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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바람 Apr 18. 2023

4월은...

분노는 나중의 일이었다.

2014년 그날,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뉴스를 볼 때만 하더라도 '안타까운 사고가 크게 났구나.', '곧 구조가 잘 될 모양이네.'하고 넘겼던 일인데, 퇴근하고 집에 와서 다시 틀어 놓은 TV에서는 무언가 일이 잘못된 듯 긴박한 상황들이 속보를 통해 쏟아지고 있었다. 온 몸이 굳었고 정신이 가마아득 멀어져 갔다. 그저 멍하니 아무 미동도, 아무 생각도 없이 TV 속으로 빨려 들어 가고 있었다. 점점 가라앉는 배처럼 나 또한 점점 침잠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새벽이 되는데도 불꺼진 거실에서 반복되는 뉴스만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되돌아보니 그것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심한 충격이었던 듯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출근을 했는데도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분노는 사치였다. 안타까움과 슬픔과 절망의 늪에 깊게 빠져버렸다. 그리고 차마 그 아이들을, 그 부모님들을 만날 용기조차 생기지 않았다. 그들을 만난다는 것은 곧 내가 무너지는 일일 것만 같았다. 팽목항에, 안산에, 그리고 나중에는 광화문에도 추모공간이 생기고 있었지만 차마 그들을 만날 수는 없었다. 용기가 없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러야 했다.

사고가 수습되고 배가 물 밖으로 나오기까지 시간이 참 오래 걸렸다. 그리고 내 마음이 정리되고 그들을 만나는 데까지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배는 물 밖으로 올라왔지만 이 참사는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배와 함께 진실마저 수장시켜 버리려 했던 이들 탓에 시간은 여전히 오래 걸리고 있었고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프레임이 씌워지고 있었다. 심지어 곧 팽목항에 있던 추모공간들이 철거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는 그들을 만날 용기를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무려 4년이나 지난 2018년 여름, 진도로 향했다. 운전을 하며 팽목항을 찾아가다가 도로 옆에 작은 표지판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팽목항까지 13km가 남았다는 A4용지만한 작은 표지판이었다. 차를 세웠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현장을 마주하게 되는 두려움과 조금더 일찍 용기를 내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었으리라...


그저 먹먹할 뿐이었다.

꽃다운 죽음 앞에 무슨 다른 감정이 더 있을까.

추모 공간 옆 녹슨 철판에 붙어 있는 노란 리본 스티커, 세찬 바닷바람에 그 끝이 닳아가고 있는 팽목항 난간의 빛 바랜 노란 리본들이 4년의 시간을 증명하고 있었다. 조금 더 일찍 용기를 내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기만 했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그 일로부터 4년이 지난 팽목항은 그들의 진한 흔적만 남고 곧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씁쓸함과 먹먹함을 안고 목포 신항으로 갔다. 2018년 여름의 그곳은 여전히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담장 너머에 그 큰 배가 반쯤 녹슨 채 우뚝 서 있었고 아직도 아이들을 찾지 못한 유족들의 컨테이너 임시 거처가 뜨거운 8월의 뙤약볕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아이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의 마음은 그 어떤 힘듦도 다 넘어서고 있었다. 가끔씩 찾아오는 사람들은 말없이 울타리 너머의 그 배를 보며 숙연해질 밖에... 컨테이너 임시 숙소 위에 노오란 고래 하나가 노란 리본들의 물결을 타고 배를 머리에 이고 하늘 위로 올라갈 듯 헤엄치고 있었다. 부디 그 아이들이 힘차게 헤엄쳐 평화로운 그곳으로 갈 수 있기를...


이제 9년이 지났다.

여전히 목포 신항에는 그 배가 있다. 지난 시간의 무게만큼 배는 더 녹이 슬었고, 배의 원형도 처음과는 조금 달라졌다. 시간은 그렇게 서서히 모든 것을 바꾸어 가는가 보다. 그러나 고래를 타고 하늘로 간 이들의 남은 가족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고, 세상은 또 그 세대의 청년들을 허무하게 떠나 보내는 어리석음을 보이고 말았다. 아직도 아물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상처를 다시 헤집어 놓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때처럼 그곳에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이 여전히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잊혀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여전히 종종 마음이 아프고 힘들다. 꽃이 아름다운 잔인한 4월이 되면 더욱 고통스럽다.



4월은 참 잔인하다.

잊혀짐에 대한 두려움과 잊혀지지 않음으로 인한 고통이 서로 충돌하는 감정 속에서 4월은 참 잔인하다.

그러나 여전히 잊지 않을 것이다.

잊지 않을게~!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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