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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20]아디스아바바 시내투어#2

아프리카 여행의 마지막 날인데 마지막 날이 아닌...

by 돌바람

너무 조심했던 걸까? 메르카토 전통시장 방문

오전에 찾아갔던 에티오피아 국립박물관과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이어 오후에 우리가 찾은 곳은 메르카토(Mercato) 전통시장이다. 이곳에 오기 전 메르카토 전통시장에 대해 사전 조사를 하면서 살짝 고민에 빠졌었다. 우리의 여행 취향으로만 보았을 때에는 시장 곳곳을 누비며 현지인들과 이야기도 하고 흥정도 하면서 흥겹게 쇼핑을 하는 게 맞는데, 워낙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얘기가 많아 우리 취향대로 해도 되나 하는 고민을 한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사전 자료집에도 '메르카토의 두 얼굴'이라는 소제목으로 두 가지 선택지에 대한 고민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고민은 전날 소매치기를 당해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엄청난 경험을 한 우리 일행에게는 더 이상 큰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치안이 별로 안 좋아 현지인과 함께 다녀야 한다는 사전 정보도 알고 있었고 게다가 승합차 녀석들도 우리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그리 탐탁지 않아 하는 눈치였다. 결국 우리는 승합차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면서 시장의 북적함을 느껴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메르카토(Mercato) 전통시장의 한 부분. 에티오피아 국기를 팔고 있는 가판도 있었다.

가이드 청년들은 능숙하게 메르카토 시장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간단한 설명을 하였다. 이 시장은 아프리카 대륙 최대의 전통시장이며 그 규모와 면적이 상당하다고 자랑을 했다. 아프리카의 여러 곳에서 여기로 와서 물건을 사고팔고 하기 때문에 그 어떤 물건이든 이 시장 안에 다 있다고도 힘주어 얘기했다. 우리도 이미 사전 조사를 통해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탄 승합차는 자연스럽게 속도를 낮추어 시장 안으로 진입했다. 우선 만난 곳은 차가 넉넉히 다닐 수 있는 도로 양 옆으로 전자상가와 포목 시장이 들어선 건물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곡물 시장, 철물 시장, 옷 수선 시장, 기계 수리 및 부품 시장 등 끊임없이 새로운 품목들을 다루는 시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만큼 유동 인구도 엄청 많았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지만 사람이 많은 만큼 소매치기 등도 많아 치안이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평소의 우리였다면 한 번 내려서 이곳저곳을 둘러볼 만한데 어제의 휴대폰 도난 사건과 한국식당 사장님의 조심하라는 경고가 자꾸 머리에 떠올라 그러질 못했다.

메르카토 전통 시장 내의 각종 물품을 파는 시장들

차를 타고 돌아다니는데도 우리의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처럼 무척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어 초행길에 나선 여행자들은 길을 잃기 십상으로 보였다. 차를 타고 돌아도 한참 걸릴 만큼 시장의 규모는 무척 컸고 그곳의 사람들은 활기가 넘쳐 보였다. 예전에 우리도 그랬지만 시장에서는 거의 곡예 수준으로 머리에 짐을 이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고 나귀에 짐을 싣고 이동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온갖 물품이 거래되는 곳이어서 잠깐 내려서 이 사람들과 흥정하면서 뭐라도 하나 사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끝내 참을 수밖에 없었다. 가이드 청년들도 은근히 내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고 어제 일로 잔뜩 움츠러든 일행들도 별로 내켜하지 않아 끝내 창밖으로만 시장을 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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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사람들. 무거운 짐들을 거의 곡예 수준으로 이고 다니는 모습이 신기했다. 나귀도 짐을 싣고 걷고 있었다.

시장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거나 가장 변두리 쪽으로 나갈수록 거래되는 물품이나 사람들의 행색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무언가 물자가 많이 부족하고 곤궁한 삶을 살아가는 듯한 모습이 느껴졌다. 나중에 한국 식당 사장님께 들은 이야기였지만 에티오피아는 지금 경제난을 겪고 있다고 했다. 사회주의를 버린 이후 아프리카의 중심 국가로서의 위상에 맞게 미국의 지원 아래서 꽤 경제적 번성을 이루어가고 있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미국의 지원이 전면 중단이 되면서 실업률이 치솟고 물자가 부족해지면서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 틈새를 중국이 파고들어 에티오피아의 경제를 점령해가려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강대국들의 횡포가 이곳에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뒤흔들고 있는 이런 형국이 에티오피아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시장에 내려 구경하지 못한 안타까움보다 훨씬 더 큰 안타까움이다.

카센터도 아닌 길가에서 차량 정비를 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성당을 찾아가다

메르카토 시장을 빠져나온 우리 투어 차량은 트리니티 성당(Holy Trinity Cathedral, 우리말로는 성 삼위일체 성당 쯤으로 번역될 것 같다)을 향해 달렸다. 트리니티 성당은 아디스아바바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이다. 하일레 셀라시에(Haile Selassie) 황제의 관과 에티오피아 지도자 및 역대 대통령 묘소가 있고, 성당 지하에는 한국전 참전 용사를 위한 곳도 마련돼 있다고 했다. 하일레 셀라시에는 에티오피아 마지막 황제로 국제 연맹 가입, 노예제도 폐지 등 근대화 정책을 추진했고 헌법도 제정했으며 아프리카 통일기구의 지도자로 활약하기도 한,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황제다. 그런 황제를 기리는 성당을 찾아간 것이다.

사실 에티오피아의 국교가 어떤 종교냐라고 물으면 정확한 답을 하긴 어렵다. 다만 1억 명이 넘는 인구 대부분이 종교에 독실한 편이라고 하는데 약 43%가 에티오피아 정교, 34%가 이슬람교, 18%가 개신교, 2%가 토속 신앙, 1% 정도가 가톨릭이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거의 전 국민의 종교를 양분하고 있음에도 서로의 종교를 배려하며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극단주의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얼마든지 이 두 종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이곳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보여주고 있다. 이 트리니티 성당은 바로 그 에티오피아 정교의 총본산 격에 해당한다.

트리니티 성당(Holy Trinity Cathedral)의 정면

트리니티 성당 주차장에 도착해 입구를 통해 들어가는데 입구 좌측에 작은 간이 건물이 있었다. 가이드 청년들이 우리를 데리고 그곳으로 갔다. 매표소였다. 성당 투어를 하기 위해서는 200 비르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청년들이 매표를 하는 동안 성당의 정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유럽의 성당들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점들이 보였다. 유럽식 성당의 구조를 갖고 있지만 심플한 듯하면서도 다소 현대적인 느낌이 있었다. 유럽의 성당들이 온갖 장식과 조각을 벽면과 지붕 첨탑, 기둥 끝부분 등에 가득 채운 반면 이곳은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아마도 셀라시에 황제에 의해 1931년에 시작되어 1943년 완공된(1935년부터 1940년까지 이탈리아와의 전쟁 중에 중단되었었다), 그래도 최근에 지어진 성당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매표 후 성당 건물 앞으로 가까이 다가서서 지붕 쪽을 바라보니 성당 정면 지붕 위를 빙 둘러가며 많은 조각품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십자가는 물론 천사의 모습을 한 조각상과 꽃 모양의 장식 등이 밋밋할 수 있는 전면 벽체의 아쉬움을 화려함으로 바꾸어주고 있었다.

지붕 주위의 조각상들. 화려함을 모두 이곳으로 모아 놓은 느낌이었다.

성당 옆을 돌아 옆면과 후면을 보면 정면과는 또다른 느낌을 받는다. 세로로 길게 뻗은 창문들이 줄지어 있고 그 창문 주위의 장식들이 유럽의 성당과 비슷한 모습을 연출해 주었다. 아이보리 빛의 벽면에 세월의 흔적을 입은 창문 장식들이 무척 아름다웠다. 오히려 이쪽의 모습은 유럽의 소박하지만 전통있는 성당의 모습을 닮아 괜찮은 느낌이었다.

트리니티 성당의 측면과 후면. 소박함과 화려함의 절묘한 조화가 멋스러웠다.

트리니티 성당의 진면목은 성당 내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1930년대에 만들어진 성당임에도 성스럽고 멋스러운 벽화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스테인드 글라스도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종교적인 이야기를 가득 담고 있는 벽화와 장식들, 그리고 스테인드 글라스는 성서의 내용을 잘 표현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사실 나는 무교라 내용은 잘 몰라 얻어들은 이야기이다). 뿐만 아니라 내부 기둥들과 지붕을 잇는 벽체도 깔끔하면서도 화려한 현대적 느낌의 장식들이 이어져 있었고, 그 사이에 있는 아치마다 달린 작은 조명과 함께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가 고풍스러운 멋을 자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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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 고풍스러움을 드러내는 성당의 내부

무엇보다 눈에 띄었던 것은 제단을 바라보는 정면 위쪽에 그려진 삼위일체(성자, 성부, 성령) 벽화였다. 성 삼위일체 성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 모인 이들을 그윽이 살펴주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으로 현지인들이 조금씩 조금씩 모여들더니 때마침 작은 미사가 열렸다. 우리는 비록 관광을 목적으로 이곳에 들렀지만 역시 성당은 종교적인 이유로 기능할 때 가장 성스러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 무엇이든 자신의 목적에 맞게 숨 쉴 때가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성 삼위일체 아래서 미사를 드리는 사람들

미사가 진행되는 바람에 성당 안쪽 깊숙한 곳까지는 가보지 못했다. 대성당의 가장 안쪽 부분에는 두 개의 석관 있는데 하나는 이 성당을 세운 하일레 셀라시에(Haile Selassie) 황제, 다른 하나는 황후의 묘이다. 셀라시에 황제는 이탈리아 점령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이 성당을 완공시키고 이곳을 여러 전쟁에서 희생된 에티오피아의 지도자들은 물론 한국전 참전 용사들의 영혼을 달래는 곳으로 사용하였고 그 또한 이곳에 잠든 것이다.

성당 뒤편으로는 전시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이곳에서는 모든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셀라시에 황제의 이름을 딴 박물관인데 그가 사용했던 물품과 사진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성당 지하에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122명의 위패와 사진이 따로 모셔져 있고 벽화에는 당시 파병식 장면과 국왕이 유럽 의회에 가서 이탈리아의 침공을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고 하는데 이를 보지 못하고 나온 것이 아쉬웠다.

대성당 뒤편에 자그맣게 자리 잡은 셀라시에 박물관


가이드 투어 청년들의 최후~!

성 트리니티 성당 투어를 모두 마치고 약간의 시간 여유가 생기자 우리는 가이드 청년들에게 기념품 가게에 데려다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 청년들이 갑자기 souvenir shop이라는 단어를 못 알아듣는 것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설명을 해도 뭔지 모르는 눈치였다. 기념품 가게가 없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아침에 모예 커피 공장처럼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괜히 귀찮아서 그런 건 아닐까 의심스럽기는 했다.

그렇게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은 이날 마지막 저녁으로 삼겹살 파티를 할 겸 다시 찾은 한국 식당에서 목격한 사장님의 행동과 이야기 때문이었다. 찾지 못하고 헤매기만 했던 기념품 가게를 포기하고 우리는 곧장 한국 식당으로 찾아갔다. 아프리카 여행의 마지막을 삼겹살 파티로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식당에 우리를 내려 준 가이드 청년들은 식당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예 돌아가지도 않은 채 식당 울타리 밖에서 쭈뼛거리고 있었다. 이를 목격한 식당 사장님은 그들을 불러 몇 마디 해보더니 갑자기 고함을 치며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 청년들은 뭐라고 반박을 해보려고 했지만 사장님의 기세에 밀려 승합차를 갖고 쫓겨나듯 되돌아갔다.

사장님께 얘기를 들어보니 이들은 일부러 시간을 지연시키며 오후 5시를 넘겨 추가 요금을 받을 속셈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침에 늦게 도착한 것부터 일부러 시간 지연 작전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는 오후 5시면 모든 업무가 끝나는 시각이기 때문에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하게 되면 추가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녀석들이 그걸 노리고 식당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사장님은 어제 우리에게 들은 얘기와 녀석들의 행동을 두루 살펴보고 이들은 그런 흑심을 품고 있음을 간파하고 고함을 치며 쫓아낸 것이었다. 심지어 이들과 연결해준 호텔의 직원들도 한 패일 수 있다는 말이 충격적이었다. 그러면서 요즘 에티오피아 청년들이 심각한 실업난과 경제난 때문에 힘들어하면서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다는 설명을 해주셨다. 이곳 청년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그 피해가 우리에게 돌아올 뻔했다는 사실에 아찔하기도 했다.

사장님 덕분에 우리는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청년들을 보내고 편안하게 삼겹살 파티로 아프리카 여행의 마지막 저녁을 즐겼다. 그리고 사장님은 우리가 극구 사양하는데도 손수 자신의 차를 운전해 우리를 호텔까지 태워다 주었다. 비록 먼 거리는 아닐지라도 세 번이나 식당과 호텔을 왕복하면서 우리의 안전을 지켜준 사장님이 너무도 고마웠다. 머나먼 아프리카 땅에서 같은 한국인을 만났고 그분에게 이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도 어쩌면 참 좋은 인연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는 결전의 시간이다~!

호텔에서 맡겨둔 짐을 찾고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하지만 우리의 귀국은 아직 보장되지 않았다. 어제 날벼락같은 항공편 변경 문자를 받고 항공사 티켓 오피스에서 한바탕 항의를 한 것도 아무 소득이 없이 끝났고, 이제 남은 것은 공항에 가서 직접 싸워보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저녁도 일찍 먹고 원래의 비행기 시간이었던 23시 55분보다 한참이나 일찍 공항으로 갔다. 호텔 셔틀버스에서 내려 바라본 아디스아바바 국제공항의 야경은 폭풍 전야처럼 고요한 느낌이었다. 결전의 시간을 준비하는 우리의 마음처럼~

아디스아바바의 저녁 공항 풍경. 고요해서 오히려 긴장되었다.

일단 우리 일행은 우리의 짐들을 모두 모아 두고 총무님과 감독님을 비롯한 몇몇 사람만 티켓 데스크로 갔다. 그리고는 미리 출력해둔 원래 비행기 편의 e-티켓을 직원에게 건넸다. 직원이 살펴보더니 당연한 소리가 되돌아왔다. '이 비행기는 다른 편으로 대체되었다. 알고 있지?' 대략 이런 말이었다. 우리는 어제 오전에 티켓 오피스에서 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풀어내기 시작했다.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너희들이 갑작스럽게 이렇게 비행기 편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바람에 우리는 홍콩에서 환승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그래서 한국에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너희들의 일방적인 통보 때문이다. 어제 티켓 오피스에서 몇 시간을 얘기해도 말이 안 통했다. 너희들이 대안을 마련해달라.' 요약하면 이런 이야기를 나름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랬더니 직원이 옆에 있는 다른 직원(상사인 듯한 사람)과 무언가 얘기를 하더니 잠깐 기다려보라고 했다. 여기서부터는 기다림의 시작이었다.

항공사 직원들의 답변을 기다리는 우리 일행들

낮에 즐겼던 아디스아바바 시내투어 때의 즐거운 표정들은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긴장감만 남은 우리 일행들은 상황을 파악한 직원들의 답변을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린 뒤(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다. 우리나라처럼 빨리빨리가 가능한 문화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미 우리는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현지인들의 느긋함 때문에 발생한 엄청나게 긴 기다림들을 경험했었다.) 한 직원이 우리가 모여있는 곳으로 오더니 다른 쪽 사무실로 가서 얘기를 해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수하물 카운터 근처에 모아두었던 짐들을 모두 끌고 발권과 탑승수속을 하는 데스크 말고 그 맞은편 한쪽 구석에 에티오피아 항공의 로고가 자그맣게 박힌 조그만 사무실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른 직원에게 또 조금 전과 같은 말들을 반복했다. 직원이 사정을 듣더니 또 기다려보라고 했다. 그리곤 다시 하염없는 기다림이 이어졌다. 밤이 될수록 오가는 여행객들이 많아졌고 사람 10명과 잔뜩 모아놓은 우리의 짐들은 그 여행객들의 발걸음에 자꾸 걸리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사람이 그나마 뜸한 공항 한쪽 한 기둥 아래에 다시 모였고 그렇게 그곳에서 직원의 소식을 기다렸다.

과연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긴장과 떨림의 시간이 지속되고 있었다.

공항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밀리며 기다리고 있는 우리 일행들

우리는 과연 어떻게 될까? 제시간에 한국에 돌아갈 수 있을까? 설마 유튜브에서 보았던 한 여행객의 아디스아바바 공항에서의 눈물이 우리에게 재현되는 건 아니겠지?

한 직원이 우리를 바라보며 다가오고 있다... 어떤 소식을 들고 오는 걸까?


(2주 뒤 공개될 아프리카 여행기의 마지막 편(#21)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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