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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바람 Jul 14. 2023

세미원

뜨거운 여름에 피어나는 연꽃

세미원의 절정은 여름이다. 한가득 피어있는 연꽃을 담으려는 사람도 한가득 해지는 여름 (촬영 : 2009년 7월)


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 근처에 세미원이 있다. 

오래전 우연히 알게 되어 방문했다가 폭염 속에서 단아하게 피어난 연꽃에 감동했던 곳, 이제는 연꽃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정말 쉽게 찾을 수 있는 명소가 된 곳이 바로 세미원이다. 그만큼 이제는 유명세를 치르는 곳이 되었다. 몇 차례 이곳을 방문했었는데 해가 갈수록 점차 무언가 조금씩 더 생겨나고 있어 볼거리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여름이다. 

연꽃이 제 모습으로 완연히 피어나는 계절은 여름이다. 그리 깨끗하지 않은 물속에 뿌리를 박고 뜨거운 태양빛을 받아 커다란 잎을 먼저 키운 후에 비로소 아기 주먹만 한 꽃봉오리를 밀어 올린다. 그리고 한 여름에 기어이 분홍빛 연꽃이 커다랗고 기품 있게 피어난다.

(촬영 : 2009년 7월)


세미원에 입장해서 연꽃을 보려면 입구를 지나 조금 걸어야 한다. 한강 줄기와 맞닿아 있는 물가로 최대한 가야 한다. 많은 걸음수는 아니지만 그늘이 별로 없어 따가운 햇살을 온몸으로 맞으며 걸어야 한다. 걷다 보면 가끔 덥다며 그늘을 좀 만들지 그랬냐는 투덜거림을 들을 수 있지만 그늘이 많으면 연꽃이 이렇게 피어날 수 있겠나. 그저 얄팍한 인간의 욕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여튼 그렇게 걸어 들어가면 큰 연못들이 나타나고 그 사이로 길이 만들어져 있다. 애초에 이 세미원을 만들 때 연못 6개를 설치하여 연꽃과 수련·창포를 심어놓고 6개의 연못을 거쳐간 한강물이 중금속과 부유물질이 거의 제거된 뒤 팔당댐으로 흘러들어 가도록 구성하였다고 한다.

(촬영 : 2009년 7월)


그렇게 그 6개의 연못을 돌다 보면 환히 피어난 다양한 연꽃들을 만날 수가 있다. 어떤 애들은 하얀빛을, 또 어떤 애들은 분홍빛을 머금고 저마다의 시간에 맞게 피어난다. 조금 성미가 급한 애들은 이미 활짝 피어 있고 또 어떤 애들은 아직 손을 모아 봉오리를 만든 채 옆 친구의 멋부림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촬영 : 2009년 7월)

저마다의 간절함으로 때를 기다려 피는 연꽃

연꽃은 그 색이 무척이나 기품이 있어 보인다. 아이들의 손바닥만큼 한 꽃 이파리 하나하나가 다소곳이 펼쳐져 있는데 이파리 끝에 가장 진한 색의 물감을 톡 하고 떨어뜨리면 그 색이 밑으로 점점 물들어 나간 것처럼 자연스러운 그 번짐이 차분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듯하다. 꽃의 크기는 크지만 그 큰 것이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촬영 : 2009년 7월)

더구나 그 꽃을 아래에서 바라보면 하얗게 시작된 꽃잎의 색이 위로 갈수록 짙어지며 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모습이 기가 막힐 지경이 된다. 하늘을 향해 무언가를 기원하는 그 간절함이 위로 갈수록 더 강렬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우뚝 솟은 꽃대의 끝에 묵직한 크기의 꽃을 피우고 그 꽃의 끝에 가장 강한 색을 모아 기원의 마음이 가장 강렬해지는 모습을 연꽃은 보여준다. 불교에서 초파일이 될 때마다 연꽃 모양의 등을 만들어 다는 것 또한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촬영 : 2009년 7월)

그렇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작년 이맘때 올린 글(https://brunch.co.kr/@tolbaram77/79 )에도 담은 내용인데, 진흙 속에 뿌리를 박고 무더위가 절정인 날에 드디어 꽃을 피워내는 이 연꽃은 세상이 아무리 우리의 어깨를 짓누른다 해도 끝끝내 우리는 우리의 꽃을 피워낼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듯하다. 그래서 무더위 속에서도, 진흙탕 속에서도 크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연꽃은 그리고 우리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세미원에는 연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미원은 수생식물을 주제로 한 테마공원이라고 봐야 한다. 그래서 연꽃뿐만 아니라 보고 느낄 만한 것들이 더 있다. 우선 이 세미원을 만든 목적이기도 한 한강물의 청정을 기원하는 분수대가 있다. 수많은 항아리들을 야트막한 언덕에 모아놓고 항아리 가운데로 물이 뿜어져 나오게 만들었다. 항아리들이 모인 중심 부분에는 키 큰 소나무를 심어 조경의 멋을 더했다. 분수대라고 해서 화려한 분수쇼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주변 풍경과 공원의 분위기에 맞게 차분한 시원함을 더해주는 분수이다. 분수의 높이와 화려함으로 마치 대결을 하는 듯한 최근의 분수 설치 경향과는 상관없이 그저 자연의 한 모습인 양, 옛 시골 동네의 한 풍경인 양 차분하고 조용하게 물을 뿜어내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느낌을 준다.

(촬영 : 2008년 8월)

이 분수대를 만나기 전에 세미원 입구에서 걸어 들어가는 길에는 자그마한 개울을 만날 수 있다. 나무들 사이로 난 개울길을 따라 물길 옆으로 물가 식생들이 열 지어 있고 개울의 깊이가 얕아지는 중간부터는 걷기 좋은 돌길도 깔아 놓았다. 세미원으로 들어가는 길에 작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 길은 세미원 탐방을 다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걷는 것이 더 좋았다. 무더위와 땡볕 속에서 세미원을 다 둘러보고(물론 중간에 휴식을 취할 공간은 있다) 되돌아오면서 이 돌길을 조심스레 걷다 보면 개울은 숲길과 만나고 나무 그늘과 물소리를 벗 삼아 마지막으로 시원한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미원에서 모네, 그리고 수련을 만날 수 있다. 

세미원 안내문에는 이 밖에도 두물머리를 내려다보는 관란대(), 프랑스 화가 모네의 흔적을 담은 ‘모네의 정원’, 풍류가 있는 전통 정원시설을 재현한 유상곡수(), ‘수표()’를 복원한 분수대, 바람의 방향을 살피는 기후관측기구인 풍기대 등도 있다고 되어 있다.  중 단연 눈길을 끌었던 것은 모네의 정원이었다. 따로 안내문을 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모네의 수련 연작 그림을 본 사람이라면 이 풍경을 만나는 순간 딱 그 그림을 떠올리게 된다.

Claude Monet, The Japanese Footbridge and the Water Lily Pool, 1899

모네는 프랑스 파리의 근교인 지베르니에 정착하게 되면서 그림 그리는 일과 정원 가꾸는 일에 전념하였고, 그런 그의 생활이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입어 수많은 작품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그중 수련 연작은 그의 많은 대표작들 중 하나가 되었고 어디선가 한 번쯤은 보았음직한 인상주의 작품의 대표작이 되었다. 야트막한 아치형 다리와 그 주변에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들, 다리 밑에 가득히 피어난 수련을 담은 이 그림들은 나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흐릿하게 볼 때 그 느낌이 더 살아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모네의 정원이 이 세미원에 재현되어 있다. 몇 개의 연못을 지나며 풍성하고 기품 있게 피워낸 연꽃을 감상한 후에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모네가 사랑해서 수많은 연작을 남겼다는 지베르니의 그 정원이 나타난다. 물론 프랑스에 발자국을 한 번도 남겨보진 못한 터라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그 정원의 풍광과 얼마나 유사한지는 모르겠으나, 그래서 그림에서 느껴지는 그 아른하고 고요한 포근함이 세미원의 이 풍경에 얼마나 담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학창 시절 배웠던 기억 저 편 어딘가에 잠자고 있던 아련한 인상을 여기서 다시 떠올리게 할 수 있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림에 차분히 담겨있던 그 풍경이 이 먼 대한민국 양평의 세미원이라는 곳에 현실로 재현이 되니 그 그림에 대한 추억을 가진 이들은 꼭 저 다리 위에 사람을 세워놓고 인증샷을 찍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즐거움으로 재탄생하게 된 모네의 정원이라 하겠다.

(촬영 : 2019년 7월)

모네의 정원을 테마로 한 이곳을 보았다면 모네가 그 그림들을 통해 애정을 듬뿍 표현했던 수련도 만나야 한다. 세미원에는 수련도 참 많다. 일부 연못은 수련으로 꾸며져 있고 그 외에도 곳곳에 항아리나 수조들을 이용해 수련을 키워내고 있다. 연꽃이 기품이 있는 꽃이라면 수련은 단아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연꽃이 오랜 풍파를 겪고 견디며 이겨내 온 둥글둥글한 성품을 가진 우아한 누님 같은 꽃이라면 수련은 그 우아함을 이제 만들어가기 시작하며 매력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는 젊은 왕비 같은 꽃이다. 연꽃잎이 넓고 둥글게 전체 꽃을 포근히 감싸안는 모습이라면 수련은 연꽃에 비해 슬림한 이파리들이 하늘을 향해 마음껏 펼쳐 피어나는 모습이 조금 더 도도한 우아함을 뽐내는 느낌이다. 

(촬영 : 2008년 8월)
(촬영 : 2008년 8월)


그리고 휴식을 만난다.

앞서 말했지만 세미원에는 휴식을 취할 만한 그늘이 별로 없다. 그런데 6개의 연못과 몇몇 부대시설을 차분히 둘러보다가 보면 작은 숲길(그러나 여기서 나무 그늘을 기대할 수는 없다)을 만나게 되고 그 길을 따라 계속 가다 보면 세미원 위를 지나가는 다리를 만나게 된다. 

(촬영 : 2009년 7월)

그리고 그 아래에는 다리가 만들어준 소중한 그늘이 있다. 그리고 나무로 만든 벤치와 멋진 풍경들이 여름 볕에 지친 탐방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한강 상류와 바로 맞닿은 그곳에서 시원한 그늘과 강바람을 쐬며 휴식을 만나는 것이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바로 그 강물에 띄웠음직한 조그만 조각배도 있었고 풍성한 갈대 너머로 그 조각배가 떠다녔을 강물도 더위에 지쳤던 시야를 시원하게 틔워 준다. 


(촬영 : 2009년 7월)

그리고 마침 날씨가 무척 좋다면 푸른 강물과 초록의 갈대와 산, 다시 그 위로 펼쳐지는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마지막 눈호강의 기회를 만들어 준다. 그늘에서 맛보는 그 시원한 풍경은 차마 다 카메라로 담을 수 없을 만큼 광활하고 호탕하지만 그러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촬영 : 2008년 8월)

휴식이라고 하는 것이, 쉼이라고 하는 것이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몸을 편안히 하는 것도 있겠지만, 몸은 좀 힘들더라도 마음이 시원해지고 깨끗해지면서 가슴속에 여유가 생겨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쉼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여행을 다니기도 하는 것이리라. 바다를 늘상 끼고 살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이렇게 탁 트인 풍경을 만나면 자연스레 몸과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게 된다. 

세미원을 벗어나 조금만 이동하면 이런 풍경까지 덤으로 만날 수 있다.(촬영 : 2008년 8월)




사진을 찍기 위해, 혹은 다른 이유로 여행을 갔다가 사진을 찍으며 참 여러 좋은 곳을 다녔다. 가끔씩 사람의 마음을 확 펼쳐주는 좋은 풍광을 만났을 때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다 담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 무척이나 아쉬움이 들곤 했다. 그래서 포토샵을 통해 파노라마를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파노라마 용으로 사진도 찍어가면서 그 아쉬움을 어떻게든 줄여보려 애를 썼다.




(촬영 : 2009년 7월)

그러나 그래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새삼 느끼는 것은 사람의 눈만큼 좋은 카메라는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 현장에서 느끼는, 카메라에는 없는 마음의 눈이 사람에게는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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