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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바람 Jun 17. 2023

개심사(開心寺)

소박한 마음이 충만해지는 사찰

소박함에 오히려 마음이 충만해지는 사찰, 개심사 (촬영 : 2008년 5월)

개심사를 처음 만난 것은 1998년쯤이었다. 대학 선후배들과 소모임을 조직해 답사를 떠났고 그곳에서 만났다. 떠나기 전부터 우선 절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여러 불교적 용어들과 철학들을 담은 다소 속세와 격리된 듯한 다른 절들의 이름과는 달리 '마음을 열라'는 개심(開心)이라는 단어는 이미 내 마음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이름의 사찰을 둘러보면서 기존에 갖고 있던 여러 생각과 마음들이 싸악 지워지면서 마음이 열렸고 절 자체가 갖고 있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세상을 바라보던 내 마음을 다시 충만하게 채워주었다.


개심사는 충남 서산시 운산면 상왕산 자락에 있다.

지금은 정말 많이 알려져 있어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와는 그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다. 우선 일주문이 생겼다. 2010년 경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내가 일주문의 형태를 처음 만난 것은 2007년 늦가을이었다. 아직 단청이 칠해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꽤나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개심사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자연을 닮은 고즈넉한 분위기의 사찰인 개심사는 오히려 이 일주문으로 인해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사찰의 본채까지 느린 걸음으로 10여분은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데 그 초입에 이런 일주문이 서 있었다.



'상왕산 개심사'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 (촬영 : 2007년 11월)

이전에는 일주문이 없었다. 그저 차로 오를 수 있는 산길의 끝 언저리쯤 주차 구획선조차 제대로 그려져 있지 않은 주차장이 있었고, 거기에 차를 대 놓고 느릿느릿 걸어 올라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 걸음의 시작 지점에 저 일주문이 들어선 것이었다.

하여튼 이 길을 통해 바로 비탈이 있는 산길로 걸어 들어가면 된다. 산길이라고 해서 많이 힘들지는 않다. 그 산길의 초입에 작은 바위가 티 나지 않게 서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세심동(洗心洞)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누구의 글씨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개심사는 들어서면서부터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게 하는 미묘한 무언가가 있다) 이곳과 꽤나 어울리는 듯한 느낌의 글씨이다.

세심동 표지석 (촬영 : 2007년 11월)

이 세심동 표지석은 예전 일주문이 없을 때에 오히려 절을 들어서려는 사람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주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일주문보다 더한 울림을 주는 표지석이었다. "마음을 씻으라."는 그 짧은 한 마디가 속세에 있던 자신의 마음을 다시 되돌아보고 한결 깨끗해진 상태로 들어오라는 경고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은 표지석의 위치도 바뀌고 잘 정비된 돌계단 옆에 개심사 입구라는 다른 표지석과 함께 있어 눈에 잘 띄는데 오히려 예전처럼 숨은 듯 있다가 불현듯 발견되는 것이 더 "세심(洗心)"의 의미가 강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그 세심동 표지석을 지나 작은 오솔길을 걸어 10여분을 올라가면 드디어 개심사 본채들을 만나게 된다.

개심사를 찾은 이들을 처음 맞이하는 본채 중 하나인 안양루 (촬영 : 2007년 11월)

오솔길이 끝나고 길이 다시 넓어지며 사찰의 가람들이 나타나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안양루라는 누각이다. 산길을 걸어 올라온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상왕산 개심사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그 오른쪽으로 작은 돌계단을 오르면 자세히 보면 문의 이름조차 잘 못 보고 지나칠 만큼 소박한 해탈문이 있다.(대부분 큰 사찰의 해탈문 안에는 사천왕상이 있지만 이곳의 해탈문은 말 그대로 문일 뿐 사천왕상이 들어 설 공간조차 없다) 그 해탈문을 넘어서면 절의 마당이 나타나고 안양루의 너른 대청마루가 산길을 오르며 힘들었던 다리를 쉬려는 사람들을 맞이한다. 언젠가 꽤 오래전 절은 찾은 이가 유독 없는 날 이곳을 찾았을 때 안양루에 걸터앉아 고즈넉하게 절의 기운을 느끼고 있던 우리에게 안양루 오른쪽에 있는 무량수각에서 무언가를 준비하시던 한 보살님이 차를 내어주어 마음까지 따뜻해졌던 기억이 있다. 선선한 바람과 함께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자니 마음을 쉬고자 찾았던 이 절이 모든 것을 내어주며 나를 편안히 받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대웅보전 앞에 자리 잡은 절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던 심검당(촬영 :

안양루에 대웅보전을 마주하고 있다가 자연스레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심검당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과연 이 건물이 절집이 맞나 의심을 할 정도였다. 대웅보전의 좌측에 자리 잡은 건물임에도 아무런 단청도 없고(단청 빛이 다 바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규모도 크지 않은 것이 어느 조선시대의 소박한 양반집 같은 느낌이었다. 자세히 보니 기둥이며 들보며 곳곳에 쓰인 나무들이 반듯하게 다듬어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무의 원래 모습이 이랬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휘어지면 휘어진 대로 굵기도 제멋대로인 그 나무들이 기둥으로 들보로 자연스럽게 건물의 일부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사실 이 심검당이 개심사를 찾은 내가 이 절에 푹 빠지게 된 가장 매력적인 요인이었다.


자연의 멋이 한껏 드러나는 종루 (촬영 : 2007년 11월)

안양루와 심검당 사이로 난 작은 길로 몇 발자국을 옮기면 종루가 나타난다. 심검당의 매력에 젖어든 상태로 이곳에 이르면 그 매력이 더욱 빛나게 된다. 지붕과 종을 지탱하는 종루의 네 기둥은 심검당의 나무들처럼 자연 상태 그대로 서 있기 때문이다. 마치 아래위를 잘라낸 나무가 아닌 원래 그 자리에 푸르른 가지와 잎을 여전히 지닌 상태로 서 있는 살아있는 나무와 같은 역동성이 이곳에서 느껴진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이 개심사가 주변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절집으로 옮겨놓은 것 같은 멋이 한껏 드러난다. 저렇게 휘어진 나무들이 역학적으로 보았을 때 과연 이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것은 그저 인간들의 쓸데없는 걱정이고 불필요한 마음이라고 말하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그 기둥들은 내가 원래 나무였다는 점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마치 "이럴 때는 이래야 해!", "이런 곳에서는 이렇게 되어야 하는 거야!"와 같은 마음들에 대해서 "굳이 그럴 필요 없어. 그저 원래의 모습대로 서 있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다.

내가 개심사에서 얻은 마음의 충만은 여기서 이렇게 시작된 것이었다. 다른 큰 절들과는 달리 소박함 그 자체였던 개심사는 건물이나 면적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절을 구성하는 사람과 나무, 돌, 그리고 대웅보전 앞마당에 작게 꾸며진 화단까지 모두가 그렇게 소박함으로 충만한 곳이었다. 그런 개심사를 바라보는 것, 그런 개심사에 있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던 어지러운 마음이 사라지고 자연스럽고 소박한 마음이 가득 채워지곤 했다.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운 어느 날의 대웅보전 (촬영 : 2008년 5월)

그렇기에 개심사의 대웅보전은 나에게 절이기 때문에 있는 중심 건물일 뿐 큰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절의 다른 건물이나 절이 지닌 소박함을 해칠 정도로 도드라지는 건물은 아니다. 대웅보전 또한 이곳의 분위기를 함께 만들어내는 데 충분한 기여를 하고 있다. 다만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어떤 다른 요소들보다 이곳 개심사는 국가에서 보물로 지정하지 않은 다른 작은 요소들이 더 크게 마음을 울린다는 의미일 뿐이다.


개심사를 더욱 빛내는 것은 개심사 안팎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이다. 사실 개심사를 지금처럼 유명하게 만든 것도 이런 자연의 멋이 많이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복스럽게 피어난 개심사의 겹벚꽃 (촬영 : 2010년 5월)

부처님 오신 날 즈음이 되면(사실 이 시기를 알려준 것도 절에 계신 보살님들이었다. 꽃 피는 시기를 물었더니 초파일에 오면 된다고 일러주신 적이 있었다.) 절 안에 겹벚꽃과 청벚꽃이 복스럽게 피어난다. 대웅보전과 심검당, 안양루, 무량수각으로 둘러싸인 중심부를 벗어나 주변으로 조금만 벗어나면 수령이 꽤 오래된 벚나무들이 눈에 띈다. 무량수각 우측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겹벚꽃이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도심에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벚나무들과는 확연히 다른 벚꽃이 여기서 피어난다. 꽃이 크기도 커서 왕벚꽃이라 할 만큼 크고, 연한 베이지에서 분홍빛으로 서서히 물들어 가는 듯한 꽃의 자태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거기서 조금 더 걸으면 명부전이 나타나고 그 앞에는 초록빛이 차분하게 물들어 있는 청벚꽃이 반긴다. 꽃의 생김새는 일반 벚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색이 푸른빛을 띠고 있어 무언가 다른 느낌을 준다. 그 꽃들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죽은 영혼들이 거쳐가는 명부전 앞에서 피어나 그 색이 왠지 명부전의 의미와 어울리는 듯한 느낌까지 받게 한다. 맨 처음 이런 벚나무들을 심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고, 그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이런 나무를 심었는지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이 나무들은 묵묵히 자연스레 커왔고 처음의 의도와는 별 상관없이 이 절집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빛내주고 있다. 사람의 힘으로 다 어찌하여 만들어 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명부전 앞 뜰에서 피어나는 청벚꽃 (촬영 : 2010년 5월)


이런 세상 어디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는 꽃들이 피어나기 때문에 사월 초파일 즈음이 되면 이제 개심사는 사람들로 많이 붐빈다고 한다.


하지만 개심사의 아름다움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절집 주변으로 조금만 더 둘러보다 보면 겹벚꽃, 청벚꽃 말고도 제 색깔을 마음껏 빛내고 있는 꽃들이 소박한 절 건물들을 둘러싸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붉은색, 흰색 꽃들이 제 자리에서 잔치를 벌이듯 뭉게뭉게 피어나고 그 색들이 초록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봄의 빛깔들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작고 소박한 집들은 그런 자연의 봄 잔치를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에 자리 잡은 이 절은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 자신을 뽐내는 한 곳이 아니라 자연 속에 안겨 있어 사람마저 안아줄 넉넉한 곳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개심사에 펼쳐진 꽃 잔치 (촬영 : 2010년 5월)


가을이 되면 단풍 또한 봄꽃만큼이나 아름답다. 특이한 점은 분명 이파리는 아기 손을 닮은 단풍나무 잎인데 색깔은 누가 뭐래도 인정할 만큼 완벽한 노란 은행나무 잎의 색깔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앞선 글에서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http://brunch.co.kr/@tolbaram77/9), 이 노란색 단풍나무가 나에게 신선한 깨달음을 준 적이 있어 개심사에 대한 내 호감도를 더욱 상승시켜 주었다. 

개심사 본채들 아래쪽에 있는 연못의 가을. 노란 단풍나무가 인상적이다. (촬영 : 2007년 11월)

개심사 본채들 아래쪽에는 직사각형의 연못이 한국 전통정원의 모습처럼 만들어져 있다. 이 연못은 몇 년이 지나면 한 번씩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노란 단풍나무이다. 연못에는 물을 가로지르는 통나무 다리가 있는데 본채에서 이 다리로 내려가는 좁고 오래된 돌계단 위에 바로 이 노란 단풍나무가 있다. 가을 마지막 즈음에 이 개심사를 찾으면 이런 풍경을 만날 수 있고 봄만큼이나 특별한 풍경으로 개심사에 대한 기억마저 특별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개심사의 가을에서 만난 특별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명부전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개심사 식구들을 위한 밭이 나온다. 그리고 가을 단풍이 한창일 무렵에는 그곳에 배추와 무가 실하게 자라 수확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이 나타난다. 물론 봄에는 각종 채소와 나물들을 스님들의 정성스런 손길을 받아 튼실하게 자라난다. 절에서 수행하는 스님들과 보살님들 뿐만 아니라 이곳을 찾는 신도들, 그리고 가끔은 나처럼 뜸한 시간에 찾아온 외딴 손님들에게 제공할 훌륭한 공양의 재료가 이곳에서 자연의 빛과 온도에 맞춰 자라는 것이다. 

개심사 밭 옆에 있는 창고 (촬영 : 2008년 5월)

그리고 그 작은 밭(텃밭이라고 하기에는 좀 넓고 그냥 밭이라고 하기엔 좀 좁다)의 옆 쪽으로는 창고로 보이는 듯한 부속 건물이 하나 있다. 사실 건물이라고 하기에는 쌓아 올린 돌담으로 벽을 삼고 얼기설기 얽힌 각목들을 받침으로 삼아 그 위에 올려진 양철 지붕은 민망할 수준이다. 다만 이 조그만 부속 건물의 유일한 출입구인 작은 문에도 붉은색 단청이 칠해져 있어 이곳이 절에서 관리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이런 풍경이야말로 내가 개심사를 찾게 된 이유의 끝판왕이다. 

세상 일이 뭐 그리 웅장할 것도, 절망적일 것도 없는 수더분한 날들이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저 그 소박한 하루하루가 이어짐에 만족하고 그것으로 인하여 마음이 풍족해지면 풍성한 나날이 되어가는 것일 텐데 무슨 대단한 영화를 보겠다고 그리 아등바등 자신을 소모하며 사는 건지……. 마음을 소박하게 먹으면 욕심을 크게 부리지 않아도 될 것이고 그 소박한 마음이 채워지는 행복은 언제고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굳이 누구나 국보가 될 만한 아름답고 위대한 돌탑을 쌓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 분야에 재능이 있는 누군가가 할 것이고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을 만큼의 돌탑만 쌓으면 되는 것이다. 

개심사의 돌탑들 (촬영 : 2008년 5월)

그거면 충분하다. 

작고 소박해서 그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충만하게 하는 개심사. 자연스러움과 특별한 자연의 멋이 있고 사람의 마음이 담긴 작은 것들이 가득한 곳. 그래서 욕심과 부러움과 강박 같은 것들로 채워지던 마음이 열리고 깨끗이 씻겨져 가는 곳. 나에게 개심사는 그런 곳이었다.



최근에는 개심사를 다녀오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최근 한 10여 년 사이에 주차장부터 많은 변화가 생겼고 그 바람에 예전과 같은 소박한 멋이 덜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래서 번잡스러운 곳을 떠나 고요히 마음을 씻고 새로운 마음을 열기 위해 찾았던 나만의 보물 같은 사찰이었던 개심사가 이른바 관광지로 탈바꿈을 한 듯한 느낌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개심사는 마음 속에 예전 모습으로 남아 있고,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소박한 마음으로 충만해지는 느낌을 얻는다. 날이 괜찮은 어떤 평일에 조용히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아마도 그간 개심사에서 얻은 충만함이 고갈될 즈음이면 또다시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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