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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바람 Jan 17. 2023

게으른(?) 토끼의 변명

이제 그만 좀 쉬었다 가도 되잖아~!


사진출처 : Unsplash의 Pablo Martinez


브런치 글쓰기를 한 주 건너뛰었다. 처음으로~!


어릴 적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경주를 다룬 동화를 누구나 한 번은 읽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로부터 느리지만 쉼 없이 달리는(?) 거북이의 훌륭함을, 달리기 실력은 뛰어나지만 자만함에 결국 게임에서 지고 마는 토끼의 어리석음을 교훈으로 들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때 그런 가르침을 듣고 성장했다. 


지난 1월 4일, 그러니까 2주 전 수요일. 애증(?)으로 이어온 인연들을 떠나보냈다. 지난 2년... 한껏 예민하고 날카로운 상태로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며, 괜한 걱정에 무리하지 않으려 애쓰며, 내가 쓸 수 있는 한도 내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쉼 없이 달려왔다. 계속되는 긴장감에 숨이 턱턱 막히고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을 애써 외면하며 그 안에서 버티며 달려왔다. 심리적 불안과 정서적 빈곤 속에서 중간중간 조금의 숨 쉴 틈을 마련해 준 것이 글쓰기였다. 그 덕에 2년 차에도 무탈히 버텨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짐을 2주 전에 털어내었다. 


토끼가 성실하지 못하고 게으르며 자만심에 빠진 녀석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나무 그늘 밑에서 낮잠을 실컷 자버린 사태(?) 때문이다. 그런데...

토끼도 힘들었겠지. 그래서 쉬었겠지.

달리기 시합에서 그저 이길 작정이었다면 살살 뛰어도 거북이를 이길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갖고 있었기에 거북이 옆에서 조깅하듯 슬슬 뛰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토끼는 있는 힘껏 달렸다. 그리고 시야에서 거북이가 사라질 정도로 멀리까지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이 매우 힘든 상태임을 발견했겠지. 그래서 조금 쉬고 싶었겠지. 힘드니까. 


연극이 끝난 뒤 불 꺼진 무대를 보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약간의 허탈감을 느끼곤 한다. 특히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난 뒤에는 안도감과 기쁨의 크기만큼 그 허탈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1월 4일 이후 나는 온갖 긴장이 모두 풀리면서 안도와 허탈을 함께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곤 마치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비몽사몽인 상태로 2주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원래에도 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에 답답증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답답함이라는 것을 단 한 순간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 쉼이 그저 좋았다. 정말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 그 자체였다.


그렇기 때문에 토끼를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토끼는 달리기 시합에서 단순히 거북이를 이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뛴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경기에 임했고 어느 순간 한계에 이르렀음을 느끼고 그저 조금 쉬고 싶었던 것뿐이다. 다만 잠깐의 쉼으로 그간의 힘듦이 다 해소되지 못해 깊은 잠에 빠져버린 것이 흠이라면 흠일 것이다. 이 동화를 재해석하는 꽤 많은 글들에서 보면 잠든 토끼를 깨우지 않고 결승선까지 그냥 가버린 냉혹한 거북이에 대한 부정적인 평도 나온다. 하지만 이 또한 거북이를 탓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토끼든 거북이든 시합에 진지하게 임했던 것뿐이다. 각자 나름의 이유와 사연을 갖고 최선을 다한 것뿐이다. 문제는 이 경쟁에서 누가 승리하고 누가 패배하는지에만 집중하는 우리의 태도일 뿐이다. 


엄혹한 사회에서 어떤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미션들은 때로 그 사람을 번아웃 상태까지 몰고 가기도 한다. 내가 번아웃 직전 상태까지 왔음을 느끼게 되면 쉬어야 한다. 그 선을 넘게 되면 그 사람에게도, 그가 소속된 사회에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우선은 사람이 먼저 살고 봐야 할 일이 아닌가. 남들이 보기에 어떤지 몰라도 그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최선의 능력을 쏟아부으며 달려왔지만 너무 힘들어 쓰러지기 직전이라면 쉬는 것이 맞다.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어디론가 끊임없이 걷고 또 뛰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쉬어야 다시 걷고 다시 뛸 힘이 생긴다. 중요한 것은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 경쟁에서 패한 이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승자도 패자도 모두 최선을 다해 자신의 미션을 다하려 노력했으면 그것으로 된다. 그래서 경쟁은 결코 선이 아니다. 그리고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시합 자체가 공정한 게임은 아니지 않은가.


공정하지 않은 게임 속에서 최선을 다한 토끼와 거북이에게 모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패하면 뭐 어때? 승패가 뭐가 중요해? 나는 나를 위해 좀 쉬면서 갈 거야. 힘들면 쉬어야지~!




토끼의 해가 시작됩니다. 

올해는 누구보다 자신을 아끼며 쉼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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