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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바람 May 02. 2023

전원의 풍경?

멀리서 보면 낭만, 가까이서 보면 노동의 현장

푸르름이 점점 짙어가는 계절이다. 


오래전 경주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멀리 황룡사 9층 목탑을 현대적으로 기념하는 경주타워를 멀찍이서 바라보며 사진을 찍다가 그 앞의 논에서 일을 하고 있는 한 어르신을 보게 되었다. 한껏 허리를 숙여 논 바닥에서 피를 뽑고 삽 하나에 의지해 물길을 내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조만간 이어질 장마를 대비하기 위함이었으리라.


차를 타고 도시를 떠나 먼 곳으로 여행을 다니다 보면 가끔씩 만나게 되는 풍경이다. 푸르름이 가득한 전원에서 홀로 조용히 논밭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풍경을 만나게 되면 흔히 나오는 얘기들이 있다.

"와아~ 좋네. 이런 곳에서 살아야 되는데~ 얼마나 여유롭고 좋아?" 대략 이런 말들이다.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과 똑같은 노동일뿐이다. 오히려 저 넓은 논밭을 홀로 가꾸어야 하는 중노동이다. 도시인들에게는 결코 이해될 수 없는 참 힘든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만 보고 부러워할 일이 절대 아니다.


결핍과 부재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것 한 가지 이상씩은 갖고 살게 마련이다. 대체로 그 부러워하는 것은 내가 지금 갖고 있지 못한 것들이다.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하다가도 나 말고 누군가가 멋들어진 무언가를 갖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면, 순간 부러운 생각이 들고 나의 결핍을 인지하게 된다. 나에게는 원래 없던 것이지만 다른 이가 그것을 갖고 있다면 나에게도 그런 것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결핍과 부재는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다. 결핍은 원래 나에게 없던 것이고 지금껏 가져보지 못한 것이 그 대상이 된다면, 부재는 원래 있었던 것이었지만 지금은 나에게서 떠나 내 곁에 없는 것을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그런 대상을 만났을 때 우리는 조금은 다른 정서를 느끼게 된다.

결핍은 부러움을 낳고 부재는 그리움을 낳는다. 그리움은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지만 부러움은 심리적 빈곤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결핍에 대한 과도한 부러움은 가끔 오해를 일으키거나, 상대로 하여금 불쾌함을 유발하기도 한다. 지나가는 도시인들이 무심코 던지는 "와아~ 좋네. 이런 곳에서 살아야 되는데~ 얼마나 여유롭고 좋아?"라는 말을 만약에 경주의 저 어르신이 듣는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시골에서 나고 자랐지만 지금은 도시에서 살아온 시간이 더 많아진 내가 들어도 결코 좋은 답변을 해줄 수는 없을 듯하다.


최근에는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이 각종 매체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여유롭고 평화로운 전원에서 단독 주택을 가꾸며 살아가는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는 참 낭만적이다. 하지만 귀촌 혹은 귀농 생활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되돌아오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실제로 그곳에서 생활해 보니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의 기반 시설에 대한 편리한 기억이 여유로운 낭만을 이기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해서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내가 경험을 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고 그 다음에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나의 결핍을 상대에 대한 부러움으로 치환해 생각하는 것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이고 평가이다. 내가 직접 겪어보게 되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다른 세계의 모습들이 내 앞에 참으로 당혹스럽게 펼쳐진다. 진정한 용기가 있다면 부러워만 말고 직접 경험하고 느껴볼 일이다. 낭만이 느껴질 때까지 즐길 수 있도록…


낭만은 결핍이 완전히 잊혀진 순간에야 찾아온다.



그나저나

저 어르신은 올해도 농사를 짓고 계시려나? 대풍이 길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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