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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바람 Jul 28. 2023

살기 참 거칠다.

바람이 치는 제주의 바다~ 


날이 흐린 어느 겨울날이었다. 

제주 구도심에서 멀지 않은 용담 해안도로를 무작정 따라가다가 조그만 포구가 있어 그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여름이면 이곳에서 제주의 해녀들이 직접 물질을 하고 그 결과로 수확해 온 각종 해산물들을 직접 썰어 관광객들에게 판매하기도 한다. 어디 여름뿐이랴. 매서운 강추위가 몰아쳐 오가는 관광객들이 뜸해질 때만 아니라면 해녀들은 늘 그렇게 물질에 나선다. 그런데 이날은 하늘을 휘감은 먹구름보다도 더 시커멓고 날카로운 현무암을 매섭게 때려대는 거친 파도가 일었다. 바람이 사정없이 섬을 치고 있었다. 해안가 바위들과 거침없는 파도들이 마치 전쟁이라도 펼치듯 포탄의 구름만큼이나 큰 물보라들이 하늘로 솟구칠 정도였다. 바다에서 사용하는 스티로폼 부표들이 쇠기둥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치는 바람을 견디고 있었다.


제주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리고 참 모질도록 거친 곳이다.

사진으로 박제된 이 풍경도 참 아름다워 보이지만 실상 사진을 찍을 때에는 카메라의 스트랩이 휘날려 내 얼굴을 때릴 만큼 거센 바람이 치고 있었다. 이런 날이면 우리 외할머니는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그래도 바람과 파도가 물질을 하기 애매할 정도일 때는 해녀들의 조업하는 바다 쪽으로 나가 어장을 지키는 일이라도 했지만 이렇게 바람이 매서우리만치 몰아치는 날에는 집에서 그 바람과 파도를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어차피 바다 근처는 위험해서 아무도 나타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런 날은 그야말로 공치는 날이다. 아무런 수입도 없는 날이다. 바람을 피해 납작 엎드리고 그 바람을 견디기 위해 지붕에 새끼줄을 훨씬 촘촘하게 엮어놓은 제주의 전통 초가집처럼 사람도 그 모진 환경에서는 납작 엎드리고 견디는 수밖에 …….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관광산업이 발달하기 전의 제주는 살기 참으로 척박한 곳이었다. 화산토라 땅에 물을 가둘 수 없어 쌀농사는 거의 되지 않았고, 그렇기에 거의 대부분 밭으로 일구어진 곳에 감자니 콩이니 보리니 하는 것들을 심어 그것으로 먹을 양식을 대체해야 했다. 그나마 좋은 수입은 배를 타고 나가 조업을 하는 일인데 이런 일은 대개 남자들이 했고 그러다 보니 여자들이 집안일에, 밭일에 그것으로도 모자라면 물질까지 해야 했던 것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사내들이 타고 나간 배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래서 제주에서는 여인들마저 그렇게 모질게 살아가야 했다.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 바람이 끝나면 괜찮겠지." 하며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었다. 살다 보면 몸을 가누기가 어려울 만큼 힘겨운 순간들이 찾아오게 된다. 허나 지나고 보면 또 그것은 한순간일 뿐인 경우가 많다. 바람이 지나면 물질을 나가는 해녀들은 오히려 더 손길이 바빠진다. 바람이 파도를 일으켰고 그 파도가 물속을 한 번 뒤집어 놓은 덕에 오히려 바닷속은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척박한 곳에 바람까지 더해지는 그런 힘겨운 상황은 외려 다시 한번 힘을 내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그래서 제주의 옛 어른들은 "살암시라."라는 말을 가끔씩 무뚝뚝하게 되뇌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거대한 자연의 힘에 맞서 싸울 수 없는 인간은 그저 그 자연 앞에서 겸손하게 때를 기다리며 순간을 견뎌내며 살아갔던 것이다. 


이제 또 오겠지. 

시기 상으로 보면 또 엄청난 바람과 비가 태풍이라는 이름을 달고 제주 그 바다에 또 나타나겠지.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또한 순간일 것이고,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고, 또 언젠가는 다시 푸르디푸른 바다와 하늘이 그 빛을 겨루는 듯한 맑은 날이 올 것이다. 돌담에 바짝 붙여 집을 짓고 층고는 낮게 하고 돌담 끝과 지붕을 맞닿을 듯 낮은 집을 지어 바닷바람을 견디는 제주의 집은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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