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투 삼달리"를 보내며
사실 드라마를 잘 안 본다.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웬만한 이야기 전개가 아니고서야 뻔한 플롯의 흐름은 쉽게 캐치되었고 그 탓에 너무나도 쉽게 흥미를 잃어버리곤 한다. "웰컴투 삼달리"라는 드라마도 처음에는 그랬다. 제주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라 살짝 흥미가 생기긴 했지만 곁눈질로 몇 번 본 드라마의 초반 전개는 그 이상의 흥미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더군다나 작년에 "우리들의 블루스"로 인생 드라마 급의 감동을 받은 터라 그 이상의 무엇이 있지 않는 한 쉽게 나를 끌어들이지는 못하는 드라마로 넘어갈 뻔했다.
다시 제주 '사람'의 이야기였다.
어느 드라마였건 간에 다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 극 속에 담긴 사람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와 맞닿는 순간 그 이야기는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가 된다. "웰컴투 삼달리"의 주인공 조삼달이 8년 만에 제주로 내려가면서부터 이어진 이야기는 제주 출신 서울 사람인 나의 이야기와 마주 하기 시작했다. 또 한 편의 제주 사람의 이야기, 아니 정확히는 제주 출신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되었다.
제주는 어쩔 수 없이 섬이다.
나는 사실 잘 몰랐다.
고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나는 서울로 왔다. 나는 '영주'나 '삼달'처럼 기를 쓰고 제주를 벗어나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그저 학업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활의 공간이 바뀐 것뿐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새로운 세계, 넓은 세상,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참 신이 났었다. 그리고 나의 꿈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철없던 시절이 지나고 바쁘게 돌아가는 이 도시에서 무언가 나의 꿈을 펼쳐나가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일을 겪어야만 한다. 그걸 나는 그때 미처 몰랐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분명 이 큰 도시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꿈을 꾸며 힘차게 달리기 위해 그 섬의 젊은이들은 육지로, 서울로 향한다. 그러나 그 꿈을 펼치려면 그래서 육지로 나가면 나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이 사라진다. 시원함이나 해방감보다는 허전함과 외로움이 무섭도록 닥쳐온다. '삼달'이 그랬던 것처럼 힘들고 괴로운 순간을 홀로 오롯이 견뎌야 한다. 아무리 힘들고 괴롭더라도 그것을 고향에, 가족에게 알리는 것은 암묵적인 금기이다. 만약 그런 푸념을 늘어놓았다가는 '삼달'의 어머니 '미자'가 그랬던 것처럼 "느 경 살랜 육지 보낸 줄 알암시냐?(번역 : 너 그렇게 살라고 육지 보낸 줄 아느냐)"라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렇게 견디고 견디다 끝내 끝까지 몰리게 되면 결국 모든 것을 놓고 그 섬으로 다시 돌아간다.
도시의 냉혹함이란…
이제는 제주에서 산 시간보다 서울에서 산 시간이 훨씬 더 길다. 제주 사람이라기보다 이제는 서울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다. 삼달이와는 조금 다른 삶은 살아온 나에게 제주의 의미는 드라마와는 조금 다르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고향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주는 그 든든함을 대도시 서울에서는 느끼기 어렵다는 점이다. 서울은 여전히, 아니 점점 더 전장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전쟁 같은 삶을 살아야만 성공이라는 열매를 딸 수 있는 곳이고, 그걸 당연시하는 공간이다. 전쟁 같은 삶에서 비켜나 있으려 하면 무기력하다거나 실패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따라온다. 아무 계산 없이 맘 편히 기댈 수 있는 공간도, 사람도 잘 보이지 않는다. 서울 사람들은 이런 인식을 못마땅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허나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서울이, 서울 사람이 주는 느낌은 분명히 그러하다. 서울 사람들의 지방에 대한 인식이 있듯 지방사람들의 서울에 대한 인식도 분명하게 있다.
평화로운 곳을 찾는 이유
그래서 도시 사람들은 주말에, 방학 때, 휴가 때 도시를 빠져나간다. 복잡하지 않고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곳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유를 느끼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그제서야 비로소 행복감을 느낀다. 제주는 그런 곳 중 하나이다. 사진을 취미로 가진 사람으로서 대도시의 풍경이 아름다울 때는 꼽아봐야 불빛 찬란한 야경 정도 밖에는 없다. 하지만 그 풍경이 찬란할지언정 평화로운 풍경이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가득 차 있는 것은 평화롭지 않다. 적당히 비어 있어야 할 곳은 비어 있어야 하고 거기에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채워 넣지 않아야 한다. 욕심을 부려 무언가를 채우려는 순간 평화는 저 멀리 달아나고 만다.
조은혜가 아닌 조삼달!
그래서 자신의 원래 이름인 조삼달로 다시 카메라를 드는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자신의 본성을 인정하고 그 자체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행복을 깨달은 삼달이는 움츠린 어깨를 펴고 다시 세상과 당당히 마주할 수 있다. 이제부터는 그 세상이라는 공간이 제주이든 서울이든 상관없다. 남들에게 비루하게 보이기 싫어 치장했던 조은혜가 아닌 조삼달이기 때문이다. 성공만을 위해 자신을 속이며 치달리던 조은혜가 아니라 자신과 주변을 받아들이고 원래 자신의 모습에 행복해하는 조삼달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평화는 그렇게 만들어지고 행복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행복은 성공이 아니라 마음이다.
행복하게 사는 길 어딘가에 성공이 있는 것이지, 성공을 해야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다.