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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바람 Sep 21. 2023

생태교란종

수관기피를 생각하며




가끔씩 떠올리는 시가 한 편 있다. 

          담쟁이
                                         도종환 / 시인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가끔씩 

무언가 현실의 벽에 마주한 느낌이 들 때,

무언가 애는 쓰고 있지만 외로움이 사무칠 때,

그래서 무언가 용기가 필요할 때 

그럴 때 한 번씩 떠오르는 시이다. 


무서울 정도의 초록이었다.

그런데 가끔 올림픽대로를 달리다 보면 가로등 끝까지 올라간 담쟁이를 볼 수 있었다. 어찌 그곳까지 올라갔을까 하는 경외심도 들었지만, 그래서 더 오를 곳이 없어 저기까지 갔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오히려 차가운 쇠기둥까지 올라간 그 무서울 정도의 초록에 놀라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담쟁이는 담쟁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가시박이라고 불리는 다른 종류의 덩굴이었다. 그간 담쟁이에 대해 갖고 있던 좋은 생각들이 훼손되지 않음에 안도를 하긴 했지만 대체 이 가시박이라는 녀석은 어떤 애들이길래 이렇게까지 한강 변을 덮는 것도 모자라 도로의 가로등까지 타 올랐을까 궁금해졌다. 


검색을 해보았다.

이럴 때는 여지없이 인터넷 검색을 해본다. 여러 개의 기사가 검색 결과로 나타났다.

한강변 무성한 덩굴식물… 알고 보니 ‘생태교란종’

생태교란식물이란 ‘특정지역의 생태계 균형을 교란하거나, 교란할 우려가 있는 식물’을 말한다. 외래종과는 또 다른 개념이다. 가시박, 돼지풀, 환삼덩굴, 서양등골나무 등 16종이 환경부 장관 고시로 지정돼 있다.
한강공원은 특히 덩굴성 1년생 식물인 ‘가시박’이 많이 번식한다. 가시박은 물을 좋아하는 특성이 있어 전국 하천에 분포하는 교란종이다. 가시박은 번식력이 특히 뛰어나 단기간에 광범위하게 퍼져가는데, 덩굴이 본래 그 자리에 자라고 있던 나무를 휘감고 햇빛을 차단시켜 죽게 한다. 또 줄기에는 가시와 유사한 억센 털이 나 있으며, 한 뿌리에서 나온 줄기 마디에서 덩굴손이 서너 갈래로 갈라져 나와 최대 4~8m까지 자라기 때문에 제거작업에도 어려움이 많다.
                                                      - 경향신문(2021.11.03. 류인하 기자) 일부 발췌

 알고 보니 이 가시박은 생태교란종으로 분류된 애들이었다. 번식의 힘이 워낙 커서 단기간에 광범위하게 퍼지고 원래 그곳에 자리는 나무 등을 휘감아 말라죽게 하는 무서운 녀석들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제거하기도 어렵다고 하니 가히 녀석들의 힘은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강변의 도로 가로등까지 타고 올랐겠지.


원래 나무들은 그러지 않는다

수관기피(Crown Shyness)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식물들은 생장 과정에서 다른 식물들이 제 몸에 닿는 것을 싫어하여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적당히 떨어져서 자란다는 것이다. 특히 큰 나무들 사이에서 많이 관찰되는데 같은 나무끼리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종이 다른 나무들 사이에서도 이런 현상들이 벌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큰 숲을 거닐다 가끔 하늘을 보면 나뭇가지들끼리 서로 얽혀 있지 않고 서로 적당히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 사이로 빛나는 햇살이나 푸르른 하늘빛이 황홀하게 내가 서있는 땅으로 한 줌씩 내려올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햇살과 빛은 나무 아래에 자라는 또 다른 식물들에게 생명의 빛이 되는 것이다. 숲이, 생태계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배려하는 모습인 듯하다.


하지만 담쟁이도, 가시박도 나무가 아닌 덩굴식물이다.

감고 올라가야 살 수 있는, 어쩌면 조금 안타까운 애들이다. 줄기가 위로 곧게 자랄 수 없어 이웃의 기둥을 의지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애들이다. 땅에 뿌리를 박고는 있지만 다른 큰 나무들이 빛을 가리면 그 빛을 얻기 위해 주변의 나무줄기나 기둥을 타고 올라 충분한 햇살과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렇게 공존하며 숲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칡 역시 그렇게 무성한 숲 속에서는 나무를 타고 오른다고 한다. 덩굴식물의 운명인 셈이다. 곧게 설 수 없는 덩굴 줄기의 약점을 가진 녀석들이 키 큰 식물을 기둥으로 이용하는 생존 전략을 발휘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도가 있어야지~!

그럼에도 가시박만이 생태교란종으로 분류된 것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고 생태계의 균형을 맞춰 줄 견제 식물이 없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걸쳐 조금씩 조금씩 위를 향해 오르는 담쟁이와 달리 가시박은 제가 의지하고 올라선 그 나무마저 말라죽게 만들 정도로 지독하다. 어쩌면 제 몸 하나 지탱하기도 어려워 두꺼운 기둥을 어렵게 만들며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간 그 나무들은 덩굴들이 몸을 휘감아 올라가는 무게까지 감당해야 해서 무던히 힘들 수도 있는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 가시박은 고마움도 없이 부끄러움도 없이 제 멋대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1년생 식물인데도 말이다. 공존을 위한 거리와 선은 지켜야 하는데 정도를 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칡과는 달리 가시박은 이를 제지할 만한 천적 식물도 없어(칡은 '새삼'이라는 천적 식물이 있다고 한다) 마치 폭주 기관차처럼 제멋대로 마구 주변공간을 잡아먹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의지했던 나무까지 말라 쓰러지면 그 다음에는 어쩌려고 …….


다시 수관기피

수관기피라는 단어는 영어로 Crown Shyness라고 한다. 줄기 위쪽으로 멋스럽게 뻗은 가지와 잎들이 마치 왕관처럼 생겼다 하여 수관(樹冠), Crown이라고 하는데 이 수관들이 옆에 서있는 다른 나무와 닿게 되면 부끄러움 Shyness를 느껴 살짝 움츠러들고, 그래서 다른 방향으로 자라며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일정한 공간의 여유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수관기피이고 Crown Shyness가 아닌가 싶다. 건강한 숲은, 생태계는 감사함과 부끄러움을 갖고 이렇게 각자의 질서에 따라 서로의 공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곳이어야 한다. 생태교란종은 이런 질서를 깨뜨려 결국은 공멸의 길로 접어들게 하는 것이다. 



결국은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

폭주하는 이는 결국 그가 속한 생태계를 망가뜨린다. 후안무치는 가시박에게만 적용될 말은 아니다. 나 먼저, 나 혼자 햇살을 차지하겠다는 그 욕망은 결국 모두를 죽게 만든다. 나를 이렇게 키워준 이들에 대한 감사함과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결국 목소리만 키워 윽박지르듯 높은 곳만을 향해 뻗어 오르고, 나중에는 밑에서 떠받쳐주는 이들을 조롱하기에 이른다. 결국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말이 언뜻 맞아 보이지만 이것은 그 생태계를 암흑으로 만드는 길이다. Shyness를 아는 자의 Crown만이 황홀하게 빛날 수 있다. 수관기피로 아름답게 만들어진 숲처럼 황홀하게 말이다.


하나 더!

만약 그렇게 후안무치한 이들이 있다면 견제해야 한다. 칡 또한 나무를 말라죽게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허나 칡은 새삼이라는 천적이 있어 생태교란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름답고 황홀한 생태계는 적절히 견제하는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뻔히 보이는데도 가만히 있을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근원적인 것 하나 더! 

굳이 그 높은 곳으로 꼭 올라야 하는가? 옆으로 뻗으면 안될 일인가?


창신동 근처 서울성곽의 담쟁이가 옆으로 뻗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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