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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바람 Mar 10. 2022

해 질 녘 공항에서...

어느 날 공항 옆을 지나가다가...


   꽤 오래전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집이 김포공항에서 멀지 않은 편이라 퇴근길에는 서쪽 하늘을 만나게 된다. 이날도 퇴근하던 중이었다. 구름은 없지만 먼지가 적당히 하늘을 채운 날, 저녁 노을이 그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그 빛깔이 아름다워 방향을 틀어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곧장 김포공항으로 들어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카메라를 들고 공항 주변을 서성이다가 저 사진을 찍게 되었다. 비행기가 쉼 없이 붉을 노을을 향해 이륙하고 있었고 그때를 기다려 셔터를 눌렀다.  

   

   내 고향은 제주도이다. 대학을 서울로 진학하게 되면서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고 그 이후 내 주거 지역은 늘 서울이었고 나머지 가족들은 여전히 모두 제주도에서 산다.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고 직장 생활을 해오면서 제주도가 고향이라는 얘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첫 반응이 "부럽다~"이다. 특히 명절을 쇠러 고향을 다녀온다고 하면 또다시 "부러워. 나도 제주도 가고 싶다아~~"라는 반응을 보인다. 나는 그저 어른들 찾아 뵈어 인사드리고 명절을 보내기 위해 가는 것뿐인데 그저 그곳이 제주도란 이유만으로 그렇게들 부러워한다. 그저 고향에 집안일 보러 다녀오는 것뿐인데도...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나 역시 제주도에 가고 싶어 한다. 명절을 쇠러, 가족 행사 때문에, 부모님 뵈러... 등등이 아니라 여행으로 제주도를 가고 싶어 한다. 이렇게 제주도를 무척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른바 '제주 출신 육지사람'이기에 그저 여행자로서만은 제주를 다녀올 수 없는 운명을 갖고 있달까...


   그래서 공항은, 특히 김포공항은 나에게 의미가 조금 다르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공항은 보통 설렘의 장소이다. 낯선 타지로의 설렘을 안고 출발하는 곳이고, 여행이 끝난 뒤에는 내가 사는 곳의 편안함을 새로이 깨달으며 도착하는 곳이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서야 고향을 갈 수 있고, 비행기를 타고서야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공항은 의미가 조금 다르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부모님이나 형제들을 만나러 가는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의미이다. 꽤 오래전 산업화 시대에 고향을 떠나 대도시 공장으로 취업하러 떠난 젊은이들이 많던 시절.  그 시절의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 또는 섬을 떠나 육지로 돈을 벌러 나간 이들의 항구와 비슷한 의미일 수 있겠다.


   그래서 적어도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공항은 조금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다. 대학 생활을 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올 때, 군대를 가기 위해 고향을 떠나올 때 공항에서 배웅한 어머니의 표정이 오롯이 남아있는 곳이고, 사랑하는 이들을 뒤로 하고 탑승구를 통해 들어가야 하는 아쉬움이 짙게 배어있는 곳이며, 비행기를 타고 온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는 초조한 설렘이 기억되어 있는 공간이다. 만남과 헤어짐, 기다림의 공간. 떠나는 이를 보내며 뒤돌아 눈물 흘리고, 남겨진 이를 뒤로 하고 떠나야만 하는 아쉬움을 느끼는 공간. 여행의 시작과 끝의 공간이기보다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기다리는 공간으로서의 의미 또한 짙은 곳이 바로 공항이다.

   그리고 또 어떤 때에는 이륙하는 비행기를 보면서 그 끝 어딘가에 그리운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 사람을 향한 마음만을 속으로 삭이며 그대로 일상을 견뎌내야 하는 설움을 느끼기도 하는 곳이다. 물론 마음먹기의 문제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운전을 하고 후딱 다녀올 수 있는 그런 곳보다는 비행기라는 점이 심리적 거리감을 더 멀게 느끼게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그래서...

   저기 저 저녁 노을 속 비행기 안에는 눈물을 가슴에 품고 이별하는 사람의 안타까운 사연이 함께 타고 있을 수 있음을 안다. 그 안에는 쓸쓸함이 있을 수 있다. 노을 지는 하늘에 슬픔과 외로움, 두려움을 쏟아 내고 도착 게이트를 나서며 여전히 낯선 타지 생활을 굳게 마음먹고 시작해야 하는 곳. 나에게는 그런 곳이 공항의 모습이기도 하다.


   공항에는 여행의 설렘 말고도 만남과 이별, 그리움의 정서가 담겨있기도 하다.


   그러니 굳이 부러워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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