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프리카#19]아디스아바바 시내투어#1

최초의 인류 Lucy, 그리고 한국전 참전용사를 찾아~

by 돌바람

출발까지 이렇게 오래 걸려서야...

2020년 2월 7일. 아프리카 여행의 마지막 날이지만 무언가 결연한 의지들을 품고 일행들이 아침을 시작했다. 어제 엄청난 사태(?)를 겪고 난 이후라 그 일들에 대한 수습으로 아침이 시작되었다. 반전님은 어젯밤에 휴대폰을 소매치기당한 일로 아침 일찍 인근 경찰서를 다녀왔다. 하지만 거기서는 생각만큼 큰 소득을 얻지 못했다고 했다. 경찰들이 상당히 비협조적이었다는 것이었다. 어젯밤에 벌어진 사건이라 시간도 좀 지났고, 증인이나 증거도 없어 조사를 해줄 수 없다는 식이었다고 했다. 여행자 보험을 위한 확인서도 제대로 해줄 수 없다는 얘기만 반복했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호텔로 복귀한 반전님과 유쾌님은 같이 갔다 온 택시 기사와 호텔 직원에게 오늘 경찰서에서 있었던 일들과 어젯밤 호텔과 호텔 앞 거리에서 있었던 일들을 상세하게 적어 확인서를 받았다.(다행히도 귀국 후 휴대폰 보험과 여행자 보험을 통해 보상을 받기는 했다고 한다.)

택시기사(맨 왼쪽)와 호텔 직원(중앙)이 확인서를 써주었다.

그 사이 총무님은 호텔을 통해 미리 예약해둔 아디스아바바 시내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할 승합차와 가이드들을 확인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도 모두 조식을 마치고 여행할 준비까지 다 하고 트렁크를 호텔에 맡기고.... 그리고 그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약속된 시간이 다 되어가도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중간에 두어 번 호텔 측에 언제 오냐고 물었지만 그들의 대답은 통화해보니 오고 있단다, 시내 교통이 막혀서 조금 늦는데 거의 다 왔다고 한다, 뭐 이런 식의 변명만 늘어놓고 있었다. 약속 시간을 지나 한 시간이 넘어가고 있는데도 도착하지 않았다. 느긋한 호텔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오늘 아프리카연합 정상회의가 이 호텔에서 있어서 주변 보안 검색이 강화되어 더 늦는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우리만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며 지쳐갈 뿐 오히려 그들은 너무도 느긋한 모습을 보였다.

기다림에 지쳐 쓰러지고 있었다...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라...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부쩍 강화된 검문검색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아프리카 55개국이 가입한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가 9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아디스아바바에서 개최된다고 했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도 이번 회의에 참석한다고 했다. 아프리카의 해로 불리는 1960년도에 17개국이 식민 상태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했고 그 이후에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 국가를 건설했으며, 2020년이 60주년이 되는 해가 되었다고도 했다. 아프리카연합은 아디스아바바에 본부를 두고 있어 이 도시에서 이번 회의도 열리는 것이었고, 그 정상들의 회의 장소 및 숙소로 쓰이는 곳이 바로 우리가 묵는 호텔이었던 것이다.

예약한 시내 투어팀은 함흥차사였고 일행 몇 명과 호텔 출입문 밖을 나가보았다. 검문검색대 옆으로 여러 아프리카 국기들이 줄지어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가장 왼쪽에는 아프리카연합 깃발도 보였다. 기다리기가 무료했던 우리는 마치 아프리카 정상이라도 된 듯 코스프레(?)를 하며 사진을 찍었다.

아프리카연합(AU)의 깃발을 펼쳐보았다. 이 호텔에서 그 행사가 열릴 줄이야...
마치 주최국이 해외 정상을 맞이하는 것처럼 공식 행사 사진(?)을 찍어보았다.


무언가 불안한 가이드 청년들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이상 훌쩍 넘겨서야 시내 투어 가이드 청년들이 나타났다. 호텔 직원들과 꽤 아는 듯한 모습이었다. 시간이 꽤 지체된 탓에 부랴부랴 승합차에 올라탔고 출발 전에 대략의 코스를 일러주었다. 그 정도야 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유쾌하게 오케이를 하고 출발했다.

먼저 가려고 한 곳은 호텔에서 가까운 모예 커피 로스팅(moyee Coffee Roasting PLC)이었다. 작은 로스팅 공장으로 커피 원두가 좋아 공장 투어를 하는 단체가 간혹 있다고 한 그곳이다. 어제 근처 슈퍼마켓에서 산 커피를 한화 2500~3000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어 선물용으로도 많이 사 볼 심산이었다. 당연히 거기서 커피 맛도 좀 보고 말이다. 그런데 가이드 청년들이 고개를 갸웃갸웃거리더니 잘 모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름을 정확하게 얘기하고 그것도 모자라 활자로 된 상호명을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오케이하고 출발했다.

그리고 나서 약 10여 분 후.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했다며 손가락으로 위치를 가리켰다. 그런데 그들은 모예 커피 로스팅 공장이 아니라 토모카 카페를 가리키고 있었다. "Noooo~! 여기가 아니다. 우리가 말한 곳은 모예 커피이다."라고 했더니 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녀석들은 관광객들이 커피를 마시러 많이 가는 곳으로 그냥 대충 여기겠거니 하고 온 듯했다. 우리는 어제 이미 호텔 근처의 괜찮은 카페에서 토모카 커피에 견줄 만한(물론 토모카 커피를 마셔본 것은 아니다) 훌륭한 커피를 맛보았다. "여기가 아니다. 모예로 가자~" 그랬더니 이제서야 잘 모르겠다고 한다. 이런...ㅠㅠ 일행들과 어찌할까 얘기하다가 어제 커피도 이미 마셨겠다, 오늘 일정도 많기도 하겠다 해서 그냥 이곳은 패스하고 다음 목적지로 가기로 했다. 이때부터 이 가이드 청년 셋은 뭔가가 자꾸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원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토모카 카페 앞까지 갔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에티오피아 국립 박물관으로 가기로 했다. 가이드 청년들은 또 문제없다며 승합차를 출발시켰다. 에티오피아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의 시내 거리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도심 중심부는 새로 지은 건물들과 잘 정비된 도로와 공원들이 있어 깔끔한 모습을 보였고 중심부에서 조금 벗어나면 허름한 건물들과 천막들이 즐비한 거리가 나타나기도 했다. 같은 도시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가 조금은 어려운 듯한 풍경이었다.

IMG_3749.JPG
IMG_3755.JPG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상반된 거리 모습

특히 거리에서 눈에 띈 것은 군인들의 모습이었다. 생각보다 군인들의 모습이 자주 보였다.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무리들도 있었지만 군용차 뒷부분 짐칸에 총을 들고 탄 군인들의 모습도 자주 보였다. 원래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아프리카연합 정상회의 때문에 경비가 강화된 탓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을 다닐 때와는 확연히 군인들의 수가 많기는 했다.

20200207_124014.jpg
20200207_131052.jpg
거리에서 종종 발견되는 에티오피아의 군인들.


루시(Lucy)를 만나다~!

시내를 통과하며 약 20여분을 달리자 에티오피아 국립 박물관(National Museum of Ethiopia) 입구가 나타났다.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유일한 국립박물관으로 최초의 인류 루시(Lucy)와 화석이 보존돼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 명성에 비하면 입구와 그곳에서 서있는 표지판은 소탈함을 넘어 다소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소박하고 오래되어 보이는 간판이 이곳이 에티오피아 국립박물관임을 알려주고 있다.

주차장에서 내려 가이드 청년들을 따라 건물 입구로 다가가는데 박물관 앞마당에 있는 정원이 눈길을 끌었다. 척박한 곳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 전쟁을 하며 살아온 이 나라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듯한 동상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보통 그 나라의 국립박물관이라고 하면 역사와 국가를 상징하는 인물의 동상이 크게 자리 잡는 경우가 많은데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과장 없이 사람의 형상 크기 딱 그만큼의 동상으로 만들어 세운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는 아기자기한 꽃 정원이 꾸며져 있었다.

P20200207_192450159_69F91AF7-2EBC-4E64-B8E5-3245F7C25D74.jpg
박물관 앞 마당의 정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박물관 건물 역시 생각보다 크지는 않았다. 우리로 치면 박물관이라기보다는 기념관 정도의 크기였다. 이 에티오피아 국립박물관은 고대 인류학 및 선사시대 유물 전시관과 근대 전시관 등 네 주제로 나눠져 있으며 고대 유물과 에티오피아 전통문화를 잘 보여주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했다. 가이드 청년들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에티오피아 국립박물관 건물 전경. 국립박물관임에도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는 않다.

박물관의 내부는 거대하고 휘황찬란하기보다는 소탈한 느낌이었다. 주제에 따라 전시실이 꾸며져 있으며 간단한 유물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유물이 너무 많아서 관람하는 데 지치거나 지루해하기 십상인 큰 규모의 박물관과는 달리 간단한 안내문과 대표적 유물 몇 가지가 전시되어 있는 정도였다. 우리의 투어 가이드 청년 중 둘은 우리와 함께 박물관 내부로 들어와 우리에게 영어로 전시실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나름 가이드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었다.

투어 가이드 청년들이 우리에게 첫 번째 전시실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있다.

누가 뭐래도 에티오피아 국립박물관의 상징이라고 하면 루시(Lucy)이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루시에 대한 입간판이 딱 서 있고, 이곳에서 루시를 만날 수 있음을 곳곳에서 자랑(?)하고 있었다. 루시에 대한 이곳의 자부심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인간의 조상이자 최초의 인류 화석인 루시(Lucy)는 318만 년 전에 존재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종이다. 1974년 11월 24일, 에티오피아의 아파르 삼각지역(Afar triangle) 아와시 강에 위치한 하다르(Hadar) 마을 근처 강가에서 발견된 화석이다. 발굴 현장에서 팀원들이 비틀즈(The Beatles)의 '다이아몬드와 함께 있는 하늘의 루시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라는 당시에 유행하는 노래를 불러 이후 화석 이름은 루시(Lucy)라고 붙여지게 되었고 한다. 도날드 요한슨 박사는 루시의 골반뼈와 엉덩이뼈를 분석한 결과 키 1.1m, 몸무게 29kg이며 외모는 침팬지처럼 생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자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품 화석은 따로 보관 중이고 박물관에 전시된 것은 복제품이라고 한다. 루시를 마주한 느낌은 오묘했다. 수만 년 전과 마주하는 느낌은 이곳 또한 수만 년 전과 많이 달랐을 것이며 루시로부터 시작된 인류가 과연 이 지구의 한 생명체로서, 자연의 한 일부로서 제대로 된 생태계 질서를 지키며 살아왔는지를 되돌아보게 했다.

IMG_3788.JPG
20200207_132653.jpg
루시를 안내하는 입간판(왼쪽), 박물관에 전시된 루시의 화석 복제품(오른쪽)


국립박물관에 담긴 에티오피아의 자존심과 자랑스러운 역사

에티오피아 국립박물관은 루시 말고도 다른 전시품들이 있었다. 에티오피아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전시실에서는 농경 생활을 할 당시의 여러 생활 용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이드 청년은 열심히 설명을 했고 우리 일행들은 영어로 된 설명에 집중하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 애썼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전시품이 많지 않고 규모가 작아서 다양한 생활 문화를 관람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점이다. 최초의 인류 이후에 분명히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기에 그만큼이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였을테고 그에 따른 유물들도 참 많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발굴이 미진한 것인지, 정책적인 뒷받침이 미약한 것인지... 아니면 서구 열강들에 의해 수없이 약탈당한 것인지... 다소 아쉬운 뒷맛이 남았다.

가이드 청년의 설명에 집중하는 우리 일행들

1층 중앙홀에는 근대문화를 주로 전시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가운데에는 루시보다는 조금 뒷세대로 보이는 인류의 조상을 추정한 흑백의 초상화가 딱 걸려 있고 그 주위로 에티오피아의 이전 통치자들의 초상화와 그들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인류의 시초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는 에티오피아인들의 자존심이 느껴지는 구성이었다. 유구한 역사가 있고 훌륭한 통치자들이 그 역사를 이어가며 이 나라를 지켜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1층 중앙홀 전시실의 모습. 가운데 인류의 조상을 담은 초상화가 눈에 띈다.

2층 복도와 전시실 사이로는 다양한 그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이라기보다 미술관 같은 느낌이었다. 그림의 소재도 참 다양하였다. 그중 몇몇 그림들은 우리 일행들의 확 끌어당기는 듯한 묘한 아우라가 있는 것들도 있었다. 아프리카 여러 국가를 돌면서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마다 그림들이 그렇게 걸려있더니 이곳에서는 그림을, 더 나아가 예술이 생활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정착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층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들.

이 박물관에서 또 한 번 힘주어 강조한 것이 노벨상 수상과 관련한 일이었다. 2019년에 에티오피아 역사상 처음으로 당시 에티오피아 총리였던 아비 아머드 알리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루시를 소개할 때 그랬듯이 배너 입간판을 통해 2019년 백 번째 노벨 평화상 수상자 Dr. Abiy Ahmed를 소개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는 노벨상의 상장과 메달을 전시해놓고 있었다. 당시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수상자 발표에서 “아비 아머드 알리 에티오피아 총리는 평화와 국제 협력을 달성하려는 노력, 특히 이웃나라인 에리트레아와의 국경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결정적이고 진취적인 결단을 보여줬다. 이 상은 에티오피아와 아프리카 동북부 지역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노력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노벨위원회가 알리 총리를 선정한 것은 19~20세기 중반까지 아프리카 전역에서 자행된 유럽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통치에서 비롯한 현지의 민족 갈등과 국경 분쟁의 평화적 해결 노력에 큰 힘을 실어준 것으로 해석되었다고 한다.

20200207_140410.jpg
20200207_140355.jpg
노벨평화상 수상 관련 전시물


대한민국과 에티오피아의 인연이 담긴 곳에서~

루시를 뒤로 하고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으로 향했다.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우리나라에 전투병력을 파견하였고 여러 전투에서 승전보를 울렸지만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그들을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한 공간이 있다고 하여 그곳을 찾기로 한 것이었다. 사전 조사하면서 여기도 꼭 한 번 들러보자고 했었다. 다만,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를 키워드로 구글링을 하면 자꾸 우리나라의 춘천에 있는 기념비만 나올 뿐 에티오피아 현지의 기념비는 잘 나타나지 않아 정확한 장소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

그래서 과연 가이드 청년들이 이곳을 잘 찾아가 줄 수 있을지부터 걱정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들은 쉽게 목적지를 찾아 갔다. 에티오피아 국립박물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Ethiopian Korea War Veterans Memorial Park'라고 적힌('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이라고 한글로도 적혀 있다) 소박한 간판이 있는 입구를 지나면 양쪽으로 키 큰 나무들이 도열하듯이 줄지어 서있고 그 사이로 자동차 한 두 대가 지날 만한 작은 길을 통해 안쪽으로 쑤욱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 나무숲의 끝에 하늘을 향해 뻗은 기념탑과 그 앞에 걸린 태극기와 에티오피아 국기가 보인다. 춘천에 있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기념탑과 같은 모습이 이곳에서 똑같이 재현된 모습이었다.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 공원 (Ethiopian Korea War Veterans Memorial Park) 안의 기념비

에티오피아는 1951년 5월부터 1953년 4월까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에티오피아인들은 결코 죽은 자를 뒤에 남겨두지 않고, 적에게 항복하지 않으며, 교전에서 패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총 1,271명의 군인이 참전했고 전사자 121명, 부상자 536명의 사상자를 냈다. 포로는 한 명도 없었다. 당시 셀라시에 국왕이 파병 군인들에게 이기거나 아니면 죽어서 돌아오라며 보내, 낯선 곳에서 눈보라와 추위를 견뎌가며 수 백 차례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했다고 한다.

기념공원의 중앙에는 기념탑이 있고 그 뒤로는 한국전의 작전 지역 등 참전의 개요와 함께 우리나라 정부가 에티오피아 희생자들에 대한 감사와 추모의 의미를 담은 판석이 한글과 영어, 에티오피아 현지 언어로 새겨져 있었다.

20200207_142244.jpg
20200207_142810.jpg
기념탑 뒤에 새겨져 있는 감사 문구와 참전 개요

우뚝 솟은 추모탑 앞의 양 옆으로는 에티오피아 국기와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고 주위로는 자그마한 비석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앞면에는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에티오피아 장병들의 이름과 계급, 군번 등이 현지 언어와 영어로 적혀 있고 윗면에는 그 전사자를 기리는 우리나라 군인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전사자 하나하나에 우리나라의 군인들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보낸 것 같아 참 의미 있게 추모비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 우리를 지키기 위해 그 먼 길을 달려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우리를 위해 희생했던 에티오피아 장병들에게 지금의 대한민국 국군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손을 내밀어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20200207_143126.jpg
20200207_143111.jpg
비석의 앞면(왼쪽)과 윗면(오른쪽)을 통해 과거의 에티오피아 군인들에게 감사하는 현재의 한국군의 마음을 표현했다.

기념탑에서 공원 입구 쪽을 보면 이층으로 된 건물이 보이는데 중앙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다. 이 건물들은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 박물관과 참전용사 회관, 참전용사 후원회 등의 사무실들이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우리가 방문한 날이 쉬는 날이었다. 그래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박물관을 살펴보지는 못해 아쉬웠다. 박물관 안에는 당시 참전용사들의 전투지역과 활약은 물론 자신들의 식사를 줄여 남은 식량으로 전쟁고아들을 살피고 월급을 아껴 보육원을 방문하는 등의 사회공헌 활동을 한 모습들이 사진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그런 그들이었지만 전투에서 살아남아 고국 에티오피아로 돌아온 그들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긴 가뭄으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어버린 에티오피아에서 어렵게 생활한 것은 물론 1974년 쿠데타로 공산정권이 들어서며 한국전쟁에서 공산군과 싸웠다는 이유로 재산과 지위를 빼앗기고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당했다고 한다. 1991년 공산정권이 붕괴되었지만 여전히 가난이 대물림되고 있는 현실 속에 힘겹게 살아가고 있지만, 참전용사들은 여전히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참전용사 100여 분이 여전히 살아 계시다고 한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2006년 이곳 아디스아바바에 기념공원과 기념탑을 만든 것은 물론 참전용사 후손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의 후원사업을 이어가고 있고 코로나가 번지던 2020년에는 참전용사들에게 마스크와 방역 용품을 보내주는 등 그들의 희생에 감사를 표하는 일을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현지인 한 명(참전용사의 후손일까 싶었다)이 기념비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아프리카 여행을 시작하며 인천공항에서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 공항까지 비행기로 날아오는 그 시간이 엄청나게 길어서 꽤 힘들었던 기억이 불현듯 났다. 그런데 지금보다 70여 년 전 아디스아바바에서 출발한 참전용사들은 얼마나 길고 먼 여정을 통해 한국까지 갔을까? 생전 처음 겪는 겨울의 칼바람은 어떻게 견뎌내었을까? 이념에 집착하던 그 시대에 그게 대체 무엇이었길래 전쟁은 이런 고통을 우리 인간들에게 안겨주었던 것일까? 이런저런 상념들이 머릿속을 스쳐가며 마음이 숙연해졌다. 비석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우리 일행들도 그런 생각들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냥 이곳을 떠날 수는 없었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모두 기념탑 앞에 일렬로 서서 묵념을 드렸다. 그리고 나서야 이곳을 떠날 수 있었다.



keyword
이전 18화[아프리카#18]코로나19가 망쳐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