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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21]우리.. 한국에 돌아갈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없어진 항공편... 귀국을 위해 부딪쳐보자~!!

by 돌바람

결전!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

11시 55분 출발 예정이던 원래의 우리 비행기(ET873편, 홍콩 행)를 훨씬 더 늦은 시간 비행기로 항공사 마음대로 바꿔버린 상태에서 홍콩발 인천행 환승 비행기까지 못 타게 되어 귀국길에 차질이 생긴 우리의 상황을 공항 발권데스크에 결전의 자세로 항의하며 대안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한 뒤 우리 일행은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을 지속하고 있었다.([아프리카#20] 편 참고)

탑승수속 카운터에서 1차로 결전을 치르고, 직원의 안내에 따라 수속 카운터 맞은편의 작은 사무실에서 2차 결전도 치렀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니 또다른 항공사 직원이 우리를 찾아왔다. 자신들이 우리를 어떻게든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알아보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한다. 슬슬 기다림과 초조함에 지쳐가는 우리에게 초조함을 그나마 지워줄 수 있는 말이었다. 어차피 기다림은 여기서 이미 어느 정도는 익숙해져 있었다.

시간은 원래 비행기편이었다면 탑승수속을 할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몇 시간을 계속 서 있어서 이곳저곳이 쑤셔오기 시작했다. 여행 내내 걷고 기다리고 할 때보다 바로 이 순간이 가장 힘든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이곳은 공항 1층, 도착장이자 탑승수속을 하는 곳이라 의자가 거의 없었다. 공항에 깔린 그 수많은 의자들은 수속 후 보안검색까지 다 통과한 후에 탑승 게이트 앞에 가서야 펼쳐진다. 짐을 담은 트렁크가 의자가 되기 시작했고 거기에 걸터앉아 다리를 조금씩 쉬었고 괜히 공항 안을 이리저리 걸어보기도 했다.

자꾸 원래대로였다면... 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긴 기다림의 시간이 주는 상상이었다. 원래대로였다면 조금 뒤 우리는 탑승수속을 마치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한 뒤 2020년 2월 7일이 채 끝나기 전에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 땅을 떠날 것이고, 기내식도 잊을 만큼의 노곤한 잠과 함께 꽤 긴 시간의 비행을 하고 나면 2월 8일 오후 3시쯤 홍콩에 도착할 것이고, 직접 환승이라 짐을 모두 다 찾고 다시 탑승수속을 하여 대한항공 비행기로 갈아타면 그 비행기가 오후 6시 10분에 날아올라 인천으로 향할 것이며... 드디어 밤 10시 45분이면 이번 여행의 마침표를 찍으며 인천공항에 비행기가 내려앉을 텐데...

조금 전에 왔던 직원 덕분에 초조함은 조금 사라졌지만 아쉬움과 함께 피로가 급격히 몰려들고 있었고 꿈을 꾸듯 원래의 일정을 되뇌어 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직원이 다시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 앞에 놓인 두 가지 선택지

그리고 그 직원은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내밀었다. 공항에 도착한 지 두세 시간 만이었다. 하나는 이날 새벽 비행기로 동남아 쪽을 경유하여 인천으로 가는 일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다음 날(2020년 2월 8일) 밤 인천공항으로 직항 편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우리 일행들은 긴급 토론에 들어갔다. 첫 번째 제안에서 걸리는 점은 역시 코로나19였다. 지금 우리가 처한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코로나19로 인해 벌어진 일인데 홍콩이 아닌 다른 곳을 경유한다고 해서 과연 괜찮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경유해서 가는 것이 직항으로 가는 것과 도착 시간이 그리 차이가 많이 나지도 않았다. 두 번째 선택지의 문제점은 에티오피아에서 하루를 더 묵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가 예약한 모든 일정은 끝났고 당장 이 밤에 어느 호텔에서 1박을 더 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항공사 직원이 1일 더 체류해야 하는 것과 관련한 숙식은 해결해줄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길지 않은 시간 만에 결론을 냈다. 에티오피아에서 하루 더 기다렸다가 인천으로 직접 날아가는 방법이었다. 우리의 결정을 직원에게 얘기하자 직원은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얼마 뒤 바우처를 들고 나타났다.

에티오피아 항공사에서 제공한 바우처. 호텔과 항공편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바우처를 받아 살펴보니 내일 인천으로 갈 항공편과 오늘 묵을 호텔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한 시름 놓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드디어 귀국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완전한 안심은 들지 않았다. 이미 한 번 당한(?) 전례가 있는지라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는 안심하긴 일렀다. 그래도 어찌어찌 결국 해결을 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공항에서 결전을 치르며 기다림의 시간을 견딘 지 4시간 가까이 지난 시간. 우리는 항공사 직원이 안내하는 대로 다시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했다. 짐을 모두 끌고 내린 지 얼마 안 된 셔틀버스 탑승장으로 다시 이동하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럴 거면 어제 티켓오피스에서 이렇게 해주지 하는 약간의 짜증과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피곤한 얼굴 속에서도 약간의 안도감이 번져 나갔고, 이제 한국으로 되돌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그동안의 긴장과 원망, 초조함이 가라앉으며 약간의 푸념 같은 것이 새어 나왔다.

얼마 뒤 작은 승합차가 도착해서 우리를 찾았다. 어제까지 묵었다. Ethiopian Skylight Hotel의 미니버스보다 훨씬 작은 승합차였다. 짐도 싣고 지친 우리의 몸도 실었다. 승합차는 출발했다. 공항 입구를 나가자마자 우리 묵었던 호텔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방향을 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가로등의 듬성듬성 있어 거리는 훨씬 어두웠고 어딘가 으슥한 곳으로 가는 느낌이 들어 영 별로였다. 그 와중에도 승합차 기사는 운행 중간에 차를 세워서 허름한 가게에 들러 무언가를 사서 돌아오는 등 여유를 부렸다. 그렇게 가로등도 시원찮은 어두운 길을 달려 호텔에 도착했다.


예정에 없었던 호텔 1박

"DebreDamo Hotel" 우리가 묵을 호텔의 이름이었다. 어둠 속을 달려온지라 외관은 보지 못했으나 로비에서부터 약간의 실망감이 들었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것이 도착하자마자 어제까지 묵었던 최고급 호텔과 확 비교가 되고 말았다. 나름 여기도 괜찮은 곳일 텐데 내부 시설부터 비교가 되며 실망감이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승합차 기사도 묻더니 로비 직원도 우리 보고 중국인이냐고 자꾸 물어 왔다. 외국에 나가면 툭하면 묻는 일이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를 묻는 것인데... 그래서 별로 새롭지도 않은 질문인데 유독 오늘은 중국인이냐를 묻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유? 당연하다. 코로나19의 확산 때문이다. 그래서 묻는 것이었다. 우리는 살짝 짜증 섞인 목소리로 "한국인이다! 우리는 Clean하다."라고 대답했다. 로비 직원은 머쓱한 듯 웃으며 그제야 안심하는 듯했다.

바우처를 내밀었더니 우리 일행이 10명인데도 방을 아주 넉넉하게 배정해 주었다. 그래서 일부는 혼자 독방을 쓰기도 했다(나도 독방을 썼다). 곧바로 다들 배정된 방으로 올라갔다. 방은 몇 개 층에 마구 흩어져 있어 우리 일행을 방을 찾아가기도 힘들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복도에서 오가는 현지인으로 보이는 몇몇 청년들이 하도 유심히 우리를 쳐다보는 바람에 살짝 긴장하기도 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요 며칠 벌어진 안 좋았던 경험들 때문인지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방 상태는 당연히 Ethiopian Skylight Hotel에 훨씬 못 미쳤다. 짐을 대충 풀었다. 딱 필요한 것만 꺼내도 나머지는 그대로였다. 어차피 내일 또 떠날 테니... 대충 씻고 갑작스레 찾아온 노곤함인지 아니면 긴장이 풀리며 뒤늦게 찾아온 피로인지 모르겠지만 바로 잠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 떠 있어야 할 시간에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라는 도시의 한 호텔에서 잠이 들고 있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다음 날, 2020년 2월 8일. 아침에 눈을 떴으나 여전히 아프리카 땅이다. 우리가 있는 곳은 DebreDamo Hotel이다. 여행의 설렘이 사라진 상태에서 맞이하는 여행지의 아침은 무언가 어색했다. 그렇다고 비즈니스를 위해 찾은 것도 아니고, 그저 귀국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여행자들의 무력함 같은 것이 아침을 그다지 상쾌하게 맞이하지 못하게 했다. 어제 받은 바우처에는 이날의 아침과 점심, 심지어 저녁식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2층에 있는 작은 뷔페식당에서도 간단히 조식을 먹었다. 이젠 어제까지의 호텔과 비교하기도 지쳤다. 그냥 먹었다.

조식을 먹고 방으로 올라가 호텔 주변을 둘러봤다. 호텔 정면 쪽으로는 넓은 도로에 자동차들이 아침을 분주히 시작하고 있었고 도로 중앙으로는 트램들이 오가고 있어 도시의 활력이 느껴지는 반면, 호텔 뒤편으로는 나무들 사이로 낮은 집들과 양철 지붕을 덧댄 허름한 모습들이 보였다.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싶었다. 이제야 도시 개발이 시작된 듯이 신작로 바로 옆으로는 새롭게 도시 건설이 되는 반면 그 뒤로는 예전의 모습이 여전한 채로 남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호텔 정면 쪽에도 새 건물들 사이로 낡고 허름한 예전 모습들이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었다.

DebreDamo Hotel의 전경(위). 호텔 정면 쪽과 후면 쪽에서 바라본 도시의 풍경이 이리도 다를까(아래)

1층 로비 앞에 있는 카페로 일행들이 슬슬 모여들었다. 아무런 계획 없이 추가된 하루. 당연히 정해진 일정이 없으니 무엇을 해야 하나 하고 막막했다. 사실 대부분의 일행은 무엇을 꼭 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앞서 말한 그 무력감이 나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닌 듯싶었다. 그저 우리 일행들과 담소나 나누며 낮 시간을 그럭저럭 보내볼까 하는 심산들이었다.

그런데! 유리창을 통해 바깥을 살펴보던 직진님이 한 번 나가서 시내 구경을 해보자고 제안을 했다. 동네를 한 번 둘러보면서 현지인들을 만나보고 싶어 한 것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행들은 흔쾌히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괜히 돌아다니다가 소매치기 만나면 어떡하냐며 말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결국 직진님은 선비님과 함께 길을 나섰다. 나머지 일행들은 1층 카페에서 노닐거나 숙소 방에서 쉬기로 했다.

호텔 맞은편에 있는 작은 가게들. 아마도 직진님은 이런 곳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나 보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직진님과 선비님은 무사히(?)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어제와 그제의 사건(?)들 탓에 우리가 너무 주눅 들어 있었던 것 같다면서 몇 가지 사진을 보여주며 짧은 동네 투어를 신나게 설명해 주었다. 근처 동네에는 꽤 오래 운영해온 듯한 가게들이 있었고 그중 우리의 시골 가게 같은 곳으로 갔다고 했다. 그곳에서는 앉아서 간단하게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있었고 거기서 맥주를 시켜서 마셨다고 했다. 그런데 전통방식의 커피를 만드는 것을 보고 커피도 한 잔씩 주문해서 마셨다고 했다. 커피의 맛은 그젯밤 Ethiopian Skylight Hotel에서 마신 것과 비슷했지만 커피값이 엄청나게 저렴했다고 했다. 아무래도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였기 때문에 이것이 현지 물가가 아닌가 싶었다.

작은 가게에서 주인아주머니가 내려준 전통 커피와 시원한 맥주를 마신 직진님과 선비님.

그렇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커피와 맥주의 조합을 마신 뒤 두 사람은 또 거리로 나섰고 얼마 뒤 꽃가게(?)를 발견했다고 했다. 한 청년이 운영하고 있는 가게인데 그곳에서 꽃 몇 송이를 사 왔다. 우리 전체 일행 중 세 명의 여성분들을 위한 선물이었다.

청년이 운영하는 꽃가게

그 선물에 호텔에서 기다리던 우리 일행들은 오랜만에 즐겁고 환한 표정으로 화답했다. 특히 유쾌님은 그 장미꽃을 입에 물어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남자인 반전님이 귀에 꽂아 나름 섹시(?)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깔깔깔 웃기도 하면서 어제저녁 이후 사라졌던 우리 일행들의 텐션이 한껏 살아났다. 무료하게 지나가던 낮 시간에 잠깐의 즐거움을 꽃 몇 송이가 우리에게 선물한 셈이었다.

장미꽃 선물이 가져다준 소소한 즐거움

가보자! 한국으로~

그래도 시간은 참 더디게 흘렀다. 호텔방에서 하루 종일 지내는 것도 지겨운 일이었다. 1층 로비 앞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창밖을 내다보며 멍~하니 바깥 구경을 하는 시간만 지루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꽤 많은 자동차들이 제법 속도를 내며 지나가고 있었고 이따금 철로 위를 달리는 트램들이 부지런히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그 건너편에 있는 자그마한 가게들은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 그런지 분주한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지루한 기다림이 창밖의 세계에까지 전염이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1층 카페에서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어제 항공사 직원이 쥐어준 바우쳐에는 오늘 밤 10시 35분에 인천으로 출발하는 비행기라고 쓰여 있었고, 오늘 아침부터 점심, 저녁 식사까지 모두 호텔에서 제공된다는 얘기가 쓰여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기다림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변변치 않은 호텔 조식과 중식까지 먹고 나서도 딱히 할 일은 없었고 일부 일행들의 바깥나들이도 잠깐에 그쳤다. 늦은 오후가 되어가면서 서서히 다들 호텔 방을 정리하고 짐을 다 싸기 시작했고 저녁 시간이 되기도 전에 모두 짐을 끌고 1층 로비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호텔 측에 "우리 이제 공항으로 가겠다."라고 선언했다. 아직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기에도 이른 시간이었다.

이른 시간에 짐을 모두 챙겨 1층 로비에 모였다.

호텔 직원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다소 당황한 표정들이었다. "왜 이리 일찍 가려고 하느냐?", "너희들은 여기서 저녁까지 먹을 수 있다.", "지금 공항에 가봐야 너무 오래 기다리게 된다." 이런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호텔에서의 여유로운 오후 휴식도 공짜로 먹여주는 저녁 식사도 아닌, 귀국하는 비행기에 앉아 하늘을 나는 안도감이었다. 호텔 직원들의 그런 말들이 우리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결국 호텔 직원들은 우리들의 완강한 태도에 공항으로 가는 셔틀 차량은 준비시킬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저녁 식사시간이 채 되기 전에 아디스아바바 국제공항을 하루 만에 다시 찾아갔다.

해가 아직 많이 남아있는 오후 시간임에도 공항은 오히려 이상하리만큼 한산했다. 티켓팅과 탑승 수속을 빠르게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손에 그리도 쥐고 싶었던 귀국 항공편의 티켓을 얻어낼 수 있었다. 실물로 만나는 그 티켓만으로도 얼굴에 잃어버렸던 미소가 싸악 되돌아오는 느낌이었다. "ET672 22:35 인천행 직항", 탑승 시각은 21시 50분, 출발 시각은 22시 35분! 출발까지 아직 4시간도 더 남았지만 그 정도 시간이야 공항에서 얼마든지 보낼 수 있었다. 사실 에티오피아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부터 항공편 때문에 여러 일정이 꼬였고 귀국 문제 탓에 편하게 여행을 즐기지도 못했다. 다른 나라들에서 만든 여러 여행 에피소드에 비하면 에티오피아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을 정도이다. 귀국 항공편에 대한 걱정 때문에 에티오피아에서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조차 아련할 뿐이다.

어렵게 얻은 인천행 귀국 비행기의 티켓. 이것 때문에 에티오피아 여행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티켓을 받아 들고 수하물을 부치고 검색대를 통과하여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티켓팅을 할 때부터 느꼈지만 출국장의 풍경은 그때보다도 더 고요해서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오가는 사람은 공항 직원들 몇 명이었고 여행객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프리카 최대의 공항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심지어 면세점마저도 문을 닫은 곳이 훨씬 많았다.

이른 저녁(전광판 시계가 오후 5시 53분을 가리키고 있다) 공항 내부는 오히려 을씨년스러울 정도였다.

우리는 적당한 곳에 진을 치고(?) 각자 몇 명씩 무리를 지어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왜 이렇게 일찍 문을 닫았나 싶었던 공항 면세점들은 시간이 지나 저녁을 거쳐 밤으로 가면서 오히려 뒤늦게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이 공항은 밤에, 새벽에 다니는 비행기가 많은지 공항 내부는 밤의 도시처럼 어두워져야 일을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상식을 벗어나는 것은 공항 면세점의 상품 가격들이(특히 이곳 에티오피아의 대표 특산물들) 시내의 슈퍼마켓이나 시장보다 비싸다는 것이었다. 앞선 편에서도 언급했지만 동네 대형슈퍼에서 5,000원 정도 주고 샀던 커피 500g 한 봉지가 거의 30,000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해가 남아있는 시간, 아직은 한산한 아디스아바바 공항의 면세점.

적당히 아이쇼핑(?, 사실 별로 산 것도 없었지만)을 마치고 난 우리는 뒤늦게 배가 고파옴을 느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저녁을 마다하고 왔는데 결국 배꼽시계의 알람을 견뎌낼 수는 없었다. 출국장 내에 몇 개 식당은 있었지만 가성비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우리에게 남은 공용 비용이 얼마 없어 매점에서 이것저것을 사서 저녁 겸 마지막 파티(?)를 공항 출국장에서 했다. 파티라고 하기에는 메뉴가 너무 초라했지만 가방에 남아있던 약간의 먹을거리들까지 다 꺼내어서 먹고 마시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이 붐볐다면 시작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그러나 이 파티를 마무리할 쯤에는 점점 눈에 띄게 사람이 많아지고 있었다.

아디스아바바에서의 마지막 만찬. 만찬이라 하기엔 너무 초라한 메뉴들이었지만...

아디스아바바 공항은 밤이 되자 오후와는 전혀 딴판인 공간으로 변모했다. 의자 대부분이 비어 있던 출국장 대합실은 앉은 의자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붐비기 시작했고 늦은 시간이 될수록 인구밀도가 점점 높아졌다. 공항다운 북적거림이 느껴질 만했다. 그런 북적거림은 다시 한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니, 오히려 이 공항에서 잘 느끼지 못했던 여행의 마무리에 대한 아쉬움을 느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하다. 2주 가까운 시간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대륙 아프리카에서 보내면서 신나고, 즐겁고, 행복했고, 때로는 아찔했던 기억들이 스멀스멀 다시 떠오르면서 이 여행이 이제 정말 끝나는구나 하는 아쉬움이 점점 진하게 다가왔다. 텅 비었던 공항이 채워진 것처럼 휑하니 비었던 마음이 안도감으로 채워지면서 그와 함께 여행이 남기는 아쉬움까지 가득 차오르는 듯했다.

단 몇 시간만에 공항은 사람들로 채워져갔다. 아쉬움의 마음도 함께~

그리고 에티오피아 현지 시간 2020년 2월 8일 밤 10시 35분. 인천행 비행기는 아프리카 땅에서 이륙했다.





☆에필로그

"자유를 찾아 떠나는 아프리카 자유여행"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우리의 여행은 2020년 초에 시작되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가 유행되기 시작하는 시점에 우리의 아프리카 자유여행이 진행되었고, 지난 3년간 코로나19가 온 세상을 휩쓸면서 국경 폐쇄는 물론이고 도시 봉쇄, 자가 격리 등등 우리의 삶은 다른 세계와 단절된 채로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그 사이 팬데믹은 사람들의 삶과 의식을 많이 바꾸어 놓았고 이제 서서히 그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프리카 여행에 대한 기억도 숙성이 되어 갔고, 여행하는 동안 남겨두었던 간단한 메모와 사진들로 그때의 기억을 다시 꺼내어 추억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이 글도 마무리가 되고 있다. 여행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오히려 더욱 샘솟았던 지난 3년, 우리가 다녀온 그 나라, 그 지역에 대한 관심은 코로나19 확산이라는 뉴스를 통해 간간이 들려왔고 그 탓에 가볼 수 없는 머나먼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은 애틋함과 마음 아픔으로 남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아프리카는 저 먼 곳 어디엔가 분명히 실재하지만 마치 신기루처럼 존재하지 않고 내 주변 어딘가를 떠도는 아련한 환영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았다. 다시 찾아가고 싶은 욕구가 그 어떤 다른 나라의 여행 때보다 간절했지만 코로나19 탓에 오히려 더 못 간다는 구속 같은 제약을 느끼게 되면서 손에 잡히지 않는 그리움 같은 것으로 남게 된 것이다. 지난 만 3년 사이 코로나19는 엄청난 위세를 떨쳐 보이고 서서히 그 힘을 잃어가고 있고, 그동안 묵혀두었던 신기루 같은 아프리카 이야기를 글로 차분히 써내면서 다시 아프리카는 실존하는 그곳으로 서서히 살아 돌아왔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꼭 가보고 싶은, 이제는 손에 잡힐 것 같은 그런 아프리카가 되었다.




여행은 일탈이다. 어느덧 익숙해져 버린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벗어사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 낯선 곳에서 조금 낯선 사람들 속에 나 자신을 던져 넣는 것이다. 그 여행이 자유여행이라면 더욱 그렇다. 더듬거리는 현지 언어로 길을 묻고 차를 타고 물건을 사며 대화를 한다. 새로이 만난 공간과 사람들 속에서 완벽한 타인이 되어 그 문화와 사회 속에서 잠시동안 숨을 쉬며 살아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일탈 전의 내 모습과 비교되면서 나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그것이 여행이 갖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여 나의 내적 에너지를 채우고, 일탈이 주는 짜릿한 즐거움으로 텐션을 올리고, 원래의 공간과 사람 속에서 발견되는 나와 다른 면에 대해 너그러워지게 된다. 그래서 결국은 내 자리로 다시 되돌아왔을 때 이전과는 다른 나로 조금씩 숨통을 틔며 새로운 에너지로 살아가질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이 갖는 매력이다. 일탈의 끝은 되돌아옴이다. 일탈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은 떠나기 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다.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새로움을 마음속에 지니고 온, 그래서 조금 더 자란 마음을 가진 새로운 사람이다.

2020년 초 아프리카 여행은 나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되어 마음껏 자유를 느끼며 일탈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쿠바 여행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휴대폰이 잘 안 터지고 한국과의 소통이 멀어지면 아이러니하게도 자유지수 행복지수가 올라가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자유여행이었던 만큼 짜릿함을 넘어 아찔하고 위험한 순간들도 있었다. 자동차 광고의 한 장면처럼 사막을 질주하는 운전, 희망봉에서 교통이 끊겨 미아가 될 뻔한 상황, 검문소에서 경찰에게 잡혀 범칙금을 낼 뻔했던 상황, 에티오피아에서 당한 소매치기, 코로나19로 비행 편이 바뀌어 귀국하지 못할 뻔한 사태 등 되돌아보면 어쩜 저렇게 무모할 정도로 여행을 다닐 수 있었을까 싶은 상황들이 있었다.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했던 것은 우리 10명의 일행들 덕분이다. 혼자서는, 혹은 두세 명이라고 해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들을 10명이라는 가까운 사람들이 있어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함께 해준 우리 일행들에게 한없는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최고의 사람들이 있었기에 최고의 여행이 만들어졌다.




여행을 떠나기 전 "자유를 찾아 떠나는 아프리카 자유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사전자료집을 만들며 이런 결심을 했었다. 인터넷에서 구한 사막 능선을 오르는 사진을 자료집 표지 사진으로 쓰면서 "여행 후에는 꼭 우리들의 사진으로 이 표지 사진을 바꾸리라!"라는 결심! 이제는 그 결심을 현실로 만들어 내었음에 감사하며 "자유를 찾아 떠났던 아프리카 자유여행"에 대한 글을 마무리한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제공해주신 도사님, 직진님, 작가님, 감독님께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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