달라고, 뜨면 겸손하겠다고 애타게 기도했다는 그의 인터뷰는 무명의 긴 세월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잘 표현한다. 그의 무명 기간은 약 10년이다. 그 무명기에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유재석 MC는 상대방의 감정을 민감하게 읽고, 긴장한 출연자들을 편하게 해준다고 한다. 공감능력과 배려가 뛰어나서 함께 방송한 사람들이 "정말 편했다"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후배나 제작진들을 존중하고 겸손을 잃지 않는다. 특히 본인의 무명시절이 길어서인지 소위 뜨지 못하는 후배들을 잘 챙기고 격려한다. 역지사지, 감정이입의 표본이다. 무명의 후배들에게는 차도 태워주고, 목욕탕에서 등도 밀어주고, 밥도 사주고, 심지어 용돈까지 준다고 한다. 무명의 후배들에게 그는 연민을 가지고 있나 보다. 그래서 그는 롱런하고 있다. 역대 최다 대상 수상자로 여전히 방송인 중 가장 영향력 있고 한국인이 좋아하는 연예인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유재석 MC의 사례는 레이트 블루머들이 좋은 감성지능을 지닐 때 얼마나 그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예이다. 물론, 그가 감성지능만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연습과 대화와 인터뷰 기술 등 방송 관련 핵심 역량이 뛰어나다. 그렇지만 최고의 자리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으뜸 비결은 그의 감성지능에 있다.
감성지능이 부족해도 성공할 수 있다. 우리는 주변에서 그런 사례들을 많이 봐왔다. "그 사람 일은 잘하는데 좀 그래..." 업무 역량이 뛰어난 CEO들 중에 생각보다 일찍 그만두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감성지능의 대가로 일컫는 다니엘 골만의 EQ 감성지능 Emotional Intelligence이라는 책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CEO들은 뛰어난 지성과 전문 경영 능력으로 고용되지만, 감성지능의 부족으로 해고된다."
레이트 블루머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그들을 보면 진짜 성공은, 진정한 성장은 깊은 뿌리에서 시작된다. 그 뿌리는 바로 '감성지능'이다. 뿌리가 튼튼해야 폭풍우 속에서도 나무는 견디고 거목으로 자란다.
나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여러 갈래로 특히 태양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잘 자란 가지들과 풍성한 잎사귀가 필요하다.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는 좋은 성적과 실적, 자격증, 특별한 재능 등이 필요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우리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이 뿌리이다. 뿌리는 땅 속 깊이 뿌리 내려서 필요한 양분과 수분을 끊임없이 줄기와 가지와 잎사귀에 공급한다. 그리고 나무 전체를 지탱한다. 물론, 튼튼한 줄기와 풍성한 잎 없이 나무는 뿌리만으로 성장할 수는 없다. 사람도 여러 가지 재능과 역량과 노력 없이 감성지능만으로 성공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뿌리 없이 쌓아놓은 많은 성공은 비바람과 거친 환경에 쉽게 부러진다.
'나의 감성지능은 얼마나 잘 뿌리내리고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볼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