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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바람 Jun 28. 2023

포기할 줄 아는 용기

세상에서 가장 힘든 용기


어느 공원의 놀이터였다.

나무 데크로 꽤 경사가 심한 오르막을 만들어 놓고 밧줄을 걸어 놓았다. 그 밧줄을 잡아당기며 경사로를 기어오르는 아이들이 있었다. 고학년의 초등학생 정도면 충분히 오를 수 있는 높이였다. 아직 유치원에도 가지 못했음직한 한 꼬마가 잡고 있던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이 경사로를 향해 뛰어 왔다. 그리고 형아들처럼 도전을 시작했다. 허나 형아들처럼 오를 수는 없었다. 엄마의 도움으로 그 조그만 손으로 밧줄도 쥐어 보지만 역부족이었다. 두세 걸음 오르는 것이 전부였다. 아이는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옅은 미소를 띠고 아이를 안고 달래 보지만 울음은 당최 멈추질 않았다. 호기롭게 도전했던 그 아이는 그 순간 아마도 절망이라는 감정을 맛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엔 포기해도 그만인 것,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 그리고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 중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들에는 보통 자기의 꿈이나 정체성, 삶의 지향점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 그런데 어느 시점이 되면 어떤 상황에 의해서인가 그것들을 포기해야 하나 싶은 순간이 온다. 그것들을 이루려고 숨이 턱턱 막히는 순간까지 아등바등 노력했음에도 도저히 이뤄낼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순간이 닥치는 때가 있다. 말로는 '에라, 모르겠다. 이젠 포기다!'라고 되뇌지만 심정적으로는 도저히 포기가 되지 않아 미련이 가슴 한가득 남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그 답답함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방황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쉽사리 포기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 순간 필요한 것이 용기이다. 

세상 그 무엇보다 힘들고 아픈 용기이다. 스스로에게 너무나도 냉혹하고 잔혹한 용기이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이유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듯한 상실감과 만나야만 하는 용기이다.

그렇기에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필요한 말이라는 그런 뻔한 말들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그래서 나 스스로 별 볼 일 없는 나약한 인간이라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포기해야만 할 때의 그 절망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순간에 포기를 선택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약해서가 아니라 강한 의지를 갖고 있어야 포기할 수 있다.


아프지만 포기해야 한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나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그렇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런 불편한 진실은 내가 외면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내 눈을 가린다고 해서 내 앞에서 물러서 주지를 않는다. 포기의 시작은 이런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상황이나 내 능력의 모자람을 나 스스로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자존심도 상하고 자존감도 떨어지고 심하면 자책감에 몸부림칠 수도 있다. 허나 거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특별해지고 싶지만 결코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인간임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아픔을 주는 일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더 큰 아픔에 직면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프지만 해야 한다.


놓아주어야 한다. 

자유는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놓아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바꿀 수 없는 상황을, 부족한 내 능력을 붙잡고 스스로를 괴롭힐 게 아니라 과감히, 미련 없이 놓아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것들을 최대한 멀리 떠나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놓아버리고 나면 어느 순간 한껏 자유로워진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가져야 하는 포기는 그 누구에 의한 포기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포기여야 한다. 떠밀려 하게 되는 포기는 비루함을 남긴다. 나의 선택에 의한, 나의 의지와 용기에 의한 포기만이 미련과 비루함을 남기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철이 들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슬프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모난 돌이 다듬어져 둥글둥글한 조약돌이 되듯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자신이니까. 스스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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